πλήρης, ες 스트롱번호 4134
가득 찬
㉠ 막6:43
눅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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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 plērēs ]
- 어원
- 4130에서 유래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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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득 찬,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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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물건에 대해] ㉠ [속격을 가져]막6:43, 8:19. ㉡ [단독으로] 마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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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사람에 대해, 속격을 가져] 눅5:12, 행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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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완전한, 충분한, 충만한, 막4:28, 요1:14, 요이1:8.
연관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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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찬(마14:20, 막6:43), 충실한(막4:28), 충 만한(눅4:1), 심히 많은(행9:36), 가득한(행13:10, 19:28), 온전한(요이1:8).
채우다
영향을 주다
완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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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 plēthō ]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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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채우다, 영향을 주다, 완수하다, 공급하다, 눅1:15.
참고 정보
- 문법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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πλέω의 연장형
연관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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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설명πλέω의 연장형관련 성경가득하다(마22:10, 눅4:28, 행5:17), 적시다(마27:48), 충만함을 받다(눅1:15, 41), 차다(눅1:57, 2:6,22), 채우다(눅5:7), 충만하다(행4:8,31, 13:9).
확신
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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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 plērŏphŏria ]
- 어원
- 4135에서 유래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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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확신, 골2:2, 살전1:5, 히6:1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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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충만, 골2:2, 히6:11, 10:22.
연관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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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확신(살전1:5), 풍성함(골2:2, 히6:11), 온 전함(히10:22).
온전히 채우다
확신을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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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 plērŏphŏrĕō ]
- 어원
- 제1부정과거명령 πληροφόρησον, 제1부정과거부정사 πληροφορῆσαι, 수동태, 1부정과거부정사 πληροφο- ρηθῆσαι, 제 1부정과거수동분사 πλη- ροφορηθείς, 완료수동태 πεπληροφό- ρημαι, 수동태분사 πεπληροφορημέ- νος, 4134와 5409에서 유래
뜻풀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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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온전히 채우다, 성취하다, 완성하다, 눅1:1, 딤후4:5, 골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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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수동] 확신을 가지다, 확신하다, 골4:12, 롬4:21, 14:5.
연관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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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이루어지다(눅1:1), 확신하다(롬4:21), 확정하다(롬14:5), 다하다(딤후4:5), 온전히 (이행하다)(딤후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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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가리키는 일곱 가지 상징들
1. 바람, 2. 불, 3. 기름, 4. 물, 5. 인, 6. 검, 7. 비둘기
성경에는 성령을 상징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들이 있다. 특
구약에서는 성령은 여호와의 신으로 일컬어지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땅에서 그 거룩한 구속사역을 마치신 후 아버지께로 가고 그를 대신해서 성령이 다른 보혜사로서 이제 각 성도의 마음에 친히 거하고 성도들의 모임 가운데 살고 있다.
여호와의 신(사사기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1. 사사기 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2. [사사기 6:34]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3. [사사기 11:29]
이에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4. [사사기 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5. [사사기 14:6]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
6. [사사기 14:19]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곳 사람 삼십명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
7. [사사기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르는 동시에 여호와의 신의 권능이 삼손에게 임하매 그 팔 위의 줄이 불탄 삼과 같아서 그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8. [사무엘상 10:6]
네게는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너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되리라
9. [사무엘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10. [사무엘상 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11. [사무엘하 23:2]
여호와의 신이 나를 빙자하여 말씀하심이여 그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
12. [열왕기상 18:12]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이다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13. [열왕기하 2:16]
가로되 당신의 종들에게 용사 오십인이 있으니 청컨대 저희로 가서 당신의 주를 찾게 하소서 염려컨대 여호와의 신이 저를 들어가다가 어느 산에나 어느 골짜기에 던지셨을까 하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보내지 말라 하나
14. [역대하 20:14]
여호와의 신이 회중 가운데서 레위 사람 야하시엘에게 임하셨으니 저는 아삽 자손 맛다냐의 현손이요 여이엘의 증손이요 브나야의 손자요 스가랴의 아들이더라
15. [이사야 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16. [이사야 40:13]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17. [이사야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18. [이사야 63:14]
여호와의 신이 그들로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
19. [에스겔 11:5]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이렇게 말하였도다 너희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내가 다 아노라
20. [미가 2:7]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신이 편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행위 정직한 자에게 유익되지 아니하냐
21. [미가 3:8]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
신약에 나타난 성령에 대한 지시어들중 중요한 것 7개를 여기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바람 :
성령은 히브리어로 루아흐이고 헬라어로 프뉴마이다.
이 둘다 일차적으로는 바람 혹은 호흡이란 뜻이다.
그러니 바람이란 말은 성령이란 단어가 가지는 원래 의미에 가장 가까운 상징 내지는 지시어일 것이다.
성령은 우리 가운데 바람처럼 오시고 호흡처럼 내주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한복음 3장 8절),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한복음 20장 21-22절)
바람은 성령의 자유롭고 주권적인 역사를 생각하게 해준다.
2. 불 :
불은 성령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다.
교회에서 아주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성령의 불이라고 말이다.
이는 성령의 세례와 관계가 크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데 이것을 요한은 자신이 주는 물세례에 대해서 그리스도가 주는 성령과 불의 세례라고 말한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3장 11절)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 12장 49절)
불은 우리의 죄를 태우고 불꽃이 일어나듯이 우리를 하나님의 은사로 뜨겁게 해주는 모양을 상기시킨다.
특히 위에 바람과 불 두가지는 성령이 처음으로 이 땅에 성도들 가운데 보혜사로 임하실 때 동반된 현상이다.
"2:1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2장 1-4절)
3. 기름 :
기름도 성령의 대표적인 상징이다.
하나님의 성신의 임재는 구약에서 종종 기음부음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부르심이나 보내심을 받는 사람은 기르부음의 절차가 뒤따른다.
즉 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등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기름부음을 받고 그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는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그에게 자원하는 심령과 지혜를 주어 그 일을 거룩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게 수행하는 표라고 이해된다.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 직접 부르심을 받았다는 표징이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사도행전 10장 38절),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견고케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고린도후서 1장 21절),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한일서 2장 20절),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한이서 2장 27절)
4. 물 :
물은 세례의 도구이다.
세례 받을 때에 우리는 물세례를 받고 동시에 성령 세례도 받게 된다.
반드시 물세례와 성령세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할수는 없어도 하여튼 우리가 받는 물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의 세례가 가장 본질적인 차원에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 세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물세례만으로 구원에 이를 수도 없고 그리스도인으로 불려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로마서 8장 9절).
기름이 거룩함을 말한다면 물은 깨끗함 내지는 정결함을 말한다고 볼수 있다.
또 갈망과 및 목마름을 해갈해주는 힘이다.
"명절
끝 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요한복음 7장 37-39절)
5. 인 :
도장을 말한다.
이것은 성령이 우리 구원의 확실한 보장이 된다는 뜻이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듯이 하나님이 우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구원되었다는 증거로 성령으로 도장을 찍었다.
인치다는 도장을 찍고 밀봉을 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목자들이 자기 양을 표시하기 위해서 불로 지진 도장을 하듯이 하나님은 자기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에게 인치심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임을 확증한다.
이는 바로 성령의 능동적이고 자발적인 구원의 사역이다.
"썩은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요한복음 6장 27절),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고린도후서 1장 22절),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장 13절),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장 30절)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디모데 2장 19절)
그러므로 인침은 확실한 보증을 뜻한다.
그러기에 배신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 /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가서 8장 6-7절)
6. 검(칼) :
성도가 가진 유일한 공격용 무기이다.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전신갑주가 다 방어용이면 유일하게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가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사용하는 공격용 무기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광야에서 사단에게 세번 시험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즉 성령의 검으로 물리치신 것이다.
무사가 칼다루는데 능하듯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능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브리서 4장 12절)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에베소서 6장 10-17절)
성경 말씀은 성령이 주시는 말씀이다.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디모데전서 4장 1절),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히브리서 3장 7절),
"성령이 이로써 보이신 것은 첫 장막이 서 있을 동안에 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아직 나타나지 아니한 것이라"(히브리서 9장 8절),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요한일서 5장 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요한계시록 2장 29절)
성령은 친히 말씀하시고 증거하신다.
그래서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의 공격을 붕괴시키는 치명적인 공격용 무기가 된다.
7. 비둘기 :
비둘기는 온유하고 평화로운 동물로 이해되어 평화의 상징으로 온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스도가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받고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셨다고 성경은 증거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마태복음 3장 16절),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누가복음 3장 22절)
이때 성령은 창세기 1장에서 혼돈의 흑암 중에 수면위를 운행하는 성령의 모습을 생각나게 해준다.
날개를 양쪽으로 펴고 품는 듯 하늘을 나는 모습이다.
그리고 비둘기는 순전함 내지는 온유함의 상징이다.
그러기에 예수도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장 16절)고 말한다.
비둘기 같이 온유하고 오래참고 사랑과 자비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성품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말이다.
우리는 위에서 성령의 생각나게 하는 성경의 중요한 표현을 살펴보았다.
이는 모두 성령의 본질적인 사역을 말하면서 동시에 성령의 전으로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각자 혹은 교회로서 사회에서 행해야 하는 삶의 자세를 지시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바람처럼 자유롭고 알수 없는 능력을 입어 불로 죄를 태우고, 물로 깨끗하게 씻어 정결하게 되고, 기름으로
거룩하게 바르고 하나님의 확실한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담대하고 용감하게 영적
전투를 하되 항상 사랑의 마음으로 두렵고 떨리는 가운데 비둘기같이 순결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전에 말한 성도의 길에 도사리고 있는 12가지 덫을 피해갈 수 있다.
오직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라.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라디아서 5장 16-18절), 그러면 성령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베소서 1장 13절)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갈라디아서 5장 5절)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갈라디아서 5장 25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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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상징들
물은 성령의
상징이다.
불은 성령의 상징이다.
바람은 성령의 상징이다.
올리브 기름은 성령의 유형이다.
비와 이슬은 성령을 묘사한다.
비둘기는 성령님을
묘사하고 음성은 성령님을 묘사한다.
봉인은 성령님을 묘사한다.
성경을 통하여 이 상징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다.
요한복음 3:16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요한복음 7:38-39
성령님은 사람 안에서 나오는 “생수의 강들”과 같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성령님은
물에 비유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물을 아무런 의미없이 비유로 사용하지 않으신다.
주님께서 드시는 비유들은 항상 정확하며 과학적으로도 오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에 사용된 예표들에는 전혀 오류가 없다.
이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성령님의 유형으로 물은 적합한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실로도 증명이 된다.
1. 물은 땅을 기름지게 한다.
땅에서 열매를 거두려면 땅에 물을 주어야
한다. 물은 땅을 기름지게 한다. 사하라 사막이나 웨스트 텍사스나 그와 비슷한 곳에 가 보면 식물이 거의 없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이
문제인가? 비가 거의 오지 않기 때문이다. 모하비 사막을 통과하거나 캘리포니아에 있는 데쓰 밸리를 가 보면 거기에 아무것도 살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바위와 모래뿐이다. 무엇이 문제인가? 물이 없는 것이다. 물은 땅을 기름지게 한다. 성령으로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시편 1:3에 있는
강가에 심겨진 나무로 비유된다. 경건한 사람은 “...강가에 심겨진 나무 같아서”라고 기록되어 있다.
2. 물은 상쾌하게 하고 기운나게 한다. 요한복음 4:7-14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치고 목마르셨을 때 마실 물을 달라고 하셨다. 시편 46:4과 이사야 41:17-18에서 물은 기운나게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물은 지구상에서 공기를 제외하고 그 어떤 것보다도 더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사람은 음식보다도 물이 있을 때 더 오래 생명을 보존할 수 있다. 물은 참으로 기운 나게 한다. 몸은 물을 필요로 한다. 보통 사람의 경우 하루에 물 약 1리터를 필요로 한다.
3. 물은 값없이 주어진다(사 55:1, 요 4:14, 계 22:17을 보라). 성경은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생명수를 값없이 마시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이사야 55:1에서 값없이 물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물은 값없이 주어진다. 그래서 성령님은 원하는 자에게 주어진다. 사람이 하나님께 성령으로 채워 주시도록 그의 혼을 구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주시도록 간구할 때 이 일은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은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라”(롬 6:23). 하나님의 선물은 보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물침례와 연관시키는 성경 변개자들은 자신들이 지금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사도행전 2:38로 어리석게 된 자들이다. 사도행전 2:38을 구원계획으로 믿다가 지옥에 가버린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다. 그런데 그 수가 엄청나다. 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이 어리석은 자들이 성경을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사도행전 2장에서는 성령을 받는 것이 침례받는 것과 연관이 있고 안수와는 무관하다. 사도행전 8장에서는 성령을 받는 것이 안수와 연관이 있고 침례와는 무관하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방언을 말했으나 사도행전 16장과 사도행전 8장에서는 구원받은 사람이 방언을 말하지 않았다. 사도행전 10장 이후까지는 확실하게 계시된 것이 아무것도 없고 사도행전 15장까지는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성경적 교리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과도기에 해당하는 구원받는 방법이 다섯 가지나 되는 사도행전에서 구원 교리를 증명하기 위한 증거 구절로 사도행전 2:38을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 상상해 보라. 우리는 오늘날도 성령을 받는 것이 사도행전 2:38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눈먼자들을 인도하는 눈먼 안내자들과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 초대 교회 때 유대인들을 위해 주어졌던 방언(외국어)의 은사는 사도들의 사역과 함께 끝이났고 오늘날 교회들에서 하는 이상한 방언(알지 못하는 소리)은 마지막 때 미혹하는 마귀의 영이 준 거짓 은사임
성령의 상징들 (2)
사람들은 성경 전체에서 다른 어떤 구절보다도 사도행전 2:38을 구원의 구절로 붙듦으로써 지옥에 가게 된다. 사람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1) 사도행전 2:38에는 피의 속죄가 없다. 2) 사도행전 2:38에는 중생이 없다. 3) 사도행전 2:38에는 새로운 출생이 없다. 4) 사도행전 2:38에는 그리스도인이 한 명도 없다. 5) 사도행전 2:38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유대인들이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이다. 6) 사도행전 2:38에서는 아무도 구원받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지 않았다. 7) 사도행전 2:38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아직 계시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사도행전 2:38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성령님을 나타내는 물은 값없이 주어진다. 사도행전 2장에는 전제 조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도행전 2장의 사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 아직 기록되지 않은 때이다. 그리고 바울이 구원받기 전이다. 여기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율법 아래 있는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이다. 출발을 조심해야 한다.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성령님은 값없이 주어진다. 이것이 믿음에 의한 약속이다(갈 3:14). 성령님은 요청에 의해 값없이 주어진다(계 22:17).
4. 물은 깨끗하게 한다. 그리스도의 몸은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고 깨끗하게 된다(엡 5:26). 바울은 사람이 구원받을 때 성령님에 의해 거룩하게 되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시도록 떼어놓으신다고 말했다.
5. 물은 풍부하다. 요한복음 7:37-38에서 우리는 물뿐만 아니라 생수의 강을 보게 된다 모든 물이 마시는 물은 아니다. 많은 물은 소금물이다. 물로서의 성령님은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신다. 소금물의 유형으로서 성령님은 깨끗하게 하시고 불순물들을 제거하신다. 맑은 물의 유형으로서 성령님은 기운나게 하신다.
마태복음 3:11에서 요한은 주님께서 “성령으로 또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시리라”고 말하였다. 성령으로 충만했던 침례인 요한은 빛나는 빛이었다(요 5:35). 불은 불타고, 정화시키고, 탐색하게 한다. 물론 마태복음 3:11의 불침례는 성령 침례가 아니다. 이는 지옥에서 죄인들이 받는 침례이며 재림 때 믿지 않는 자들이 받는 침례이다. 불과 같은 성령님은 정화시키시고, 깨끗하게 하시며, 정결케 하시고, 빛을 밝히신다. 성령님을 묘사하는 가장 위대한 것들 중 하나인 불은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 자녀들을 이집트에서 인도하는 불기둥으로 나타난다. 이는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것을 나타낸다.
요한복음 3:8을 보자.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 분명히 바람은 성령님의 유형이다.
바람이 강력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태풍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그 위력을 안다. 회오리 폭풍인 토네이도는 집에 있는 온갖 가구와 마루 바닥을 잡아채 가고, 나머지 것들은 그대로 놓아둔다. 이 태풍이 불면 집 반채는 날아가고 반 채는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또 집에 있는 사람들을 날려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집 전체를 계곡 밑으로 날려보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휴거 때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을 들어올리실 때도 비슷한 현상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이 있는 곳과 하나님께서 계신 곳 사이에 진공상태를 만드셔서 구원받은 자들은 끌어올리시고 쓰레기와 쭉정이들을 남겨 놓으신다. 바람은 강력하다.
* 초대 교회 때 유대인들을 위해 주어졌던 방언(외국어)의 은사는 사도들의 사역과 함께 끝이났고 오늘날 교회들에서 하는 이상한 방언(알지 못하는 소리)은 마지막 때 미혹하는 마귀의 영이 준 거짓 은사임.
성령의 상징들 (3)
바람은 소생하게 한다. 에스겔서 37:9-14에서 에스겔이 바람에게 살해된 자들에게 와서 숨을 쉬라고 말하였다. “숨이 그들 속으로 들어갔고, 그들이 살아나 그들의 발로 서니 심히 큰 군대더라.” 14절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것들을 해석해 주시는데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들어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바람은 소생하게 한다. 새로운 출생을 주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시고 그리스도인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같은 성령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죽은 몸에 생명을 주신다.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 분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바람은 독립적으로 행동한다. 요한복음 3:8에는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라고 말씀하신다. 성령님은 원하시는 것을 하신다. 성령님은 신격의 세 번째 인격이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하신다. 성령님은 사람들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신다. 성령님은 보이시지는 않지만 실제적인 분이시다. “바람이 임의로 불어서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성령으로 난 사람은 모두 그와 같으니라”(요 3:8). 이것은 단순히 새로운 출생은 정확하게 언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새로운 출생은 요한복음 1:12에 있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고백하고, 믿고, 침례받는” 것이 전부라면 총알같이 지옥에 가고 만다. 새로운 출생의 조건은 회개도 아니고, 믿음도 아니고, 고백도 아니고, 침례도 아니다. 새로운 출생의 조건은 하나님의 아들을 자신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요 1:12-13). 그러므로 세례받고, 교리문답만 받는다면 성령님께서 언젠가 여러분을 살려주시기 위해 보이지 않게 일하시는 것에 대해 염려하지 말라. 성령님은 여러분을 속이지 않으신다.
성령님을 묘사하는 것에는 기름이 있다. 시편 45:7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름 붓는 것을 말씀하신다. “곧 당신의 하나님께서 당신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당신의 동료들보다 우위에 두셨나이다.” 기름은 출애굽기 29:7과 누가복음 4:18에 있는 것처럼 헌신을 가져온다. 구약에서 올리브 기름은 헌신의 유형으로 사용되었고 사람을 하나님께 헌신시키는 분은 성령님이다. 이사야 61:3에서 성령님은 위로하신다. 슬픔의 기름 대신 기쁨의 기름을 주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9도 읽어 보라. 기름은 빛을 준다. 마태복음 25장에서는 어리석은 처녀들이 등에 기름이 없어 빛을 비추지 못했다. 기름은 상처를 치유한다. 누가복음 10:34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은 상처에 기름을 부었다. 이는 성령님을 묘사한다.
성령님을 묘사하는 또 다른 상징은 비와 이슬이다. “그가 벤 풀 위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나기같이 내려오리니”(시 72:6). 비는 기운나게 한다. 비는 풍부하다. 특히 시편 68:9과 이사야 18:4을 살펴 보라. 한 성읍에 비가 없는 것은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것을 묘사한다. 이것은 하나님께 등을 돌린 나라에는 가뭄이 오기 쉬움을 의미한다. 비는 성령님의 유형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땅으로부터 자비를 거두고자 하실 때에는 비를 내리지 않으신다.
성령의 상징들 (4)
하나님께서 비를 보내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다. 주님께서 지상으로부터 비를 삼 년 반 동안 단절시키신다면 (대환란 때에는 이렇게 하실 것이다.) 여러분과 가족 모두는 마치 지금의 아프리카처럼 굶주리게 될 것이다. 어떤 나라든지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처럼 열 세 살도 되기 전에 성적으로 타락해 버리면 비는 오지 않고, 우물도 말라버리고 사람들은 (이 경우는 에디오피아) 굶어 죽을 지경이 되어 서로를 잡아먹게 된다. 어떤 나라라도 인도처럼 모시는 신들이 수천 개가 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종교는 하나”라든지 “종교적 관용”이라는 말로 시간 낭비하지 말라. 비가 오지 않는 원인은 이단들 때문이며 그들 손이 피를 부른 것이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을 믿지 않고, 이교도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애쓰는 사역을 믿지 않는 사악하고 타락한 이단들은 그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비를 내리지 않으시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1933년에 루스벨트가 금주법을 폐지했을 때 극심한 가뭄이 켄사스 서부와 오클라로마 서부와 텍사스를 말려 버렸다. 먼지는 눈더미처럼 쌓여 4-5 피트나 되었다. 누군가 마당 뒤에 세운 간판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당신은 우리에게 맥주를 주었다. 이제 물을 달라.” 우리가 맥주를 선택했을 때 물을 추방한 셈이다. 이로 인해 인플레와 세금은 1933년 이후 두 배가 되었고 다음 10년 안에 또 다시 두 배가 될 것이다. 하나님 없이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 없다. 지금의 타락한 방식대로 살면서 “풍요로운 초원”이나 “서광”을 기대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비를 끊으실 것이다. 이 비는 성령님의 유형이다.
비둘기는 마태복음 3:16에서 성령님의 유형이다. 비둘기는 매우 온화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비둘기와 같은 눈을 가지셨다. 마태복음 10:16에서 그리스도인은 비둘기와 같이 순수함을 보게 된다. 성령의 열매 중 하나는 친절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오는 지혜(성령님)는 첫째, 순수하고 그 다음은 화평하며, 친절하고, 양순하며, 자비와 선한 열매들로 가득하고...”(약 3:17). 입에 게거품이나 물게 하고 땅바닥에 구르고 중얼중얼 거리며 겁쟁이처럼 흐느껴 울게하는 화 잘 내는 광란적인 영이 아니다. 친절하고 온화한 영이다.
성령님은 음성과 같다. 음성은 인도한다(사 30:21). 이 음성은 믿는 자 안에서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증거한다(마 10:20). 이 음성은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경고한다(요 16:7-11, 히 3:7-11). 성령님의 음성은 귀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안에서 들리는 음성이다. 안에서 음성이 들릴 때 그 음성이 성경을 증거하고 있는지 분별하여 영을 분별해야 한다. 내부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으면 그것은 마귀다. 왜냐하면 마귀는 성경을 기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거룩하신 성령님은 거룩한 성경을 쓰셨다. 한 번은 “거룩한” 사람이 “거룩한” 목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부인이 당신을 떠나 이 부흥회 동안 저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거룩한” 목사가 말했다. “주님은 막대기를 가지고 당신 머리를 부숴 버리라고 말씀하셨소.”
성령님은 에베소서 4:30에 있는 봉인과 같다. “너희가 그로 인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봉인은 무엇을 확증하는 것이다(요 6:27). 성령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인치시고, 확정하시고, 보증하신다(고후 1:21-22). 봉인은 봉인된 모든 서류를 보증해 준다(엡 1:13-14). 봉인은 그리스도인이 영원에 있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게 될 때까지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보증이다.
성령의 상징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을 경배한다(요 4:24).
우리는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배한다(빌
3:3). 우리는 성경을 쓰신 성령님을 통해서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고전 2:14). “이는
성령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라”(고전 2:10).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님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
연합은 어찌나 밀접한지 성도는 성령님의 노예라고 불린다. “영 안에” 있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 증거이다(롬 8:9). “영
안에” 있게 되는 것은 소리지르고 고함치고 울부짖고 입에 거품을 물며 뒤로 자빠지고 황홀경에 빠지는 체험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성령님이
아니다.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는 성령님 안에 있다(롬 8:9). 그리스도인은 성령님 안에서 산다(갈 5:25). 그는 성령 안에서
행한다(갈 5:25). 그의 지혜는 성령님 안에 있다(행 6:3). 그는 성령님 안에서 기도한다(엡 6:18).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9). “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영 안에 있는 것”은 요한계시록 4장에서 요한이 갑자기 영적인 몸으로 변모되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그것은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로마서에 있는 그리스도인의 상태가 아니다. 거듭난 사람은 항상 영 안에 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는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고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이다(요 4:24). 그의 머리는 하늘에 있다. 그는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 “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그는 그리스도의 뼈와 몸과 살의 일부이다(엡 5장). “한 성령에 의하여 우리 모두가 한 몸 안으로 침례를 받았으며...”(고전 12:13). 그리스도인들은 영 안에서 산다(갈 5:25). 왜냐하면 그들의 삶이 주 예수님과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성령 안에서 행한다(갈 5:25, 엡 5:8-10). 성령님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하시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믿음으로 행하는 길을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의 봉사는 성령님의 능력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행 6:3, 고전 2:4).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는 “영 안에서” 행해져야 하며 성령님께서 기록하신 내용에 따라 성령님께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신 내용 즉 성령님으로 인도되어져야 한다. 성경 지식 없이는 성령님 안에서 기도하는 방법도 모르고 성령님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방법도 모르고 성령 안에서 행하는 방법도 모르고 “성령 안에서” 행해지는 그 어떤 것도 모른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들이 성령을 좇아서 살기 원하시고 육신을 좇아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고 영과 진리 안에서 경배를 드려야만 한다) 어떻게 경배드려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지 그 지시사항들을 성경 안에 기록하셨다. 이 지시사항들은 지켜져야만 한다. 사도행전 2:38을 왜곡시켜서는 안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도행전 2:38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을 혼잡하게 만들거나 이 구절이 믿는 자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필자가 말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라.”는 것이다(딤후 2:15).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에 순종하는 것이다. 그 말씀의 문맥을 살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인지 정확히 구분하여 그 말씀에 순종해야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