아패란토스(ἀπέραντος)와 타페이노스(ταπεινός) / 무한한 : 겸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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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끝없는, 무한한, 딤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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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끝없는(딤전 1: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nor to devote themselves to myths and endless genealogies. These promote controversies rather than God's work--which is by 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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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낮은 지위의, 천한, 보잘것없는, 눅1: 52, 롬12:16, 고후7:6, 약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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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감정의 상태나 사고방식에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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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나쁜 의미] 비굴한, 비열한, 고후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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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좋은 의미] 겸손한, 겸비한, 마11: 29, 약4:6, 벧전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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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겸손한(마11:29, 약4:6, 벧전5:6), 비천한 (눅1:52, 고후7:6), 낮은(롬12:16, 약1:9), 유순 한(고후10:1).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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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온유와 겸손(마태복음 12:15-21)
15 예수께서 아시오 피하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고,
16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고하셨으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18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19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기기까지 하리니
21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성경 말씀 요약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
마태복음 12:15-21의 말씀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매우 세밀하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장면과 더불어 예수님의 모습을 예언했던 이사야서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투지
않으시고, 소리를 높이지 않으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온유와 겸손한 모습을 통해 예수님의 사역이
진정한 선지자의 모습이었음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의 치유 사역과 그 의미(마태복음 12:15)
예수께서 아시오 피하니 많은 사람이 따르는지라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고 –
마태복음 12장
15절. 이 구절은 예수님의 사역 중 하나인 치유 사역을 강조하며, 예수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풀었는지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피하셨지만, 여전히 병든 자들을 고치심으로써 그의 자비로운 본성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장면은 새로운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피한 이유는 단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수용할 수 있는 더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복음의 핵심인 하나님 사랑의
실현입니다.
현대적 적용 :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예수님의 치유 사역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병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돌보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 봉사나 지역사회에서 건강 관리 프로그램, 정신적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같이 치유와 회복의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2. 이사야서의 예언 성취(마태복음 12:16-21)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
마태복음 12장
18절. 이 구절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구절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택하시고, 그에게
기뻐하신다는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이방인들에게도 알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다투지 않으시며 소리를 높이지 않으신다는 구절은 그의 온유한 태도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겸손한 심판자로서, 강자들을 억압하는 대신 연약한 자들을 돌보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현대적 적용 :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온유와 겸손함을 통해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비난과 논쟁보다 사랑과 이해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갈등 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함을 본받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교회에서는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화해와 사랑으로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3. 온유와 겸손의 모델로서의 예수님(마태복음 12:19-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
마태복음 12장 20절. 이 구절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는 모두 연약함을 상징하는데, 예수님은 이러한 연약한 자들을 돌보셨고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신앙생활의 본보기가 됩니다. 예수님은 강자나 권력자들보다는 약자들의 편에 서셨고,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셨습니다.
현대적 적용 :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약한 자들을 돌보고 격려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약자나 소외된
이웃을 섬기고, 그들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친구나 가족 중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지지와 격려를 아끼지 않음으로써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자
마태복음 12:15-21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병든 자들을 고치셨고, 다투지 않으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서의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사랑과 이해로 사람들을 대하며, 갈등 상황에서도 평화를 추구하는 태도를 가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과 같이 약자들을 돌보고,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이 땅에 더욱 널리 퍼지기를 소망합니다.
묵상과 나눔
기도문
사랑의 주님, 오늘 마태복음 12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우리의 삶 속에서도 사랑과 이해로 사람들을 대하게 하소서. 주님께서 병든 자들을 고치시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며 약자들을 돌보는 자들이 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마음과 삶이 주님의 뜻에 맞게 변화되기를 원합니다. 갈등과 다툼 속에서도 평화를 추구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우리의 모습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전달되게 하소서. 특히, 사회적 약자와 소외된 이웃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넓히사,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 이웃에게 위로와 지지를 아끼지 않으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게 하소서. 우리의 손길과 말 한마디가 그들에게 큰 힘과 용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이해하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본받아,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모든 것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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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마음
찰스 스펄전은 사복음서 89장의 내용 중 예수님께서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신 구절은 단 한 곳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 데인 오틀런드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죄인과 고난받는 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마음>이라는 책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알려준 스펄전의 이 발견에 관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신” 단 한 구절, “하나님의 아들께서 휘장을 걷어내고 자신의 본성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허락하신” 단 한 구절이라 말하고(23-4pp) 그 의미를 깊이 파고들었다(개혁된실천사, 2022). 오틀런드는 먼저 성경이 “마음”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이런저런 감정의 복합체 또는 이 생각 저 생각이 혼잡하게 섞여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실체” 자체를 말한다고 설명했다. 마음은 “동기의 지휘소”, “존재의 중추”, “우리를 규정하고, 인도”하는 주체, “생명의 근원”(잠 4:23), “우리의 모든 행위를 이”끄는 곳이다(24-25pp). 온유함과 겸손함이 예수님의 “마음”이었다는 점은 그래서 굉장히 큰 의미가 있다.
우리는 왜 예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가?
물론 예수님도 분노하신 적이 있다(의로운 분노였지만). 때론 저주에 가까운 책망을 하셨다(“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의 가장 깊은 동기는 온유함과 겸손함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 있는 친구들도 이렇게 평가할 때가 있다: ‘그 친구는 참 착해’, ‘그 사람은 정말 항상 따뜻한 사람이야.’ 예수님을 경험한 사람은 누구든 이렇게 그분을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분은 참 온유하고 겸손하셔.’
그런데 예수님이 온유하고 겸손하시다는 것의 특별한 의미를 잠시 멈춰서 생각해 보자. 어쩌면 이 말씀은 당신에게 너무 익숙해서 별로 특별하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하시지. 그러니까 하늘의 부귀영화를 잠시 버리시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종처럼 섬기며 사신 거잖아. 병든 사람과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만져주시고 고쳐주시고, 결국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내어주셨잖아. 얼마나 온유하고 겸손하셔. 그런데 여기서 뭔가 더 특별한 의미를 찾아야 하는 건가?’
이 책의 부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죄인과 고난받는 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마음.” 우리는 평온할 때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묵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러나 죄와 치열하게 싸우다가 심하게 넘어졌을 때, 고난 중에 하나님의 본심을 오해하고 그 친밀한 관계 밖으로 밀려나려고 할 때, 그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리스도는 죄로 넘어진 나를 무서운 눈으로 쏘아보며 ‘내가 너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는데, 너는 고작 그 정도 죄도 이기지 못하느냐?’라고 호통치실 것만 같다. 고난 중에 하나님께 ‘어디 계시나요?’라고 부르짖을 때, 예수님은 ‘내 손과 발에 무슨 자국이 남아있는지 좀 봐라. 어떻게 너는 항상 의심하고 염려하느냐?’라고 혀를 차실 것만 같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예수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아니, 믿지 못한다. 더 불행한 건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죄 가운데 자백으로 빨리 예수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고난 중에 더 신속하게 우리의 방패와 도움 되시는 주님께 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 마음을 오해하는 문제는 이처럼 심각하다.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 마음이란?
데인 오틀런드는 “온유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가 신약성경에 단 세 차례 나온다고 밝힌다. 각각 ‘온유함’, ‘겸손함’, ‘온순함’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오틀런드는 이를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세상에서 이해심이 가장 많은 분”이라고 설명했다(26p). 예민하고 까다롭고 쉽게 화를 내고 손가락으로 항상 지적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양팔을 활짝 펼”쳐 우리를 맞이하는 분으로 묘사한다(26p). 오틀런드는 “온유”와 짝을 이루는 “겸손”의 의미를 신선하게 찾아내는데, 바로 “상황의 빈궁함과 열악함”(26p)이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겸손”의 본래 의미에 가깝다는 것이다. 저자는 바로 이점을 가지고 예수님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모든 신성과 영광과 거룩함을 옷입고 계셨으면서도 세상의 가장 빈궁하고 열악한 자들까지 차별하지 않고 만나주셨다. 조건도 없고, 장벽도 없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누구든지 내게 오면… ‘너의 죄의 짐을 다 벗어버리면 그때 만나주겠다’고 하지 않으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 오라”라고 하셨다. 그 짐을 가진 채로 주님께 나오면 주님이 쉼을 누리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오틀런드는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자상하고, 개방적이며, 너그럽고, 포용적이며, 이해심이 많고, 친절하시다”라고 소개한다(27-8pp).
만일 주님께서 정말 이런 분이시라면, 왜 죄인들에게 분노하시고 회개하지 않으면 무서운 심판을 내릴 것이라고 누차 경고하시는 것일까? 주님이 마음을 뒤집으신 것일까? 본래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이었는데,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들에게 분노하고 저주하는 마음으로 바뀌신 걸까? 그렇지 않다. 예수님의 마음 깊은 동기는 여전히 온유와 겸손으로 가득 차 있다. 만일 그분이 온유하고 겸손하지 않으셨다면 죄인들은 회개할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고, 예수님도 그들에게 지겹도록 회개할 것을 요청할 것이 아니라 단숨에 그들을 처단하시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계속 경고하시면서 회개를 요구하시는 것 또한 그분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을 명백히 드러낸다. 그분은 죄인이 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악인이 심판받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겔 18:23; 33:11).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것이 그분의 본심이시다(딤전 2:4).
주님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은 주님을 찾고 주님께 나온 자들에게 특별히 더 주어진다. 데인 오틀런드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대하는 태도가 언제나 “온유”라고 말한다. 온유가 그분의 “본질이자 마음”이기 때문이다(28p).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어떤 죄나 약점이나 불안이나 의심이나 근심이나 실패가 있더라도…온유한 마음으로 부드럽게 감싸주신다”라고 말한다(28p). 주님은 자기 백성에게 언제나 이런 마음이시다. 어쩌다가 한 번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멍에가 쉽다고?
주님은 당신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말씀하신 후에,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라고 말씀하셨다. 바로 여기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러면 그렇지’라고 썩은 미소를 짓는다. 양팔 벌려 우리를 맞이하시고 이제 쉬라고 하셨으면서 결국 “멍에”를 지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 실제로 예수님을 믿으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 속에 그리스도인도 많은 고난을 겪는다. 죄와의 싸움은 예수님과 동행하기 때문에 더욱더 힘들다. 과거엔 죄라는 것도 몰랐고, 알았어도 마음껏 저지르는 것이 나름 짜릿했는데, 이제 더 많은 생각과 행동이 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죄를 짓고 나면 훨씬 더 무거운 죄책감이 짓누른다. 그냥 인생을 살아가는 것만 해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데,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겪는 고난과 시험이 가중됐다. 그래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예수님이 지라고 하신 멍에가 그렇게까지 쉽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데인 오틀런드는 그래서 ‘쉽다’는 말은 사실 ‘친절하다’로 이해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설명한다(엡 4:32). 예수님의 멍에는 인생의 짐 위에 추가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인생의 짐을 지고 살 때, 주께서 언제나 “친절”하게 자기 백성을 맞이하시고 도와주신다는 약속이다. 오틀런드는 “그분은 우리가 어려울 때 단지 도움만 베푸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신다. 그분은 언제나 싫어하는 내색 없이 우리를 부드럽게 감싸주신다. 이것이 그분의 마음이다. 예수님은 항상 이런 마음으로 행동하신다”라고 설명했다(30p). 그러므로 개인의 노력으로 인생의 짐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애쓰는 수고하는 자들이나 아무리 노력해도 밖에서 누르는 무거운 짐 때문에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유일하고도 참된 희망이 되신다. 그분께 나오는 자들을 두 팔 벌려 맞이하시는 주님은, 친절하게 그들의 짐을 대신 지시고, 그들 대신 수고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함께 하는 자들의 멍에는 쉽고 가벼운 것이다. 과거엔 그리스도 없이 살았다면 이제는 온 우주에서 가장 온유하고 겸손하고 친절한 분과 함께 산다.
지금 예수님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까?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그분은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진정으로 은혜를 바랐던 이들을 불쌍히 여겨 만져주며, 치유와 포용과 용서를 베푸셨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35p). 혹자는 계속 그분의 온유와 겸손에만 집중하면 균형 있게 주님을 바라보는 데 문제가 생기지 않겠냐고 묻겠지만, 저자는 1) 예수님의 속성이 서로 상충하지 않으며 2) 예수님의 속성은 단순하기 때문에, 그중 하나를 논의하는 것에 문제가 없고 3) 성경이 증언하는 것에 충성하는 것뿐 일부러 치우친 시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구약의 율법을 예로 든다. 부정한 것을 만지지 않는 것이 거룩함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으로서 부정한 땅에 오셨고, 부정한 백성을 만지셨다. 심지어 율법이 부정하다고 규정한 병자들과 죄인을 만나주셨다. 그분의 심연에 깊은 연민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분의 마음이 그분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고 설명했다(41p). 심지어 “동정심이 육신을 입고 세상을 돌아다닌다면 어떤 모습일까?”라고 물으며 “궁금해할 필요가 없”이 예수님이 바로 그런 삶을 사셨다고 확신했다(42p). 지금도 예수님은 그 마음이 변치 않으셨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히 13:8).
그리스도의 영(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보이신 행동이 온통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으로 점철되어 있으셨다면, 지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으로 역사하실 때, 우리가 경험하는 그분의 마음은 틀림없이 넘치는 긍휼과 자비와 온유와 겸손일 것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마라. 주님께 나아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그분의 마음을 오해하지 말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라. 당신이 아무리 심각한 또는 반복되는 죄로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분을 볼 낯이 없다고 여겨지더라도, 이런저런 상황과 환경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며 하나님을 불신하거나 원망하고 있더라도, 그분만큼 당신을 친절하게 맞이해줄 분이 어디 있는가? 그분만큼 당신을 두 팔 벌려 맞이하고 자상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그 짐을 대신 지시고 그 수고를 대신해 주실 분이 어디 있는가? 그분만큼 당신의 죄를 깨끗이 용서하시고 새로운 힘과 정결한 마음으로 회복시켜 주실 분이 어디 있는가? 그분만큼 변함없이 당신을 사랑하고 또 사랑하기를 영원무궁하게 하실 분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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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하신 예수님(마태복음 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께서는 창세 전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습니다.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려고 하나님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세상에 오셨습니다.곧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자기를 낮추심과 같이 자기를 낮추는 것을 겸손이라고 합니다.그래서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의 교인들에게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라고 하였습니다.[2]◈[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려고 예루실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올라가시는 중에 감람 산 벳바게에 이르러 두 제자를 보내시며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마21:2)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가신 이유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습니다.[3]◈[슥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겸손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타페이노스]라고 하는데 자기를 낮춘다는 뜻입니다.국어사전에는 겸손이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이라 하였습니다.겸손이라는 단어는 한문인데 謙(겸손할 겸) 遜(겸손할 손) 입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 자기를 낮추고 겸손해야 합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독생자 예수님을 공경하게 하시려고 심판하는 권한을 다 아들이신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4]◈[요5: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요5: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이러므로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읽으며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고 믿습니다.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을 공경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합니다.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 하셨습니다.이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를 받고 우리의 마음에 쉼을 얻습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를 합니다.베드로사도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벧전5:7) 하였습니다.또 바울사도는 빌립보교회의 교인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5]◈[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은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곧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그리고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이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성경말씀을 읽으며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받습니다.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많은 말씀으로 가르치셨습니다.[6]◈[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나 집에서 또 들이나 바닷가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쳐셨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즐겁게 들었습니다.이러므로 우리도 성경말씀을 읽을 때 즐겁고 감사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를 마치시고 일어나 수건을 가지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그리고 제자들에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13:14) 하셨습니다.곧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행하게 하시려고 본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7]◈[요13: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해 놓으셨습니다.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시는 동안 그 말씀을 다 이루셨습니다.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찾아온 많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말씀으로 가르쳐 주시고 아픈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예수님께서 많은 아픈 사람을 고쳐 주신 이유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8]◈[마8: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바울사도가 2차 전도여행을 실라와 함께 하였는데 그 여행 중에 빌립보를 거쳐 데살로니가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그리고 고린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하였습니다.그 편지에서 데실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바울사도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고 하였습니다.[9]◈[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우리는 항상 겸손하신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고 믿습니다.곧 성경말씀을 부지런히 읽으며 그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얻습니다.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였습니다.우리는 겸손하시고 온유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고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항상 예수님과 동행을 합니다.[10]◈[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감사와 간구의 기도]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에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온유하시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고 간구할 때 성령님께서 저희들에게 충만하게 임하여 주시고
저희들을 지켜 돌보아 주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질문]1.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합니까? (마 11:29)답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2.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까? (빌 2:3)답 :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 구원을 베푸시는 예수님께서는 겸손하여서 무엇을 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셨습니까?(슥 9:9)답 :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4. 하나님 아버지께서 심판을 다 아들이신 예수님께 맡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요 5:23)답 :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5.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빌 4:6)답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 예수님께서 자기를 찾아 온 큰 무리를 보시고 어떻게 여기셨습니까? (막 6:34)답 :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7.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요 13:15)답 :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8. 예수님께서 아픈 사람을 고치신 것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마 8:17)답 :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9.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말 곧 복음을 들을 때 누구의 말씀으로 받아야 합니까? (살전 2:13)답 :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10. 우리는 누구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까?(빌 2:5)답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