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휨노스) ὕμνος



찬송(휨노스. hümnŏs)  ὕμνος, ου, ὁ   스트롱번호5215

1. 찬송.  2. 노래. 3. 엡 5:19
발음 [ hümnŏs ]
  • 1.  찬송, 노래, 엡 5:19, 골 3:16.

ὕδέω ‘찬양하다’의 축약형

  • 문법설명  /  ὕδέω ‘찬양하다’의 축약형
    관련 성경  찬송(엡5:19, 골3:16).


찬송(3034) 야다(yâdâh)  יָדָה   

1. 던지다.  2. 피엘형 : 미완료형  וַיַדּוּ
3. 히필형 미완료형 יְהוֹדֶה
발음 [ yâdâh ]
구약 성경  / 117회 사용
관련 성경  /  쏘다(렘 50:14), 떨어지다(슥 1:21), 던지다(애 3:53), 인정하다(왕상 8:33, 대하 6:24), 감사하다(시 75:1, 대상 16:4, 23:30, 느12:24), 찬송하다(창 29:35, 대하 7:6, 시 45:17), 자복하다(민 5:7, 시 32:5, 단 9:4), 찬양하다(시 43:4, 71:22, 사 38:18), 칭찬을 받다(시49:18), 아뢰다(레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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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있다면 단연 찬송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노래하기를 좋아한다.

그리스도인은 찬송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매주 예배에서 찬송을 몇 곡이나 부른다. 
무슨 모임을 시작하기 전과 중간에 수시로 노래를 부른다. 
기도회 때에도 찬송은 반드시 있다. 
가정예배에서도 찬송을 부른다. 개인적으로도 찬송을 수시로 부른다.

심지어 그리스도인은 장례식에서도 찬송을 부른다.
불신자들이 볼 때 장례식의 노래는 경망스럽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기독교 장례식은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옥에서도 부르는 찬송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 감옥에 갇혔다. 
점치는 귀신들린 여자를 구해주었다는 것 때문에 억울하게 매를 맞고 쇠사슬에 묶였다. 
그런데 이런 암울하고 칙칙한 옥에서도 바울과 실라는 찬송을 불렀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바울은 또 다른 옥에서 찬송을 부른다. 
그것은 에베소서에서 잘 나타난다.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기록한 편지다(기원후 60년 경, 엡 3:1; 4:1; 6:20). 
바울은 로마에 죄인의 신분으로 잡혀 있을 때 찬송을 한 것이다.

에베소서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그리스도인은 슬픔과 고통스런 환경 가운데서도 찬송을 하는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찬송은 과연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이 자주 부르고 좋아하는 찬송은 무엇인가? 우리는 찬송이 좋아서 부르긴 하지만, 찬송이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를 수 있다. 성경에 나타난 찬송의 의미를 살펴보자.

‘찬송’의 의미

     도대체 ‘찬송’이 무엇이기에 그리스도인은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을까? 바울이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할 때 헬라어는 ‘유로게토스’(eulogetos)이다. ‘유로게토스’는 ‘좋은 것을 말하다’는 의미에서 온 단어이다. 한글로 번역하자면, ‘덕담’(德談) 같은 것이다. ‘유로게토스’에 해당되는 단어가 구약 히브리어에는 ‘바룩’(baruk)이다. 이 단어들이 하나님 편에서 사용될 때는 ‘복을 주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하시는 것이니, 복을 주신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사람 편에게 하나님을 향해 사용될 때에는 ‘찬송하다’라는 뜻이 된다.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좋은 것을 말하게 되니, 그것이 ‘찬양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찬송은 감사

     사람이 하나님께 드릴 것이 뭐가 있을까? 인간은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 우리 스스로 만든 뭔가를 드릴 수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드릴 뿐이다. 우리는 매 주일 모여 하나님께 예배한다. 그 때 우리가 드리는 것이 ‘찬송, 기도, 봉헌’이다. 그 가운데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이 드릴 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여기 히브리서 13:15에 나오는 “찬송의 제사”는 레위기 7:11-15에 나오는 ‘화목 제사’와 ‘감사 제사’와 같은 말이다. ‘감사하다’는 ‘찬양하다’는 말이고, ‘찬양’은 ‘감사’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떻게 감사와 찬양의 제사를 드렸을까?(레 7:11-15)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께 먼저 번제(희생 제사)를 드린다. 그 위에 감사제물의 일부를 태운다. 그러면서 감사제목을 말한다. 감사를 고백한다. 그렇게 희생 제사를 드릴 뿐만 아니라, 기름 섞은 무교병, 즉 이스트를 넣지 않은 딱딱한 빵도 드린다. 그리고 기름 바른 무교전병, 즉 이스트를 넣지 않고 기름을 발라 구운 맛있는 과자도 드린다. 마지막으로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구운 또 다른 종류의 과자를 함께 드린다(12절).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스트를 넣어 구운 빵도 감사 제사를 할 때 드린다(13절). 이 모든 것들을 ‘거제’로 하나님께 드린다. 곧 빵과 과자를 하나씩 좌우로 흔들어 하나님께 드린다. 그 후 그것을 제사장들에게 준다(14절). 이 맛난 것은 모두 제사장이 먹는다. 동시에 빠뜨리지 않고 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찬송을 부른 것’이다. 아마도 화목제사 가운데 감사 제사를 ‘찬양의 제사’라고 부른 것은 찬송이 포함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화목제사 가운데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송을 부른 것이 감사제사의 특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전통적으로 화목제사 가운데 감사 제사를 드릴 때 불렀던 찬양은 시편 42편 5절로 알려져 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또 한 편의 노래는 시편 100:4이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찬송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그것은 구약 시대의 ‘감사 제사’에서 잘 나타나고, 신약 시대에도 그런 의미를 살려 예배 가운데 실현하고 있다. 바울은 에베소서 5:18-20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말씀에서 봐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증거로, 시와 찬송, 신령한 노래가 나타난다. ‘시’는 구약의 시편을 의미하고, ‘찬송’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새롭게 만들어 부른 노래인 것으로 보이며, ‘(신령한) 노래들’은 성경에 나오는 시편 이외의 여러 노래들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이 세 가지는 모두 ‘찬양’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종합할 수 있다. 여하튼 그 찬양의 내용과 형식은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로 표현된다. 감사는 찬양이고, 찬양은 감사인 것이다. 그것은 구약의 감사 제사와도 연결되고 에베소서 5:20에 나타난 말씀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찬양은 삶으로

     그리스도인의 찬양은 베짱이처럼 일을 안 하고 노래만 부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일과 공부에는 게으르면서 노래하는 일은 좋아서 앞장서기도 한다. 노래를 인도하는 찬양 팀은 그런 점에서도 인기가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찬양은 단순히 노래를 즐긴다는 의미 이상이다. 물론 노래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하지만 칼빈이 ‘음악’을 ‘괴물’이라고까지 얘기할 정도로 위험한 요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은 온 회중이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하고(엡 5:19), 또 교회의 찬양은 악기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대상 16:6), 기교가 아니라 마음으로 노래해야 한다는 점을 종교 개혁가들은 분명히 했다.

     그러므로 찬양은 찬양 자체를 위한 것이면 안 된다. 찬양은 신앙인의 삶의 반영이며, 신앙과 삶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이다. 찬양이 전체 삶과 연결되지 않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말 것이다. 찬양은 자연스럽게 삶으로 나아간다. 그리스도인의 경건한 삶은 입술의 제사인 찬양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삶이 없는 찬양은 의미가 없다. 찬양은 감사와 복종과 순종으로 나아간다.



찬송의 정의 

1. 찬송이란 곡을 말하는 것도 아니며, 또 곡이 찬송의 일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찬송 가사가 없는 곡만을 가지고는 찬송이라 할 수 없다. 
찬송가란 노래가 붙은 찬송일 뿐이지 찬송은 꼭 노래가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는 곡이 없는 찬송을 해본 일이 없고 찬송이라면 가사보다 곡을 중점적으로 생각해왔고 좋아하는 찬송이란 좋은 곡의 찬송이지 좋은 가사의 찬송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찬송이란 곡만 가지고서는 찬송인지 보통 노래인지를 구 분할 수가 없다. 
비록 찬송가책에 있는 어떤 것을 택하여 피아노나 다른 악기로 그 곡을 연주한다 하더라도, 아니 가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곡만 허밍으로 부른 다해도 그 자체가 찬송이 될 수 없다. 
가사가 없이 곡만으로는 찬송이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어떤 이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한 곡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제 삼자가 이 곡만을 연주하거나 콧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찬송을 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찬송가에 보면 명곡이나 민요나 국가에 찬송 가사를 붙여 놓고 찬송가책에 수록해 놓은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 곡에 어떤 가사가 붙어 있느냐에 따라 명곡, 국가, 찬송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찬송가 79, 287, 245 참조)

2. 찬송이란 하나님의 속성(전능, 전지, 무소부재, 사랑, 자비)과 그가 하신 일(창조와 구원의 계획)을 알고 마음으로 부터 우러나온 감사와 찬양의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누구나 찬송 가사를 지을 수 있고, 찬송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찬송가사란 특수인만이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 개인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지은 찬양의 가사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공감하여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여 표현하므로 찬송이 될 수 있는 것 이다. 
즉 남이 지은 가사를 내가 그 뜻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영으로 하나님을 향해 표현하므로 훌륭한 찬양이 가능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기도에 따라 아멘으로 동참하므로 다른 사람의 기도가 바로 내가 드린 기도가 될 수 있는 거와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찬양이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의 표현을 말하는 것으로 곡이 꼭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즉 가사가 없는 찬송은 존재할 수 없지만 곡이 없는 찬양은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3. 곡이란 전 교인이 함께 부를 수 있도록 하는 편의이고 필수는 아닌 것이다. 

혼자 부른다면 무곡이 가능하나 여러 명이 함께 부르기 위해 박자로, 또 쉼표를 통해 같은 템포로 시작하고 마칠 수 있는 약속이 주어진 것이다. 
같은 가사에 다른 곡을 붙여 더 느리게 부르거나 더 높게 불러도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으나 같은 곡이지만 가사를 바꾸어 준다면 전연 다른 내용의 표현이 되는 것이다. 
달리 말한다면 곡은 틀리게 부른다 해도 가사를 하나님께 전달하는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사의 뜻을 이해 못하거나 가사를 틀리게 부른 다면 마음이 하나님께 전달되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사는 성서적이어야 하고, 또 그 가사의 뜻을 명확히 이해하고 마음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다. 곡이란 가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며 목적이 아닌 것이다. 곡이란 상품을 포장한 포장지에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찬송가책 안에도 비 성서적인 가사가 있을 수 있음을 전제하고 비성서적인 가사는 고쳐 부르거나 피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하나님께는 음악적 요소가 전연 무시된 음치의 찬송이나 음악 전문가의 찬송이나 동질의 찬송으로 인정되어질 수 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4. 시, 찬미, 신령 란 노래(엡 5:19; 골 3:16), 찬송(약 5:13): 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시편이나 기타 시) 즉 곡이 붙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고, 찬미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에 곡을 붙여 드려진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신령한 노래란 하나님을 찬양하는 글이 아닌 신앙적인 가사가 붙은 노래라고 구분 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고전 14:26의 "찬송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로 위의 시(엡 5:19)과 동질의 것일 것이다.

5. 찬송에서의 사부 찬송의 의미는 남녀 그리고 높은 음과 낮음을 가진 성도들 각자가 노래하기 편한 음역에서 노래하도록 하는 편의이며, 또 자기의 목소리를 이웃 사람의 목소리 크기와 밸런스를 유지케 하므로 회중 예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게 하여 주므로 좋은 점이 있다. 

통성 기도 시에 목소리 큰 자의 횡포를 생각하면 4부의 찬송의 장점이 많이 강조되리라 믿는다. 어떤 경우에도 사부의 찬송과 단음의 찬송이 찬송의 질을 구별해 주는 것은 아니다.

6. 성가대의 찬양과 중창, 독창자의 찬양이 위에서 언급한 정도의 수준이 된다면 찬송으로서 필요하고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겠으나 만일 합창이 곡을 중심해 있거나 사람의 귀를 위한 발표용(자랑)으로 된다면 찬송으로서의 수준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향한 기도와 찬송을 했던 거와 같은 수준으로 인간의 귀를 의식하지 말고 하는 찬양이어야 할 것이며, 악기의 도움을 전연 느끼지 않는 수준의 찬송을 할 수 있어야 하겠다.

7. 찬송은 가사에 있다고 강조한 대로 찬송에 있어서의 가사에 많은 사람들이 심혈을 기울여 가사 부문에 많은 진전이 있어야 마땅하며, 교계에서는 음악인 보다는 오히려 문인들이 더 존중 되어져야 마땅할 것 같으나 교회마다 음악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문인들은 교회에서 전연 그들의 직무가 부여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찬송은 바로 곡(음악)으로 오해 하고 있는 부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8. 기도를 문인들에게만 맡겨도 잘못이려니와 독창, 중창, 합창을 음악인들에게만 전담시키는 것은 찬송의 질을 점점 저하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더욱 일반 성도들에게 넓게 보급 시켜야 할 찬송의 특권을 점점 빼앗고 목소리 나쁜 사람은 늘 찬송을 못한다고 사양케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결과를 낳게 할 것이다.

9. 교회 안에 음악이 치중되면 될수록 하나님이 받으실 몫은 줄어들고 인간들이 받을 양은 많아지게 될 가능성이 있어서 주님께서는 저희더러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실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10.훌륭한 반주자의 반주만으로는 본인이 입술로 또는 마음으로 가사를 생각하며 부를 수 없을 때는 찬송을 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일평생 반주자로 수고로운 봉사는 했지만 찬송면에 서는 게을리 한 결과가 될 것이다. 
지휘자도 훌륭한 합창을 창조해 냈다 하더라도 그 본인이 입술로 가사를 생각하며 부를 수 없었다면 성가대원에게는 찬송을 하도록 했을지 모르나 본인은 찬송을 했다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독교는 모든 성도 각자에게 무엇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는데 가장 찬송을 위해 큰일을 한 지휘자나 반주자는 찬송을 개을리 했음을 시인하지 않으면 찬송의 의미도 모르고 찬양대를 이끌었다는 결론이 될 것이다. 
교회에서 흔히 듣게 되는 악기의 독주가 듣는 이의 마음에 와 닿았다 하더라도 곡조만 보고 곡만이 들려진 연주라면 찬양으로서는 가치가 없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수많은 지휘자, 반주자, 악기 연주가들이 음악에만 몰두해 있다고 한다면 찬송과는 거리가 먼 것이나 누가 그렇게 생각을 하겠는가? 
사실상 어려운 곡을 4부로 반주하는 반주자는 가사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성가대 지휘자는 사부 합창을 살리는 것이 목적이지 가사의 바른 이해와 바른 전달에 목적을 두고 있지 못 한다. 
합창에서는 부르는 이나 듣는 이가 화음이 잘 맞았으면 찬송을 잘 한 것으로 평가가 되고 혹시라도 화음에 차질이 났으면 잘못 했다고 평가를 받는 것이다. 
즉 찬송을 인간이 평가를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찬송은 인간 몫이 아니라 하나님의 몫임을 다시 강조한다.

성구

에베소서 5:19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 하며.

골로새서 3:16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고린도전서 14:15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히브리서 13:15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에베소서 1:5-6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 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로마서 15:11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저를 찬송하라.

야고보서 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 할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