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로스 : 카이로스의 변화는 질적인 것으로 새로운 것
* 크로노스 : 크로노스의 변화는 시간적인 것으로 새로운 제품을 의미
καιρός, οῦ , ὁ 스트롱번호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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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 시점, 기간,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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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일반적으로] 달가운 때, 고후6:2, 어려운 때, 딤후3:1, 열매 맺는 때, 행14:17, 때때로, 정규적으로, 요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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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옳은 때, 알맞은 때, 좋은 때, 제때에, 마24:45, 눅12:42, 행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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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정한 때, 마13:30, 21:34, 막1:15, 행17:26, 갈4:10, 6:9, 딤전2:6, 딤후4:6, 딛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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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종말론적 숙어] 마8:29, 16:3, 눅21: 8, 고전4:5, 엡1:10, 계1: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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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때(마8:29, 눅8:13, 딤후3:1), 날(마16:3, 눅1:20, 고후6:2), 세월(골4:5), 연대(행17:26), 틈(행24:25), 현재(롬8:18, 히9:9), 기회(갈6:10), 항상(엡6:18).
χρόνος, ου, ὁ 스트롱번호 5550
1. 시간. 2. 유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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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간, 때, 마25:19, 눅8:27, 요7:33, 행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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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예, 지체, 계2:21,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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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성경 / 때(마2:7, 행1:7, 벧전4:2), 시대(행17:30), 얼마간(행19:22), 시간(11:32), 기회(계2:21), 동안(막2:19), 기한(눅1:57), 시대(행17:30), 항상(행20:18), 날(행27:9), 영세(롬16:25).
시간(時間)과 때 - "크로노스 kronos" "카이로스 kairos"
시간은 무엇일까, 세월은 무엇이며, 때는 무엇일까?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가 있는데, 그 뜻이 사뭇 다르다.
크로노스(고대 그리스어: Χρόνος)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사용되어 왔고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에서도 사용되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무형의 신으로 묘사되거나, 형상으로는 긴 수염을 가진 늙은 현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크로노스는 영어의 chronicle (연대기) chronology (연대학) 정밀한 시계 chronometer 등 시간과 관계있는 단어들의 어원이다.
세상만사를
수평적인(horizontal) 혹은 직선적인(linear) 시간상에 차례차례 세울 수 있다면, 모든 사건들은 선후 관계를
가지고 인과관계 법칙을 따르게 될 것이다.
나이 지긋한 현자가 매우 정밀하게 관리하니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만사가 질서정연하게
기록될 듯하며, 만사가 엄격하게 인과관계를 따라 정열 될 것같이 보인다.
카이로스 신
- 카이로스 신은 저울을 가지고 있고, 등과 발에 날개가 있다.
역동적이고 무척 빠르게 움직일 것 같다.
카이로스 신은 기회의 신의 이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남긴 카이로스 신의 모습은 카이로스 신의 모습 - 긴 수염을 가진 늙은 현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카이로스 신의 조각을 보면 역동적이고 근육질이다.
이 조각에서 카이로스 신은 한 손에 저울을 들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다.
카이로스 신은 등에 날개가 있고, 발에도 날개가 있다. 매우 빠르게 지나갈 듯 역동적인 모습이다.
카이로스 신은 앞머리는 치렁치렁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이다.
앞에서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붙잡을 수 있도록 하나, 카이로스 신이 지나간 후에는 뒤에서는 붙잡을 수 없게 하기 위함이란다.
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카이로스가 무엇인가의 무게를 측정하려는 것인가 보다.
고대 그리스인들도 삶의 가치를 판단할 때,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보다는 무엇을 성취하였는가를 측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음을 엿보게 한다.
살아온
삶의 가치를 무게로 측정할 수 있을까?
만약 삶의 굴곡과 성취, 삶의 품위와 의미를 평가하는 저울이 있다면, 저울에 사용하는
기준치의 무게는 어떻게 정해야 하는 것일까?
무게를 잰다는 것이 최후의 심판을 위한 것일까?.
카이로스 신
- 한 손에 저울을 들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다. 카이로스 신은 등에 날개가 있고, 발에도 날개가 있다. 매우 빠르게 지나갈 듯 역동적인 모습이다
시간과 때 - "크로노스 (kronos)"와 "카이로스 (kairos)"
시간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가 있는데, 그 뜻이 사뭇 다르다.
크로노스(고대 그리스어: Χρόνος)는 그리스 신화에서 자주 사용되어 왔고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에서 사용되었다. 크로노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무형의 신으로 묘사되거나, 긴 수염을 가진 늙은 현자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크로노스는 영어의 chronicle (연대기) chronology (연대학) 정밀한 시계 chronometer 등 시간과 관계있는 단어들의 어원이다.
크로노스 신
- 크로노스는 영어의 chronicle (연대기) chronology (연대학) 정밀한 시계(chronometer) 등 시간과 관계있는 단어들의 어원이다.
긴 수염을 가진 늙은 현자의 모습의 "크로노스가 정밀하게 관리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흐르고 만사가 질서정연하게 기록될 듯하며, 만사가 엄격하게 인과관계를 따라 정열 될 것같이 보인다. 세상만사를 수평적인(horizontal) 혹은 직선적인(linear) 시간상에 차례차례 세울 수 있으니, 모든 사건들은 선후 관계를 가지고 인과관계 법칙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카이로스 신은 사뭇 근육질의 역동적인 모습이다. 카이로스는 적절한 때 또는 초월적인 순간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직선적인(linear) 선을 성실하게 따르기보다는 방향을 예측할 수도 없고, 빠르게 움직일 듯하다.
수평적(horizontal)이고 직선적인(linear)인 크로노스 시간이 질서정연하고 인과관계를 따르는 것을 거부할 기세이다.
카이로스 신은 한 손에는 저울을 들고, 한 손에는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있다. 저울은 가지고 있음은 경중을 따지겠다는 것일 터이니 심판을 상징하는 듯하다. 카이로스 신의 앞머리는 치렁치렁하고 뒷머리는 대머리이다. 앞에서는 치렁치렁한 머리를 붙잡을 수 있게 하는데 지나간 뒤에서는 붙잡을 수 없게 하기 위함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크로노스가 일직선의 철로 위를 질서 있게 움직이는 것 같다면, 카이로스 신은 언제 어디서 우리에게 다가올지 알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마주하기도 불잡기도 어려울 울만큼 매우 빠르게 우리 곁을 지나칠 듯한 모습이다
카이로스 (kairos)는 인과관계에 따라서 성실하였는가 여부를 따지기보다 성과가 있었는지를 평가하겠다고 말하는 듯하다.
카이로스 신 - 카이로스 신은 저울을 가지고 있는 천사로 표현되고 있다.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때 - 카이로스
성경에서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중요시하고, 이때 사용하는 단어가 "카이로스"이다. 세상의 중요한 사건들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때에 일어나는 사건이라고 믿는다. 성경에서는 창조주 하나님이 역사하는 수직적(vertical) 관계 - "때"를 강조한다.성경에서의 주요 사건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이며,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이나 인과관계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구약 전도서 기자는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과 인간이 사는 세상만사들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는 적당한 때(kairos)가 되어서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리고 때(kairos)는 예정된 기능을 다 한 다음에는 소멸하는 것으로 본다. 성경의 저자들은 모든 일의 배후에는 인간이 알 수도 측정할 수도 없는 신비 즉 우주 만물을 창조하고 섭리하시는 "영원자"(the Eternal) 하나님의 섭리와 신비가 개재되어 있다고 믿는다.
성경은 세상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개재된 때(kairos)에 일어난다고 말하면소, 사람은 때(kairos)를 깨어서 기다리며, 때(kairos)가 이르면 놓치지 않고, 이 kairos를 잡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마땅히 이때가 이르기까지는 각자에게 주어진 크로노스를 아끼고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부지런히 행하면서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물리적 기간은 길어야 100년이고, 이 100년은 크로노스적 시간으로 우리의 의지와 관계없이 쏜살같이 날아간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나 잠이 들어 있을 때나 시간은 흐른다. 그 끝은 각자의 삶의 끝에 맞추어진다.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시간으로 지나갈 뿐이다. 지상에서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지상의 썩을 것을 위하여 애쓰면 지상에서 성공한 것들이 많을 수 있으나, 지상에서 성공하여 쌓은 것들이 저울에 달아보니 의미가 없다면 그냥 버려질 것이다.
이 저울의 추는 상징적이다. 우리가 의미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추수할 때에 거둘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하니 살아가는 동안에 추수할 때 거둘 열매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권고한다.
지인사 대천명 盡人事 待天命라는 말은 사람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면, 한정된 삶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많은 일들'중에서 어떤 일을 먼저 해야 할까? 선택은 나의 몫이다. 나의 선택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성경에서는 혼자서만 애쓰는 것을 경계한다. 지혜로운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라고 권장한다. 삶의 현장에서 선한 일로 수고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라고 권장한다.
전도서 기자는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맞아 들어가도록 만들고, 사람이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을 선물로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하니 주어진 시간 삶의 현장에서 선한 일로 수고하고, 주어진 열매들을 즐거워하라고 권장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의 기간 동안을 되돌아본다. 내가 나름대로 세운 목표를 위해 애를 쓴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내가 나름대로 세운 목표를 위해 애를 쓴 것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할 만한 일이고 해야 할 일들의 우선순위에 맞추어졌는지를 생각하면 답이 쉽지 않다.
열심은 두려움을 잠재우는 효과가 있다. 이 열심은 깨어서 "때"(kairos)를 알아차리는 것을 방해할 수 있다.
열심보다는 먼저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성령의 도움을 받으라고 성경은 말한다.
"때"(kairos)가 임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지혜를 갖도록 도움을 청하는 것이 더 현명하다.
열심으로 나의 눈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지혜를 청해야 할 때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섭리가 개재된 때(kairos)를 만나서 지체없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미 있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성경의 크로노스적 사건들 1: 여리고의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의 선택:
마태는 예수를 보기 위하여 나무 위에 오른다.
마태에게 중대한 카이로스의 순간이다. [누가복음 19:1~10]
여리고의 세리장이요 부자였던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하던 일을 멈추고 나섰다.
키가 작았던 삭개오는 체면을 벗어던지고, 예수를 보기 위하여 뽕나무 가지 위로 나무 위에 오른다.
그리고 그가 만나고 싶어 한 예수의 부르심을 받는다.
이에 삭개오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말하고, 이후 예수의 제자가 된다. 삭개오에게 이 만남은 그의 삶을 극적으로 바꾸는 크로노스적 사건이었다.
개역개정 누가복음 19장 예수와 삭개오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곱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성경의 크로노스적 사건들 2 : 오순절 성령 세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120사도들에게 주어지는 카이로스의 순간.
핍박을 두려워하면서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하던 120사도는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
성령의 세례를 받은 후, 이들은 담대하게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기 시작하기 시작한다.
성경의 크로노스적 사건들 3 : 야곱에게 브니엘에서의 밤 창세기 32:24~31
야곱은 가족을 모두 얍복강 건너로 보내고 홀로 남는다.
형 에서를 만나게 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밤을 새워 기도한다.
야곱은 천사를 만나게 되었고, 밤이 새도록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을 한다.
그날 브니엘에서 야곱은 새로운 이름 이스라엘로 불린다.
새로운 사람이 된다.
야곱에게 브니엘에서 밤은 카이로스적 사건의 시간이다.
개역개정 창세기 32장 24~31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1)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사건은 카이로스적 사건이다.
Rembrandt, Eugène Delacroix 등 화가들이 이 위대한 사건을 그림으로 그렸다.
야곱은 온 근육은 터질 듯 긴장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천서를 쓰러뜨리려고 하는 모습이다.
천사는 야곱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본다. 아마 씨름을 져주기로 작정한 것처럼 보인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고도 죽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다음날 아침 야곱은 형에서와 극적으로 화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앨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