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7
Therefore, if anyone is in Christ, he is a new creation; the old has gone, the new has come!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이해를 안목(眼目)이란 관점에서 소개하려고 합니다.
찰스 엘 알렌(Chales L Allen)
하나님의 정신의학(God's Psychiatry)
찰스 엘 알렌(Charles L. Allen)이라는 사람은 [God`s psychiatry]라는 저서에서 세 가지의 시력을 들고 있다.
첫째가 신체적 시력이다.
둘째는 정신적 시력이다. 이성(理性)이 밝아야 한다. 비판하고 추리하고 통합하는 사고능력이다. 합리적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는 총명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이해력이 없이는 진리를 볼 수 없다.
셋째는 제 3의 시력이 필요하다.
바로 영적 시각이다.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영의 눈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겉사람이 후패한다는 것은 육체적인 시력이 약화되어 나빠지는 것이라면
속사람이 날로 새로와진다는 것은 영적인 시력이 점점 더 좋아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은 영적 시력을 향상(向上)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 시력을 어떻게 향상시켜야 합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읽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방법은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통독(通讀)하는 방법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읽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 결혼생활 50년 동안 하루 세끼 식사를 계속했는데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는다면 매끼마다 무엇을 먹었는지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아마 아무도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만 밥을 먹었고 반찬을 먹었다고 말한다면 성경을 통독하는 것도 무엇을 읽었느냐 하고 묻는다면 성경을 읽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독(精讀)하는 방법
성경의 어느 책을 정하고 한 구절 한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살펴가며 읽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발의 등이란 어두움 밤길을 걸어갈 때 손전등을 어디에 비추며 걸아갑니까?
바로 내 앞의 발등을 비추며 걸어갑니다.
발 앞에 무엇이 있는지를 살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간혹 저 멀리 비추기도 합니다.
목적지를 살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 마가복음 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마음을 다하라 - 마음의 깊이
목숨을 다하라 - 마지막 기회
뜻을 다하라 - 변함이 없이
힘을 다하라 - 변화를 일으킬 때 까지

뉴본 조지아 주에서 출생한 앨런 목사는 1948년부터 1960년까지 아틀란타에 있는 그레이스 감리교회에서의 사역을 포함하여 미국 전역에서 목회자로 섬겼다.
1960년에는 휴스턴 텍사스로 이주하여 1983년까지 제일감리교회에서 시무하였다.
앨런 목사님이 시무하는 동안 뉴본의 그레이스 교회는 조지아주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하였고, 휴스턴에서 시무하는 동안에는 제일감리교회가 12000명이 출석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리교회로 성장하였다.
1950년대에는 아틀란타 신문사와 컨스티튜에서, 나중에는 휴스턴 신문사의 사설가로 있었다.
그의 또 다른 저서로는 <하나님의 정신의학>(God's Psychiatry)등이 있다.
교회성장형 성도의 자화상
성장은 하나님의 뜻이다(고전 3:5-7).하나님은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성장하기 원하신다.
성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자화상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신분과 목적과 능력이 달라진 새로운 피조물이다.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능력은 성령의 은사와 열매이다.
그렇다면 교회성장형 성도의 자화상은 무엇인가?
‘성장(成長)’이라는 의미를 가진 영어 단어 GROWTH를 가지고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겠다.
성장(成長) / 이룰 성, 길 장 / GROWTH
GROWTH
Goodness - 양선(良善)
Revival - 부흥(부흥)
Obedience - 순종(順從)
Word - 말씀(聖經)
Thanksgiving - 감사(감사)
Humility - 겸손(겸손)
첫째, 교회성장형 성도의 제 1 자화상은 GOODNESS, 즉 양선(良善)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시며 참되시고 거룩하시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은 부모나 자식, 형제나 친구, 이웃들에게 친절하고 좋은 성도이며, 세상과는 구분된 거룩한 자이다. 하나님 제일주의이며 그분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자이다.
헬라어에는 선(善)에 대한 두 개의 낱말이 있다. 첫째는 단순히 성질이 선한 것이라는 의미를 가진 ‘아가토스’이며, 둘째는 ‘칼로스’란 단어인데 이것은 단순히 선하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매력있고 아름다우며 사람의 마음을 끄는 것을 뜻한다. 성도의 선한 행위는 단순히 선할 뿐만 아니라 역시 마음을 끄는 힘이 있어야 한다. 어떤 매력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회성장형 성도의 자화상은 예수 사랑의 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양선(良善)이어야 한다. 바로 이것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중의 하나로서 성령충만한 성도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영적 덕목인 것이다.
옛날의 궁수(弓手)들은 활의 한쪽 끝은 자기 발 옆에 내려놓고 또 다른 끝은 자기 앞에 세웠다. 그리고 활의 크기는 그 궁수의 키와 같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법칙이었다. 활이 궁수의 크기와 똑같으면 그 때 비로소 그 궁수는 자신감을 가지고 전쟁터에 나갔다. 이 세상에 선을 발산하는 성도의 능력은 바로 성도 개개인의 영적 키와 일치하는 것이다.
둘째, 교회성장형 성도의 제 2 자화상은 REVIVAL, 즉 부흥(復興)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교회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밖으로 뻗어나간다. 내적으로는 갱신, 외적으로는 부흥을 도모한다. 여기서 ‘부흥’(復興)의 의미는 깨어나는 것이며 살아나는 것을 뜻한다. 이 단어는 원래 ‘숨쉰다’는 뜻을 가지고 있던 ‘산다’라는 단어의 어근에서 파생되었는데, 숨쉰다는 것은 활동하는 것들의 생명력에 대한 표현이다. 영적 부흥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하나님의 생명을 얻어 다시 살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삶 속에서 날마다 부흥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이 성령충만하다는 것이다. 성령충만은 예수충만을 의미한다. 자나깨나 예수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삶의 방향도, 삶의 목적도, 삶의 소망도 오직 예수이다. 성령충만은 성도들의 삶과 신앙을 회복시키는 강력한 에너지이자 동시에 예수를 증거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내적요소이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각자가 속한 가정과 직장, 사회와 단체, 더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향한 영적 재생산과 영적 열매를 맺는다. 나 자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를 알게 되었는가? 를 자문할 때 부끄럽지 않도록 주님을 증거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이처럼 성령충만한 자는 신앙성장과 삶의 변화를 맛보게 되며, 자연히 교회성장에도 큰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교회성장은 작은 데서부터 시작된다. 성령충만한 성도 개개인이 부흥의 자화상으로 회복될 때, 교회는 비로소 성장의 씨앗이 발아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교회성장형 성도의 제 3 자화상은 OBEDIENCE, 즉 순종(順從)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영적 권세에 순종하는 자이다. 구약 성경에서의 순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한다. 혹은 그것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다’, ‘혹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말로 해석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고 말한다(롬 5:19). 예수님의 가르침은 순종 이외에 다른 것이 없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바로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자이다.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믿음의 순종은 성도간의 사랑, 이웃간의 사랑으로 표현된다. 작은 불씨 하나가 큰 불을 만들듯이, 작은 사랑 하나가 큰 사랑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이 실천하신 사랑을 듣고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인 것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서로에게 순종하며, 피차 복종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생활속에 묻어난다. 성도간의 불협화음으로 야기되는 자중지란(自中之亂)은 성장의 최대 걸림돌지만, 순종의 태도는 교회사역에 있어서 강력한 힘이 되며 최대의 연합과 일치를 이루는 디딤돌이다. 교회 일에 절대 순종하는 성도가 많을수록 사역의 시너지는 급상승하게 된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에서 지난 8년 동안 미국 전역에서 2만 여명을 대상으로 수명 차이를 조사했다. 조사결과를 보면, 전혀 교회를 나가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교회에 나가는 사람들의 경우 평균수명이 7년이나 더 길었다고 한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신체기능이 더 양호하고, 병에 걸렸을 경우 회복도 빠르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듀크 대학이 1999년 한해동안 4천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걱정을 줄이고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을 섬기고 순종하면 건강도, 사업도, 회사도, 인생도 새롭게 변하고 좋아진다는 것이다. 교회가 이처럼 순종하는 성도들로 붐빌 때, 교회성장은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넷째, 교회성장형 성도의 제 4 자화상은 WORD, 즉 말씀(聖經)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이 탁월하다. 그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슨 일을 하시는가에 대한 바르고 충분한 지식을 터득한다. 성장형 성도라면 단편적인 성경 지식만 깨닫는 것이 아니라 성경공부를 통해 확실한 교훈과 적용점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산을 옮길만한 신념과 신령한 체험이 있더라도 성경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면 백해무익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성도들이 영적 성장을 이루는데 가장 유익한 도구가 된다. 성장형 성도의 청사진을 제공한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기독교의 본질 그 자체이며 성장형 성도의 황금률이다.
미국의 농담에 거북이 교인(Turtle Christian) 이라는 말이 있다. 새는 9일간 먹지 않고 살 수 있다. 사람은 12일간이고 개는 20일간 견딜 수 있다. 그런데 거북이는 500일을 먹지 않아도 살고 뱀은 800일을 견딘다. 곤충들은 1,200일을 음식 없이도 생존한다. 그래서 참다운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 없이 사는 성도를 거북이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찰스 엘 알렌'이 쓴 「하나님의 정신의학」이란 책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사는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육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한다. 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말씀을 사랑하며 살 때 같은 복이 임하게 된다. 성장형 성도도 예외일 수 없다. 그들 역시 매일 말씀을 먹어야 한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성경을 가까이 하고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이다.
코끼리는 우둔해 보이지만 생존을 위한 지혜는 가히 경이롭다. 코끼리는 더울 때 귀로 부채질을 하거나 목욕을 하여 더위를 이겨낸다. 또는 침을 잔뜩 괴었다가 코로 들이마신 후, 몸에 뿌리는 식으로 더위를 피한다. 물론 이 방법은 근처에 개울이나 연못이 없을 때 쓰는 비상 수단이다.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을 찾아서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서 있을 때도 있다.
코끼리의 지혜는 음식 섭취에서도 나타난다. 코끼리는 이빨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 대나무를 즐겨 먹는다. 코끼리는 단단하고 질긴 통 대나무를 으깬 다음, 코로 말아 올려 먹기도 하고, 그냥 입으로 '우지직’씹어 먹기도 하면서 부족하기 쉬운 영양소를 섭취한다고 한다. 또한 아프리카의 건조한 초원 지대의 코끼리는 죽은 동물의 뼈를 먹음으로써 부족한 칼슘을 보충한다. 그들은 보통 하루에 300kg 정도의 먹이를 먹는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몸에 꼭 필요한 영양분을 찾아 섭취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성장형 성도의 영적 건강도 무슨 음식을 섭취하는가와 직결된다. 물론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섭취해야 한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말씀에 대한 편식에 길들일 수 있다. 어린아이가 밥상에서 편식을 하듯 말씀에 대한 편식을 하는 것이다. 귀에 거슬리는 말씀에는 방음막을 친다. 좀 까다롭거나 부담스러운 말씀은 그냥 건너뛴다. 그러나 깨달아야 한다. 코끼리는 달콤한 야자 열매만 찾아다니지 않는다. 코끼리는 칼슘을 보충하기 위해 억센 대나무를 씹기도 하고, 죽은 동물의 뼈를 먹기도 한다. 교회성장형 성도라면 이런 결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다섯째, 교회성장형 성도의 제 5 자화상은 THANKSGIVING, 즉 감사(感謝)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범사에 감사할 줄 안다. 영어의 "Think"(생각한다)와 "Thank"(감사한다)는 같은 어간에서 나온 말이다. 깊이 생각하면 범사에 감사하게 된다. 생각이 욕심 쪽으로 기울면 불만과 다툼이 생긴다. 그러나 생각이 하나님 쪽으로 기울면 감사와 만족이 나온다. 이처럼 교회성장형 성도는 없는 것을 탐하기보다는 갖고 있는 것을 소중히 하고 그것에 감사한다.
미국 사람들은 어린 아이를 기를 때 제일 먼저 가르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감사합니다'(Thank you)라는 말이다. 사실 이 말과 같이 우리 인간들의 상호관계를 부드럽게 해 주는 말도 그리 흔치 않다. 감사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생활의 중심과제이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깨닫지도 못하고 표시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태를 신앙이라고는 볼 수 없다.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감사로 표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신의학자 루이스 캐디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을 믿든, 그렇지 않든 자신 이외의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할 것이 없다는 말과 같다.”라고 말했다. 그 어떤 것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삶의 기쁨도 누릴 수 없다. 감사야말로 삶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감사는 평범한 식탁을 생명의 잔칫상으로 만드는가 하면 마음의 분노를 쉬게 하고 평화를 가져다준다. 감사하는 순간 하늘의 소망이 열리고 내일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오르게 된다.
미국의 성공학자 지그 지글러는 "감사하다고 말할 때마다 '우리는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있는 장소를 그대로 받아들이겠다.' 라고
다짐하는 것이다.
나는 감사할 줄 모르면서 행복한 사람을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논지는 감사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한다는 것이다.
성도의 감사는 이익과 불이익을 떠난 조건없는 감사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8).
교회성장형
성도라면 이러한 감사의 법칙을 마스터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섯째, 교회성장형 성도의 제 6 자화상은 HUMILITY, 즉 겸손(謙遜)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겸손은 '주제넘게 행동하지 않는다'라든가, 또는 '삼간다'와 같이 외형적인 행위가 아니다. 또는 자신을 부족하게 여기고 몸을 낮추는데 그치지 않는다. 겸손의 참된 의미는 자기 자신의 가치를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티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겸손의 깨달음은 하나님께 향한 열정을 이웃에 대한 순수한 사랑으로 발전하게 한다.
영국의 수상 맥밀란은 진정한 크리스천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뛰어난 점을 과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과 대면할 때에 수건으로 자신의 빛나는 얼굴을 덮었듯이 진정한 크리스천은 겸손이라는 수건으로 자신의 장점들을 가리운다.
겸손한 자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다는 것이다. 개방성이야말로 성장의 최대조건이다. 새로운 변화와 화합의
장에서 열린 마음, 열린 생각, 열린 행동으로 성장의 기회를 포착한다. 겸손한 만큼 그것에 비례해서 높은 영예를 얻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신문기자였던 필립 얀시는 40년 동안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무려 8천여 명의 명사(名士)들을 인터뷰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은 인터뷰 끝에 그가 깨달은 바가 있었다. 이것을 뒷날 회고록에 쓰게 되는데, 그는 인생에 분명히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술회했다. 그 하나는 Star형이요, 또 하나는 Servant형이다.
스타(Star)형에 속하는 유형은 껍데기뿐이라고 한다. 기회만 있으면 그저 자기자랑만 한다. 자기 선전만 하며 저 잘났다는 사람이다. 그런 자기를 선전해 달라고 하는데 기자로서 볼 때에 볼 것도 없더라고 했다. 쓸 것도 못되는 사람들이 주로 이렇게 계속 자기 자랑만 한다고 한다.
두 번째 서번트(Servant)형은 인터뷰를 해보면 그저 어떻게든 섬기려는 자세를 보인다고 한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기쁘게 하며, 어쨌든 기회만 있으면 섬기고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근시안적인 마인드로 보면 이들은 정당한 상급과 대우,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갈채로부터 멀게 만 느껴진다. 하지만 실상은 플러스 인생을 위한 성공 유전자를 보유한 자들이다.
성공이란 지속적인 성장의 과정이다. 성공이란 남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시킨 일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보다 현재가 나아지고 현재보다 미래가 나아지면 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 사람이다. 교회성장형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범사에 감사할 줄 알며,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의 성공뿐만 아니라 타인의 성공까지도 창출하는 거룩한 자화상의 소유자인 것이다.
목적이 분명한 교회의 7대 자화상
건강한 교회는 목적이 분명한 교회이다. 교회성장이란 주의 뜻 즉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일이다 (잠 19:21, 고전 3:5-7). 목적이 분명한 교회는 목적을 정의하고, 전달하고, 적용하는데에 탁월한 교회이다.
1.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목회를 하지말라
성공의 제 1조건은 비전과 목적의식이다. 무슨 일이든지 왜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대답할 수 없으면 실패한다. 설사 성공하더라도 의미와 가치가 없기 때문에 곧 무너지고 만다. 하나님께서 주신 확고 부동한 목적이 모든 삶의 원동력이다.
2. 목적의 절대 중요성을 깨달으라
목적이 분명하면 공동체의 사기가 진작되고, 좌절감을 해소시키며, 사역에 대한 집중력을 가져다 주며, 자발적인 협력을 가질수 있으며, 사역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가능하게 해준다. 세상적인 요인은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불변하며 영원히 존재한다.
3. 목적을 성서적으로 책정하라
목적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것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지도자의 책임이다. 비전과 목적을 책정하기 위해서는 교회와 사역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공부해야 하며, 교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하며, 그 목적을 글로 문서화해야 하며, 짧은 한 문장 혹은 슬로건 으로 만들어야 한다.
4. 목적을 효과적으로 진술하라
목적선언문을 진술할 때에는 성경적이어야 할 것, 명확할 것, 쉽게 전달할 수 있을 것, 측정과 평가가 가능할 것 등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진술한 문장 하나만으로도 교회성장의 새로운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목적을 총체적으로 전달하라
목회자의 목적의식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전 성도에게 전달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 교회의 목적과 비전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의식화시키는 것이 교회성장형 성도를 얻는 길이다. 목적을 전달 하는 방법에는 상징, 구호, 설교, 이야기, 행동지침 등이다.
6. 목적에 따라 교회를 조직하라
목적이 책정되고 교인들에게 침투된 후에는 그 목적과 비전을 실행하는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목적에 따라 교회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교회는 생명체요 조직체이다. 생명을 위해서는 성령화가 필요하고, 조직을 위해서는 조직화가 필요하다. 영성이 뛰어나도 조직력이 떨어지면 교회성장이 힘들어진다.
7. 목적을 실제 목회에 적용하라
교회성장이란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적용한 결과로서의 열매이다. 목적에 충실하면 건강한 교회가 되며, 건강한 교회는 반드시 성장한다. 목적에 따라 전도하라.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라, 목적에 따라 사람을 키우라, 목적에 따라 구역을 운영하라. 목적에 따라 사람을 쓰라. 목적에 따라 설교하라. 목적에 따라 예산을 세우라. 목적에 따라 행사를 계획하라. 목적에 따라 교회를 건축하라. 그리고 목적에 따라 기도하고 순종하라. 목적을 잃지 않는 한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