σώμα(소마)와 σaρξ(사르크스)의 차이


  • σώμα(소마)와 σaρξ(사르크스)의 차이

  • 두 가지 용어가 종종 혼용해서 사용된다. 
    그러므로 크게 두드러지는 차이는 없다.  
    하지만 엄밀하게 구분하자면 

    σώμα(소마)는 영혼 정신 등과 대비되는 신체(身體)를 일컬을 때 사용한다. 

    σaρξ(사르크스)는 신체에서 뼈, 살, 피 등을 이야기할 때 ‘살’을 가리킨다.

  • 몸(소마 - σŵμα )과 육신(사르크스 - σάρξ )

    바울은 그의 영이 기운을 낸다든지 안심 한다고 말했을 때, 자신의 내적인 평안을 발견하였음을 의미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영(프뉴마 - πνεύμα)을 소유하는지 아니면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을 받음으로 소유하게 된 독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볼트만(Bultmann)은 인간이 구분되거나 분리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며, 몸 (소마–σώμα), 영(프뉴마), 그리고 혼(프쉬케 - ψυχὴ)은 인간 전체를 여러 방식으로 보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은 몸(소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바로 몸(소마)이다”라고 주장한다.

    인간, 그의 인격 전체는 소마로 지칭될 수 있다.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은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를 존귀히 되게 하는 것은 나의 인격, 나 자신을 통해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 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관련 구절들을 출발점으로 삼는 불트만은 몸이란 “자신을 자신의 행위의 대상으로 삼거나 또는 자신을 어떤 상태의 주체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부장했다. 소마적인 존재는 표준적이며 고유한 존재양식으로 생각된다.

    소마는 인간존재의 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 본질적인 요소이다 혼 또는 영의 생명은 참되고 본질적인 생명이지만, 외적이며 우연적인 몸의 생명은 마치 인간의 참된 생명을 실현하는데 방해거리나 되는 것처럼 서로 대조되는 것이 아니다. 구속사역은 단순히 혼 또는 영의 구원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몸의 구속을 포함한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누릴 수 있도록 고안한 궁극적이며 완전한 삶의 양식은 소마적인 존재이다. 몸에 대해서 취하여야 할 태도를 가르친 바울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

     1. 몸은 비록 인간존재의 완전한 부분이지만 육의 몸은 부패하고 죽는 사망의 몸(롬7:24).

     2. 죄는 죽을 몸에 왕노릇 할 수 있기 때문에(롬6:31), 죄의 도구인 몸은 죄의 몸으로 불리울 수 있으며, 따라서 영이 거주하는 인간은 몸의 죄된 행실을 죽여야 한다(롬8:14)[본문 롬8:13의 사르크스를 우리말 개역성경에서는 육신(flesh)으로 번역하였다. 영어성경에서도 육신으로 번역한 경우가 많다. NIV에서는 죄의 본성(sinful nature)으로, GNB(TEV)에서는 인간본성(human nature)으로 번역하였다.]

      3. 몸은 굴복되어야 한다. 사람의 영적인 생활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훈련받아야 한다. 인간 존재의 최고 목적은 영의 영역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따라서 몸은 영, 참된 자아의 종이 되어야 한다. 몸 그 자체는 참된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주인 행세를 할 수 없다. 몸이 훈련받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영적인 목적들을 좌절시키기 때문이다.

      4. 몸에 대한 자기 통제는 그것이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져야 한다(롬12:1). 그리스도인은 그의 몸 안에 성령이 내주(內住)하고 있음을 인정하여야 한다(고전6:19). 그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다(고전6:15).

      5. 몸 자체는 구원이 완성되는 날에 구속될 것이다(롬8:23). 육신(사르크스-σὰρξ)은 몸의 조직들이다. 육신은 흔히 몸을 구성하며 따라서 뼈와 피에 대조되는 조직들을 묘사 할 때 사용된다. 사르크스는 몸 자체이다. 자연적인 변화를 거치는 동안 부분은 전체를 지칭하게 되었고, 여러 구절에서 사르크스는 몸의 육적인 부분을 가리키기보다는 몸 전체의 동의어처럼 사용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몸으로 떠나 있다”고 말하든지(고전5:3), 아니면 “육신은 떠나 있다”(골2:5)라고 말할 수 있었다. 사르크스는 혈통과 관계를 맺은 인간이다. 구약의 용법에 따르면, 사르크스는 몸의 요소 또는 몸 자체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육으로 구성된 인간을 구체적으로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러한 용법에서 보면 사르크스는 특별히 인간적인 관계들,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묶어 두는 육신적인 가문과 자연적인 인연들을 지칭할 수 있다. 사르크스는 외적인 모습과 조건에서 본 인간이다.

    사르크스의 뜻은 인간의 육신적인 생명 너머로 확대되어 인간 존재에 있어서 불가분리적인 다른 요소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육체를 신뢰하는 것”(빌3:3)은 몸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외부 영역에 속하는 복합적인 모든 것들을 신뢰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울의 유대적인 혈통, 그의 엄격한 종교교육, 유대 종교단체들 가운데서 뛰어난 그의 열심과 그의 탁월성 등을 포함한다. 사르크스의 윤리적 용법에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육이 영과 대조되는 것처럼 인간은 악하며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은 ‘육에 속한’ 자들과 ‘영에 속한’ 자들을 날카롭게 대조시킨다. 육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 하고 영에 있나니…”(롬8:9) 로마서 8:8절에 ‘육신에’ 라는 말은 9절에 의하면 성령이 내주하지 않는 자, 즉 중생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킨다.




  • 데살로니가전서 5:23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 May God himself, the God of peace, sanctify you through and through. May your whole spirit, soul and body be kept blameless at the coming of our Lord Jesus Christ.







    󰃨 평강의 하나님 - 이 문구는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롬 15:33;16:20;빌4:9;고후 13:11;히 13:20). 바울이 하나님을 '평강'(*, 에이레네스)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과 자신 사이에 평화를 이룩하신 평화의 근원이시기 때문이었다(골 1:20).

    󰃨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 '온전히'의 헬라어 '홀로텔레이스'(*)는 그리스도인의 성품이 최종적으로 완전하게 됨을 가리킨다. 이러한 '성화'(sanctification)는 내주(內住)하는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4:8;롬 15:16).

    󰃨 영과 혼과 몸 - 인간의 보편적 구성 요소와 관련되는 본문은 소위 말하는 삼분설 또는 이분설 논쟁이 제기되는 구절이다. 우선 몸은 순수하게 물질적인 부분, 즉 육신을 가리킨다. 다만 여기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영'(*, 프뉴마) 과'혼'(*, 프쉬케)의 차이점이다. (1) 삼분설. 그리스 계통의 교부들(Irenaeus,Chrysostom)은 영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인간의 이성적 부분, 즉 양심이나 의지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반해, 혼은 동물에게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생명이나 감정, 감각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하였다. (2) 이분설. 성경에는 인간의 본성을 거의 대부분 혼과 몸(창 2: 7; 마 6:25), 영과 몸(전 12:7;고전 5:3, 5)으로 구분하여 이분법적인 분류법을 말함으로 혼과 영을 혼용하고 있다. 바울은 본절에서 인간의 본성을 영과 혼과 몸으로 구분하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것은 당시 그리스의 사고 방식에 젖어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삼분법적인 표현을 사용했거나 또는 수사학적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서, 실상은 성도들의 전인격(全人格)을 가리킨 말이다. 이의견에 대해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동의한다(Morris, Bruce, Milligan).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active. Sharper than any double-edged sword, it penetrates even to dividing soul and spirit, joints and marrow; it judges the thoughts and attitudes of the heart.





  • 󰃨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 '하나님의 말씀'은 앞에서 인용된 안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리키고 있으나(Hewitt), 일반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전해진 하나님 말씀 전체를 가리킨다(Robertson, Morris).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라는 표현은 그 '말씀'이 '인격성'과 '역동성'을 지녀서 행위를 동반함을 암시한다. 즉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이들에게는 경고와 심판을 행하게 되며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이들에게는 그들에게 약속된 말씀을 성취케 하는 말씀이다(Hewitt, Morris).

    󰃨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 하나님의 말씀은 출애굽 세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수신자들에게도 동일한 효력을 지닌 말씀으로서 말씀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라 안식과 진노를 행한다(Trompf). 그 말씀은 '검'과 같아서 하나님의 음성에 계속 불순종할 때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거 역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했을 때, 아말렉과 가나안인들의 '검'(*, 마카이란)에 패배(敗北)하여 도망할 수밖에 없었다(민14:43-45).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심성에 내재하는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악독(롬1:29) 등의 온갖 죄악을 예리하게 심판하는 '검'이 된다(Hofius, Lane).

    󰃨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 '혼과 영'(*, 프쉬케스 카이 프뉴마토스), '관절과골수'(*, 하르몬 테 카이 뮈엘론)는 인간의 구조로 명명되는 '삼분법'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인간 정신의 전체적인 본성을 말하는 수사학적(修辭學的)인 표현이다(Bruce, Morris, Robertson). 한편 '찔러'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이이크누메노스'(*)는 '꿰뚫다'라는 의미로 인간의 영혼과 육을 분할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깊은 내면을 꿰뚫어 잠재된 의식까지 들춰내는 능력이 있음을 시사한다(Bruce, Robertson). 또한 '감찰하나니'의 헬라어 '크리티코스'(*)는 법정 용어로서 '판단하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 인격의 가장 깊은 곳까지 통찰할 수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인간의 순종 여부에 따라 안식과 진노를 행함을 시사한다(시95:11, Lane).





  • 성경에서 몸을 지칭하는 단어는 '소마, 사륵스'로 구분되어 사용되었다. 

    헬라어 '소마'(Soma)는 육체적 몸뿐만 아니라 인격적 구성체 등을 포함하는 의미로 쓰였다. 
    '사르크스'(Sarx)는 육체적 연약성, 영과 대립하는 죄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성경이 한글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몸, 육체, 육신’이라는 세 가지의 단어로 혼용되면서 몸을 지칭하는 ‘소마와 사륵스’의 각각 다른 의미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어느 날 주일, '소마'(Soma)의 의미로 쓰인 대표적인 성경구절인 로마서 12장 1절을 ‘산 제물’(Living sacrifices)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들었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롬 12:1).
    'Therefore, I urge you, brothers, in view of Gods mercy, to offer your bodies as living sacrifices, holy and pleasing to God -- this is your spiritual act of worship.'


    로마서 12장 1절에서 거룩한 산 제물(living sacrifices)로 드리라고 하는 '몸'은 우리의 영, 혼, 육을 모두 다 포함한다.

    신명기 6장 5절에서 말하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하는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몸을 드린다는 것은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과 같다. 우리 인간은 나의 모든 것이 몸 안에 들어있고, 몸으로 존재하며 소통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 기쁨과 감격을 표현할 때에도 몸을 사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몸은 나의 육체, 육신, 껍데기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 땅에 허락하신 삶을 살아가는 나, 그 자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몸을 드리는 것’이 '우리가 마땅히 드려야 할 영적 예배'라고 말한다. 우리의 몸이 영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는,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고린도전서 6장 20절 역시,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Soma)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한다.

    몸이 악하고 정신, 혼, 영 보다 못한 것이라면 어찌 감히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 여기서 말하는 몸 역시 우리의 영혼육을 모두 포함한 '나'라는 존재 자체를 말한 것일테다.

    나의 관심사와 시간, 나의 애정과, 나의 생각까지, 나의 몸을 드린다는 것은 ‘나의 전부를 드리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단순히 육체, 껍데기, 썩어 없어질 것, 정신보다 못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그렇게 경히 여기지 않으셨다.

    그분은 직접 피조물을 만드셨고 보기에 좋다 하셨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의 모든 물질들을 인간에게 좋은 것이라 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몸으로 그것들을 감각하고 누리며 더욱 충만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낀다.

    태초에 지으신 의미에서 변질된 것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의 의미로 되돌려야할 것이다(예술과 영혼 중).

    하나님이 지으신 몸에 대한 원래의 선한 의미를 이분법으로 나누어 비하할 수는 없다. 몸은 논의하기 껄끄러운 대상이 아니라 회복해야 할 대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