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칠언(架上七言) The Seven Last Words of Jesus on the Cross


가상칠언(架上七言)  The Seven Last Words of Jesus on the Cross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누가복음 23:3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며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은 자신을 향해 죄악을 행하는 이들을 위한 용서의 기도였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한 인간적인 동정이나 자비를 넘어, 십자가의 중심 메시지가 ‘용서’임을 보여줍니다. 이때 사용된 헬라어 aphiemi는 죄의 짐을 풀어주고 자유케 하며 법적인 의미에서 죄책을 면제한다는 뜻을 가집니다. 예수님의 기도는 구속의 문을 여는 첫 열쇠로,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선 인류에게 극휼의 기회가 주어졌음을 선언하는 사건입니다. 즉, 십자가는 심판의 자리이자 동시에 용서의 문이 열리는 자리이며, 예수님은 인류 전체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그 첫 중보적 사명을 감당하신 것입니다.

● 가상칠언 1)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2.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누가복음 23:43)

죄를 인정하고 예수님을 메시아로 고백한 강도에게 예수님은 “오늘” 그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회개와 믿음을 통한 즉각적인 구원의 원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입니다. 당시 유대인의 종말론에서 낙원(paradeisos)은 의인들이 안식하는 곳으로 이해되었으며, 예수님은 단순히 위로의 말을 한 것이 아니라 구속의 실제적 적용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인간의 노력이나 행위가 아닌, 전적인 은혜와 믿음에 근거한 구원이 가능함을 증거합니다. 죽음을 앞둔 이 강도에게 주어진 구원은 모든 죄인에게 열려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상징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이 단지 선택된 자만이 아닌 모든 회개자에게 유효함을 보여줍니다.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요한복음 19:26–27)

예수님은 고통의 절정 속에서도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염려하시며,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그녀를 부탁하셨습니다. 이는 단순한 가족적 책임을 넘어, 새 언약 공동체의 형성을 상징적으로 선포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새로운 ‘가족’을 세우시며, 육신의 혈통이 아닌 믿음 안에서 하나 되는 교회 공동체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보라 네 어머니라”는 말씀은 교회의 상징인 마리아와 사도의 대표인 요한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형성됨을 의미하며, 이로써 십자가는 새로운 언약 공동체의 출발점이 됩니다. 또한, 이 말씀은 하나님의 구속은 관계의 회복과 새로운 공동체의 창출을 포함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46, 마가복음 15:34)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예수님의 부르짖음은 시편 22편 1절의 인용으로, 구약 예언의 성취이자 그 깊이를 더한 신비입니다. 이는 인류의 죄를 짊어진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는 경험을 상징하며, 죄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줍니다. 이 절규는 하나님의 공의가 예수님 위에 임한 장면이며, 예수님은 우리 대신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라는 형벌을 온몸으로 감당하셨습니다. 이는 속죄론의 핵심으로, 예수님이 우리 대신 형벌을 받으셨다는 대속적 죽음의 가장 극적인 표현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고통 중에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시는 예수님의 신뢰와 순종을 통해,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복하신 모습을 드러냅니다.

5. 내가 목마르다 (요한복음 19:28)

이 말씀은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을 나타내는 동시에,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완성을 향한 갈망을 표현합니다. “목마르다”는 표현은 시편 69편 21절의 예언 성취이며, 고난받는 메시아의 고통에 대한 표징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생수를 주시는 분(요 4:14)이시지만, 이 순간에는 스스로 생명의 근원을 내려놓고 철저히 인간의 연약함을 겪으십니다. 이는 그분이 진정한 사람으로 오셔서 우리와 동일한 고통을 당하셨다는 성육신의 실제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예언된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한 마지막 고백으로 나타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이루시는 예수님의 신실함과, 고통 가운데서도 성경의 성취를 완전하게 하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6.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

헬라어 tetelestai는 상업적, 법적 문맥에서 “완불되었다”는 뜻으로 쓰이며,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이 완전하게 끝났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구속사의 완성 선언으로, 죄에 대한 속죄, 율법의 성취, 예언의 완성,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모두 이루어졌음을 알리는 말입니다. 이 한 마디는 구약의 모든 제사제도와 성막 시스템이 예수 안에서 실체를 드러내며 종결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 없이 완전하게 성취되었음을 밝히는 선언이며, 인간이 더 이상 율법이나 행위로 구원받을 필요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은혜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7.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누가복음 23:46)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하는 기도입니다. 이 말씀은 시편 31편 5절의 인용으로, 믿음과 순종의 절정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내어주셨습니다(요 10:18). 이는 죽음마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고백하는 믿음의 선언이며, 구속 사역의 마지막 단계로서 그분의 전 생애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와 순종으로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 순간은 예수님께서 대속의 죽음을 완성하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긴 사건으로, 부활을 향한 소망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도, 죽음 너머의 하나님 나라를 향한 확신과 위로를 전해주는 복음의 선포입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 선언의 의미와 우리의 완성된 구원

서론: 십자가 위의 완성

  • 요한복음 19장 30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중 하나인 "다 이루었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짧은 한마디는 인류의 구원 역사와 하나님의 원대한 계획에 있어 가장 결정적이고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구절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와 그 안에 담긴 놀라운 구원의 선물에 대해 깊이 탐구해 보고자 합니다.

본문 분석: "다 이루었다"의 의미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 이 구절은 예수님의 극심한 고난과 인내를 보여줍니다. 십자가형은 엄청난 갈증을 유발했으며, 신 포도주는 당시 관례상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고통까지도 감내하시며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모든 예언과 고난의 과정을 완전히 이루셨음을 나타내는 서곡입니다.

  • "다 이루었다" (테텔레스타이, Τετέλεσται):

    • 이 한마디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완료되었음을 선포하는 승리의 외침입니다. 이는 단순히 할 일을 마쳤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완벽하게 성취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이 단어를 계약이 완료되거나 빚이 완전히 갚아졌을 때 사용했습니다. 우리 죄의 빚이 십자가 위에서 완전히 청산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1. 예언의 성취:

  • 구약의 수많은 예언들이 예수님의 삶과 죽음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구약의 모든 예언이 가리키는 메시아셨습니다.

  • 이사야 53장 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고난과 대속적 죽음이 인류의 죄를 위한 것임을 분명히 말하며, 예수님께서 이 예언을 완전히 이루셨음을 보여줍니다.

  • 시편 22편 18절: "내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이 예언 역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병사들이 그분의 옷을 나눈 사건으로 완벽하게 성취되었습니다.

2. 구원 사역의 완성:

  •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키고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여셨습니다. 더 이상 죄를 씻기 위한 반복적인 제사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 히브리서 9장 12절: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예수님의 단 한 번의 희생으로 영원한 속죄가 이루어졌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다 이루었다"는 말씀의 핵심적 의미입니다.

  • 로마서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 구절은 예수님의 죽음이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의 증거이자, 구원의 완성을 위한 사랑의 행위였음을 보여줍니다.

3. 죄와 사망 권세의 폐지:

  •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죄와 사망의 권세가 예수님의 죽음으로 완전히 깨어졌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자에게는 죄의 삯인 사망이 아닌, 영생의 길이 열렸습니다.

  •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죄의 삯인 사망을 무력화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물했습니다.

  • 고린도전서 15장 54-57절: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 말씀은 예수님으로 인해 사망에 대한 완전한 승리가 이루어졌음을 선포하며, "다 이루었다"는 승리의 선언을 뒷받침합니다.

4. 새 언약의 성취:

  •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구약의 율법 언약과는 다른 새 언약을 체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이 새 언약은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외부에 새겨진 것이 아닌 마음에 새겨지는 언약입니다.

  • 예레미야 31장 31-34절: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구약의 이 예언은 예수님의 피로 세워진 새 언약을 통해 완전히 성취되었습니다.

  • 누가복음 22장 20절: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 자신이 새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음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자발적으로 내어주셨음을 보여줍니다. 그분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 사랑순종으로 이루어진 대속적 희생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모든 것을 이루신 후, 그분은 고통 속에서도 평안히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는 사망을 이긴 승리자의 모습입니다.

결론: 완성된 구원 속에서 살아가는 삶

  •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는 선언은 단순히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계속해서 효력을 발휘하는 영원한 진리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이상 죄책감에 묶여 살 필요가 없으며,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하게 완성되었음을 선포합니다.

  • 우리는 이 완성된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이루셨기에 우리는 그저 그분의 사랑은혜 안에서 자유롭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위의 "다 이루었다"는 외침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승리의 함성입니다. 이 진리 안에서 참된 평안희망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패러독스(paradox) 유래, 어원



παρά Storng number3844
1.

~에게서

2.

막14:43

3.

παρὰ κυρί- ου ἐγένετο αὕτη: 이것은 주께서 하시는 일이었다

Pronunciation [ para ]
관련 성경
«전치사»«속격»~에게서(마21:42),«여격»같이, 곁에(마6:1),«대격»곁에, 가까이, 따라서(마13:1).
δόξα, ης, ἡ Storng number1391
1.

광명

2.

눅2:9

3.

위엄

Pronunciation [ dŏxa ]
Etymology
1380의 어간에서 유래
  • 관련 성경

    영광(마4:8, 막8:38, 눅2:9), 광채(행22:11), 영화(榮華)(요17:5).


  • 패러독스(paradox) 유래, 어원

    패러독스(paradox)라는 말의 어원은 그리스어 파라독사(paradoxa)이다. 이는 '초월' 또는 '~너머'의 뜻을 지닌 파라(para)와 '견해'라는 뜻을 지닌 독사(doxa)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이는 패러독스가 일반적인 사고나 신념 체계와는 다른, 예상치 못한 결론이나 명제를 제시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패러독스라는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패러독스를 사용하여 철학적 문제를 탐구하고, 논리와 진리의 본성에 대해 심층적으로 논의했다. 이들은 패러독스를 통해 당시의 일반적인 믿음이나 가정에 도전하며, 지식의 근본을 탐구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패러독스의 사용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세, 르네상스,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상가들과 학자들이 패러독스를 중요한 사고 도구로 활용해 왔다. 예를 들어,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는 신학적 문제를 탐구하는 데 패러독스가 사용되었으며, 근대 과학에서는 패러독스를 통해 과학적 이론의 한계와 가능성을 탐구하는 데 기여했다.

    패러독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철학, 수학, 물리학, 언어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패러독스는 우리의 사고를 넓혀주고, 기존의 지식과 신념에 도전하며, 새로운 진리와 이해를 탐구하는 데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패러독스는 인간 지식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패러독스(paradox) 뜻, 의미

    패러독스는 일반적인 논리나 상식으로는 해석이 불가능하거나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명제나 상황을 말한다. 즉, 논리적으로 모순되어 보이지만 사실이거나 깊은 진리를 담고 있는 진술 또는 상황을 의미한다. 일상적으로는  '모순된 의견' 또는 '역설' 등으로 사용된다. 

    이 용어는 그리스어의 '파라' (para, 너머의)와 '독사' (doxa, 의견)의 합성어에서 유래되었으며, 문자 그대로 '정상적인 의견을 넘어선 것'이라는 뜻을 지닌다. 패러독스는 철학, 수학, 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나타나며, 일반적인 사고의 틀을 벗어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어 패러독스(paradox)를 우리말로는 역설(逆說)로 번역할 수 있다. 역설은 외면상의 모순된 논리를 통해 오히려 더 크고 깊은 진실을 드러내는 표현이다 주장을 말한다. 

    패러독스는 보통 모순어법을 통해 의도를 나타내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시인 유치환이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을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은유하여 의도를 드러내는 경우라던가, 불교의 가르침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 '있음이 곧 없음이요, 없음이 곧 있음이다'라는 모순적 어법을 통해 진실을 드러내는 경우가 그 좋은 예이다.

    패러독스는 단순한 언어적 놀이나 철학적 질문에 그치지 않는다. 과학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쌍둥이 패러독스'는 상대성 이론에서 중요한 실험적 사고 실험으로, 시간의 상대성을 설명하는 데 기여한다. 패러독스는 모든 존재나 인간 실존이 모순되고 대립되어 있다는 철학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처럼 패러독스는 모순적인 상황이나 명제를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을 확장시키고, 지식의 경계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는 학문적 탐구를 넘어 일상에서도 우리가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게 한다.

    국어사전은 '패러독스(paradox)'를 '일반적으로는 모순을 야기하지 아니하나 특정한 경우에 논리적 모순을 일으키는 논증,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티와 들보


    마태복음 7:1-5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속에서 티를 빼리라



    누가복음 6:41-42

    41.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2.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티는 보라(991) βλέπω Storng number 991

    1. 보다.  2. 들보.  3. 큰 건물들
    관련 성경 / 보다(마5:28, 눅6:41, 요1:29), 보게 되다 (마12:22), 뵙다(마18:10), 주의하다(마24:4, 막8:15, 눅21:18), 삼가다(막4:24, 눅8:18), 보이다(막8:23), 조심하다(막13:9, 고전8:9), 돌아보다(눅9:62), (눈이)밝아지다(요9:7).

    들보는 깨달으라(2657) κατανοέω Storng number2657

    1. 주목해보다.  2. 보다.  3. 생각하다  
    Pronunciation [ katanŏĕō ]  
    Etymology  / 미완료 κατενόουν, 제1부정과거 κατενόηασ, 2596과 3539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깨닫다(마7:3, 눅6:41), 생각하다(눅12:24, 27, 히3:1), 알아보다(행7:31,32), 보다(행11: 6, 약1:23,24), 알다(행27:39, 롬4:19), 돌아보다(히10:24).

  • 티는 작은 것이고 들보는 큰 것이다. 
    남을 아주 정죄하는 그것은 벌써 큰 죄이다. 
    그 뿐 아니라 그가 남을 아주 정죄하기 좋아하는 것을 봄녀 그의 생활이면에도 여러가지 다른 죄과들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업을 위하여 인물을 비판하여 혹은 채용 혹은 퇴직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아주 정죄하는 것은 죄이다.

    헬라어의 ‘크리노’(비판하다, 판단하다)의 뜻은 ‘정죄하다’라는 의미를 동반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는 행위는 결국 그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여 잘잘못으로, ‘정죄’하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평가하다 보면 결국 행위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사람됨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게 마련이고요. 그러나 사람을 정죄하고 평가하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를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요. 1절의 “너희가 비판(‘판단’이라는 번역이 더 적실)을 받지 아니하려거든...”이라는 종속절은 사람으로부터의 판단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판단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심판과 정죄를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κρίνω Strong number2919

    1. 나누다.  2. 판단하다.  3. 결정하다
    Pronunciation [ krinō ] 
    관련 성경  /  고발하다(마5:40, 고전6:6), 비판하다(마7:1), 심판하다(마19:28, 눅19:22, 요3:17, 계18:8), 정죄받다(눅6:37), 판단하다(요8:16, 롬2:1), 다스리다(눅22:30), 심판받다(요3:18, 벧전4:6, 계20:12), 재판하다(요18:31), 결의하다(행3:13, 21:25), 작정하다(행20:16, 고전2:2, 딛3:12), 심문받다(행23:6, 24:21, 25:20), 판단받다(롬3:4, 고전11:32), 정죄하다(롬14:22), 결심하다(고후2:1).

    티와 들보의 교훈

    1.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라
        - 다른 사람의 티는 보고 나의 들보는 깨달아야 한다.
       - 소크라테스 ; 너 자신을 알라(know thyself) 그노티 쎄아우톤(γνῶθι σεαυτόν)

    2. 비판하는 것은 정죄하는 것이다
       -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  공자 ;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그것이 곧 앎이다.

    metacongnition
    ˌmedəˌkäɡˈniSH(ə)n
    메타인지 

    자기객관화. 1970년대에 발달심리학자인 존 플라벨(J. H. Flavell)이 창안한 용어로, 남의 지시 이전에 스스로 자기 생각· 평가에 대해 생각하는 능력을 말한다. 상위인지, 초인지라고도 한다. 갈등 관계에서 이 능력이 발휘될 경우 반성, 사과, 화해 등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고, 메타인지가 전략적 사고와 합쳐 이상적으로 발휘된다면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

    자기 성찰과도 연결된다.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이나 지식이나 말·행동 등에 대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게 맞는가 아닌가 스스로 검증을 거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내가 맞는 건가 하면서 스스로 의심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자신의 정신 상태, 곧 기억력이나 판단력이 정상인지를 판단하는 데에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술을 먹었을 때 자신의 발언과 행동이 혹시 잘못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는 사람이라면 뛰어난 지성을 발휘한 것이다.

    이 능력이 부족할 경우 암기력과 무관하게 학습 능력에 관련하여 장애가 생길 수 있다. 모르는 것을 안다고 판단했으므로 암기나 기억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자칫 잘못 실행하면 셀프 가스라이팅을 거쳐 올바르지 못한 가치관을 가질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비판하지 말아야 할 일곱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습니다.

    1. 우리는 모든 사실을 다 알지는 못한다

    정당한 비판을 위해서는 모든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늘 제한된 사실에 대한 지식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제한된 사실만 알고 있다면, 우리는 비판은 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비판은 사실에 기초해야 하는데, 제한된 사실로 어떻게 올바른
    비판을 할 수 있겠습니까?

    2. 우리는 그 동기를 다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비판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동기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나 말, 표정을 통해서 그 동기를 100%
    알 수는 없는 것입니다. 동기란 내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동기를 이해하지 못하면서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동기를 다 이해할 수 없는 만큼 우리는 비판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3. 완전히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없다

    인간의 판단은 항상 객관성과 주관성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판단이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의 각자의 판단은 늘 어느정도 주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사람의 판단처럼 다른 모든 사람들이 동일한 판단을 할 때에만 그것은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을 비판하고자 할 때 그것은 우리 자신의 주관성이
    개입된 것이라는 점을 늘 인식해야 합니다.

    4. 상황을 완전히 알지 못한다

    어떤 사실이나 사건은 모두 상황맥락적입니다.
    동일한 사실도 어떤 상황에서는 다른 의미를 갖게 됩니다.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의 예를 봅시다. 미장이가 벽돌을 쌓다가 조수에게 “벽돌!”
    하고 외치면 그것은 “벽돌을 가져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만약 공사장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에게 “벽돌!”하고 외치면 그것은
    “떨어지는 벽돌을 피하라”는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쉽게 누군가를 비판할 수 없는 것입니다.

    5.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다

    우리의 인식은 늘 제한적입니다.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자 할 때 우리는 늘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가 보지 못한 어떤 부분들이 있고 그것이 칭찬받아야 할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쌍히 여겨야 할 부분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비판하고자 하는 사람이 정말 드러내기 힘든 장애를 가졌거나
    남모르는 고통을 가졌다면, 우리의 비판은 불완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6. 우리는 편견이 있으며 시야가 흐려질 수 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편견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관성보다 훨씬 더 우리자신을 슬프게 하는 모습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비판하려고 하는 상대방에 대한 첫인상이 편견으로 작용할 때가
    있습니다. 또한 비판하려는 상대방에 대해서 주위 사람들이 평가를 내린 것이
    편견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편견이 있는 한 우리의 평가는 사실에
    근거한 평가가 될 수 없습니다. 이미 평가를 내려놓고 거기에 필요한 사실들만을
    열거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7. 우리 자신은 불완전하며 일관성이 없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늘 불완전합니다. 특별히 일관성이 없습니다.
    C S 루이스는 자신이 가르치던 옥스퍼드 대학원 학생이 일관성없는 태도를
    가졌던 일화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그 학생은 저명정치인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어떤 파티에서 그 정치인이 자신을 사람들 앞에서 칭찬하자, 그 다음부터는
    그 정치인에 대해서 우호적인 시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완전하며 일관성이 없는 것이 그 사람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를 비판하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중에 아무도 비판하고자 하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유혹 속에서 쉽게 험담과 비판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비판하지 말라는 주님의 명령을 간단히 넘어가서는 안됩니다.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다면, 위에서 언급한 일곱가지 근거를 늘 생각하십시오.
    비판하지 않는 사람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특징 말씀의 기갈 사랑의 고갈 믿음의 결핍


    마지막 시대의 특징

    사랑의 고갈(苦渴) 마태복음 24:12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Because of the increase of wickedness, the love of most will grow cold.




    불법(*, 아노미아) -
     부도덕성과 무질서적인 방종을 가리키는 말로서 전통적 규범이나 윤리적 가치 기준이 상실됨을 말한다. 
    특히 본문에서는 진리와 신앙이라는 미명하의 온갖 비신앙적 작태(作態)와 방종과 타락을 가리킨다(살후 2:3, 7, 8). 
    한편 오늘날 이러한 부도덕적 사회 현상을 가리켜 '아노미현상'이라고 지칭한다.

    사랑이 식어지리라
    여기서 '식어지다'(*, 프쉬게세타이)는 '숨쉬다', '싸늘해지다'는 뜻의 '프쉬코'(*)에서 나온 말로서 '싸늘한 숨을 쉬다' 또는 '차가워지다', 
    그리고 좀 더 심층적으로 '해로운 바람으로 인해 영적 열성이 식어지다'(Vincent)등의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는 이유는 '아노미 현상', 곧 불법으로 인한 내적인 불화와 균열(龜裂)때문이다. 
    실로 이 구절은 9-11절까지 나타난 교회분열로 인한 결과이며 결론이다. 
    결국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식어지면 8절의 내용처럼 세상의 끝날이 되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언급된 '사랑'(*, 아가페)이라는 명사는 공관 복음서에서는 눅 11:42과 여기서만 사용되는 말이다. 
    누가복음에서는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에 관해 설명된 데 비해 본문은 형제상호간의 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서 성도가 추구해야만 하는 형제 사랑은 오직 하나님 사랑에 그 기초와 뿌리를 두어야 하는것이다(요일 4:10, 19). 
    그리고 형제 사랑은 곧 하나님 사랑의 확실한 발로인 것이다. 
    여하튼 모든 율법, 모든 의식(儀式), 모든 성전의 화려함과 웅장함도 사랑이 식어지면 끝이 되고 만다(고전 13장).

    믿음의 결핍(缺乏)누가복음 18: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I tell you, he will see that they get justice, and quickly. However, when the Son of Man comes, will he find faith on the earth?



    속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타케이'(*)는 일반적으로는 아주 짧은 간격 뒤에 곧 일어날 사건을 지시한다. 
    그러나 때로는 어느 정도의 기간이 흐른 후 '갑자기' 어떤 일이 발생하리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비교, 계 22:20의 '타퀴'(*). 어쨌든 이 말은 하나님의 응답이 조속히 혹은 반드시 이루어지게 될 것을 시사한다.

    믿음을 보겠느냐 

    - 여기서의 믿음은 풀루머(Plummer)의 주장대로 그리스도로서의 인자에 대한 믿음일 수도 있고 
    또는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는 기도의 자세를 견지하는 실천적 믿음일 수도 있다. 
    또한 이 말은 인자의 재림이 지연됨에 따라 많은 주의 제자들이 박해의 시대 속에서 낙망하여 허탄함에 빠지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결국 이 말 속에는 주의 재림이 늦어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세상 풍조에 휩쓸려 신령한 믿음의 길을 포기하게 되리라는 예측이 담겨 있다. 
    이 점에 관해 주님은 열 처녀의 비유를 통해 경고하신 바 있다(마 25:5). 
    하지만 애굽에서의 오랜 종살이로 인해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은 끝내 출애굽을 명하셨으며(출 3:10) 
    또한 바벧론 유수(幽囚)로 말미암아 다윗 왕국에 대한 언약이 끊긴 것으로 알고 소망을 잃었던 백성들에게 위대한 귀환은 기필코 성취되고 말았다(출 12:51).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구속 계획을 만세 전으로부터 차질 없이 하나 하나 성취해 나가셨고 지금도 그 과정에 있는 것이다.

    * 유수(幽囚) / 그윽할 유(), 가둘 수()  
    - 잡아 가둠, 구금(拘禁)


    말씀의 기갈(飢渴) 아모스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The days are coming," declares the Sovereign LORD, "when I will send a famine through the land-- not a famine of food or a thirst for water, but a famine of hearing the words of the LORD.


    본절은 보다 본질적인 기근의 문제르를 다룬다. 
    즉, 외적인 기근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여호와의 말씀의 기근이라는 것이다.

    보라 날이 이를지라 - 

    '이를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바임'(*)은 '들어오다'는 의미를 가진 '보'(*)의 분사형으로 역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사람들을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하셨다. 
    백성들은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왜냐하면, 말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시 74:9; 애 2:9; 겔 7:26; 호 5:6).
















    은사(恩賜)



    성령의 은사 종류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이사야 11장에 언급된 은사들

    성령의 은사(영적 선물)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교회의 유익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신 특별한 능력과 기능입니다. 성경에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성령 은사가 언급되어 있으며, 주로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 12장, 그리고 이사야서에서 그 목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은사들은 개인적 영광이 아닌 공동체의 건덕과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주어진 것으로, 모든 신자는 최소한 하나 이상의 은사를 받았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은사 목록

    성경에는 성령의 은사에 관한 세 가지 주요 목록이 있으며, 각각은 다른 측면과 기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목록들을 살펴보면 성령의 다양한 은사와 그 목적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의 은사들

    로마서 12:6-8에서는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은사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1. 예언: "즉석에서 말을 꺼내다" 또는 "하나님의 목적을 해석하기 위해 거룩한 뜻을 선포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단순히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은사입니다.
    2. 섬기는 일(봉사): 헬라어 '디아코니안'에서 유래했으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은사입니다.
    3. 가르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분석하고 선포하며, 의미와 맥락을 설명하고 적용점을 알려주는 은사입니다.
    4. 위로(권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따르도록 권면하며, 약해진 믿음을 강건하게 해주는 은사입니다.
    5. 구제(나눔): 자신의 재정, 물질, 시간 등을 다른 사람들과 기쁘게 나누는 은사입니다.
    6. 다스림(지도력):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고 관리하는 은사로, 배를 조종하는 사람과 같은 개념을 내포합니다.
    7. 긍휼(자비):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갖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은사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들

    고린도전서 12:4-11과 12:28에서는 더 많은 은사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1. 지혜의 말씀: 삶의 상황 속에서 성경의 진리를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2. 지식의 말씀: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얻는 통찰력으로 진리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된 은사입니다.
    3. 믿음: 하나님과 그의 말씀, 약속에 대한 강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은사입니다.
    4. 병 고치는 은사: 하나님의 능력으로 질병을 치유하는 은사입니다.
    5. 능력 행함(기적):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입니다.
    6. 예언: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전달하는 은사입니다.
    7. 영들 분별: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인간에게서 온 것인지, 사탄에게서 온 것인지를 분별하는 은사입니다.
    8. 방언: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거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은사입니다.
    9. 방언 통역: 방언으로 말해진 메시지를 일상어로 해석하는 은사입니다.
    10. 사도: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역할을 하는 은사입니다.
    11. 돕는 것(서로 돕는 것): 다른 사람들을 보조하고 지원하는 은사입니다.

    이사야서에 나타난 성령의 일곱 은사

    이사야 11:2-3에서는 메시아(그리스도)에게 부어질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가 언급되며, 특히 가톨릭 전통에서 중요시됩니다:

    1. 슬기(지혜): 하나님과 하나님에 관한 것들을 올바로 판단하고 실천하도록 돕는 은혜로, 하나님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2. 통달(깨달음): 신앙의 진리와 자연의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은사로, 성경과 교리의 숨은 뜻을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3. 의견(일깨움): 신앙인이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올바로 판단하게 해주는 은혜입니다.
    4. 굳셈(용기): 신앙생활 중에 발생할 수 있는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은사입니다.
    5. 지식: 피조물의 공허함을 깨닫고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게 해주는 은혜입니다.
    6. 효경(공경):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자녀로서의 사랑과 모든 사람에 대한 보편적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은혜입니다.
    7. 두려워함(경외):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죄를 피하게 하고 절제의 덕을 실천하도록 돕는 은사입니다.

    성령 은사의 특성과 분류

    성령의 은사들은 그 특성과 기능에 따라 여러 범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은사의 성격에 따른 분류

    1. 말씀 관련 은사: 예언, 가르침, 권면 등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전달하고 설명하는 은사들입니다.
    2. 봉사 관련 은사: 섬김, 돕는 것, 구제 등 실질적인 도움을 통해 공동체를 섬기는 은사들입니다.
    3. 초자연적 은사: 방언, 병 고침, 기적 등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은사들입니다.
    4. 지식 관련 은사: 지혜, 지식, 분별 등 영적 통찰력과 이해를 제공하는 은사들입니다.

    관계에 따른 성령의 열매 분류

    가톨릭에서는 성령의 열매(갈라디아서 5:22-23)도 관계에 따라 분류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 사랑, 기쁨, 평화.
    2. 이웃과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 인내, 친절, 착함.
    3. 자신 안에서 맺는 열매: 믿음(신뢰), 온유, 절제.

    성령 은사의 목적과 의미

    공동체를 위한 은사

    성령의 은사는 개인의 영광이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유익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어집니다. 고린도전서 12:7에서는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은사의 다양성과 통일성

    성령의 은사는 다양하지만, 그 출처는 한 분 성령이십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고전 12:4-6).

    모든 신자를 위한 은사

    성령은 모든 신자에게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이는 마치 태양빛이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동일하게 비추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은사와 사역의 연결

    에베소서 4:11-13에서는 사역자들(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 교사)이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은사가 단순히 개인적 능력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 내에서 기능하는 사역적 역할임을 보여줍니다.

    결론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주신 특별한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고 강화하기 위한 목적을 가집니다. 성경에 나타난 다양한 은사 목록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도구로 사용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중요한 점은 모든 은사가 같은 성령으로부터 나온다는 것과,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발견하고 발전시켜 공동체를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 12:31)는 말씀처럼 더 큰 유익을 위한 은사를 추구하되, 모든 은사 중에서도 사랑이 가장 중요한 열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건설하며,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 4:13) 성장하도록 돕는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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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사의 여러 가지 종류와 정의

    A. 은사들의 종류

    <고전 12:8-10>에 기록되어 있는 '영적인 은사'들은 일차적으로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표현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행해지는 사역에 필요한 그분의 능력이 초이성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신약에 나타나 있는 '은사들'은 크게 4가지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성경적 맥락에서 헬라어의 용어에 따라 분류해 본다.

    1. "파네로시스" (Phanerosis)/ '성령의 나타남'(고전 12:8-10)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 등.

    2. "디아코니아" (Diakonia)/ '성령의 사역' (고전 12:28)

      :사도, 선지자, 교사, 기적, 치유, 서로 돕는 일, 행정, 방언.

    3. "카리스마타" (Charismata)/ '은혜대로 받은 은사' (롬 12:3-8)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4 ."도마타" (Domata)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자들' (엡 4:8-14)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5. 기타: 독신 (고전 7:7,8), 자선 (고전 3:3), 손님을 대접하는 일 (벧전 4:9) 등

    B. 각 은사에 대한 정의

    아래에 열거된 27가지 은사는(피터 와그너 박사) 성령의 은사에 대한 정의이다.

    1. 예언 /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별된 말로 전달하는 역량이다.

    2. 섬기는 일 / 섬기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일과 연관된 과업 가운데 충족되지 못한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그 요청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역량이다.

    3. 가르치는 일 / 가르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몸과 그 지체들의 건강 및 직임에 관계되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량이다.

    4. 권면 / 권면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위로의 말과 조언의 말을 해주어 그들이 실제로 도움이나 치유를 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역량이다.

    5. 헌금 / 헌금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물질적인 자원을 관대함과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위해 바치는 것이다.

    6.지도력 / 지도력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 하는 목표들을 설정하고, 이 목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역량이다.

    7. 긍휼 / 긍휼을 베푸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순수한 자비를 느끼고, 그 순수한 자비를 행동으로 옮겨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하는 역량이다.

    8. 지혜 / 지혜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성령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어진 지식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요구 사항에 가장 잘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역량이다.

    9. 지식 / 지식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성장과 번영에 관한 정보와 사상을 발견하고 쌓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하는 역량이다.

    10. 믿음 /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분간하는 역량이다.

    11. 신유 /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회복케 하시는 일의 중개자로서 봉사하는 역량이다.

    12. 기적 / 기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관측자들에게는 자연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일로, 지각되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행동의 중개자로 봉사는 역량이다.

    13. 영 분별 / 영 분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 지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혹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인지 혹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14.방언 /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역량이고,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서 배우지 않은 언어인데도 하나님의 성별된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량이다.

    15. 방언 통역 /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의 메세지를 일상어로 알려 주는 것이다.

    16. 사도 / 사도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특히 영적인 일애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여러 교회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맡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일의 놀라운 권위란 그 여러 교회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평가되는 영적 권위를 말한다.

    17. 서로 돕는 일 / 서로 돕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몸의 다른 지체들의 활동에 주어, 그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의 효율을 증대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18. 행정 / 행정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 단위의 장기적, 단기적 목표를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기안하여 실행할 줄 안다.

    19. 복음 전하는 일 / 복음을 전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여량으로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또 그리스도의 몸의 책임 있는 지체가 되도록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량이다.

    20. 목사 / 목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신자들의 영적 번영에 대한 책임을 장기간에 걸쳐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다.

    21. 독신 / 독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독신 생활을 아무런 지장 없이 할 수 있고, 성적 유혹도 받지 않는 것이다.

    22.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 /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하여 물질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 특정 사회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생활 양식을 택하여 사는 것이다.

    23. 순교 / 순교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믿음을 위해서는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면서 기쁨과 승리의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24. 대접하는 일 / 대접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숙식의 요구되는 사람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환대하는 것이다.

    25. 선교사 / 선교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밖의 다른 은사들이 어떠한 것이든, 제2의 문화권에서 전도 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이다.

    26. 남을 위한 기도 / 남을 위한 기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기도하고, 보통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응답을 많이 받는다.

    27. 귀신을 쫓아내는 일 /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마귀와 악령을 쫓아내는 역량이다.

    각 은사에 대한 정의

    아래에 열거된 27가지 은사는 C.Peter Wagner교수가 분류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정의이다. 

    1.예언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별된 말로 전달하는 역량이다. 

    2.섬기는 일 

    섬기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일과 연관된 과업 가운데 충족되지 못한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그 요청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역량이다. 

    3. 가르치는 일 

    가르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몸과 그 지체들의 건강 및 직임에 관계되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량이다. 

    4.권면 

    권면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위로의 말과 조언의 말을 해주어 그들이 실제로 도움이나 치유를 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역량이다. 

    5.헌금 

    헌금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물질적인 자원을 관대함과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위해 바치는 것이다. 

    6.지도력 

    지도력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 하는 목표들을 설정하고, 이 목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역량이다. 

    7.긍휼 

    긍휼을 베푸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리스도인이든 비그리스도인이든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순수한 자비를 느끼고, 그 순수한 자비를 행동으로 옮겨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하는 역량이다. 

    8.지혜 

    지혜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성력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어진 지식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요구 사항에 

    가장 잘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역량이다. 

    9.지식 

    지식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성장과 번영에 관한 정보와 사상을 발견하고 쌓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하는 역량이다. 

    10.믿음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분간하는 역량이다. 

    11.신유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회복케 하시는 일의 중개자로서

    봉사하는 역량이다. 

    12.기적 

    기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관측자들에게는 자연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일로, 지각되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행동의 중개자로 

    봉사는 역량이다. 

    13.영 분별 

    영 분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 지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혹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인지 혹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14.방언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역량이고,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서 

    배우지 않은 언어인데도 하나님의 성별된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량이다. 

    15.방언 통역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의 메세지를 일상어로 알려 주는 것이다. 

    16.사도 

    사도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특히 영적인 일애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여러 교회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맡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일의 놀라운 권위란 그 여러 교회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평가되는 

    영적 권위를 말한다. 

    17.서로 돕는 일 

    서로 돕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몸의 다른 지체들의 활동에 주어, 그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의 

    효율을 증대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18.행정 

    행정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 단위의 장기적, 단기적 목표를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기안하여 실행할 줄 안다. 

    19.복음 전하는 일 

    복음을 전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여량으로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또 그리스도의 몸의 책임 있는 지체가 되도록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량이다. 

    20.목사 

    목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신자들의 영적 번영에 대한 책임을 장기간에 걸쳐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다. 

    21.독신 

    독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독신 생활을 아무런 지장 없이 할 수 있고, 성적 유혹도 받지 않는 것이다. 

    22.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하여 물질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 특정 사회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생활양식을 택하여 사는 것이다. 

    23.순교 

    순교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믿음을 위해서는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면서 기쁨과 승리의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24.대접하는 일 

    대접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숙식의 요구되는 사람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환대하는 것이다. 

    25.선교사 

    선교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밖의 다른 은사들이 어떠한 것이든, 제2의 문화권에서 전도 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이다. 

    26.남을 위한 기도 

    남을 위한 기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기도하고, 보통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응답을 많이 받는다. 

    27.귀신을 쫓아내는 일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마귀와 악령을 쫓아내는 역량이다. 

    은사에 대한 바른 이해

    은사의 정의와 목적, 성경에 나타난 은사

    1. 은사의 정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며 특히 신약의 바울서신에 주로 사용된 언어로서 구원받은 백성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며 교회에 덕을 세우기 위해 그리고 그리스도를 확연히 드러내기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 자체의 일원에게 섬김을 위한 특별한 재능의 거룩한 증여라고 정의할수 있다. William. McRae, 『교회에서의 은사활용』. 김의장 옮김. (서울: 엠마오, 1985), 16쪽. 

    이렇게 정의한 근거는 성경에 은사로 표현된 단어가 두 가지 어원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은사’로 번역된 단어가 프뉴마티코스(πνευματικος)이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고전12:1) 여기에서 신령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은사의 어원으로 사용되었는데 그것은 곧 은사는 ‘영적인 것’으로서 신령함이 그 근원이라는 말이다. 두 번째 ‘은사’로 번역된 단어는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고전12:4)에 카리스마(χαρισμα)인데 그 요소에 있어서 영적 은사는 재능을 말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영적 은사는 재능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William. McRae, 『교회에서의 은사활용』, 17쪽.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은사가 있다’ 롬 12:6 

    고 말할 때 그 의미는 어떤 면에서건 그들이 탁월하게 머리가 좋다거나 일을 효율적으로 한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들을 특정한 방식으로 사용하여 주목할 만한 덕을 세우셨고, 그 일이 하나님이 동일한 사역을 다시 하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보증이 된다는 뜻이다. J. I. Packer,『성령을 아는지식』, 117쪽. 

    즉 우리의 능력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것이 은사이다. 성도가 하는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에게 분명하게 덕을 끼치지 못한다면, 그 일을 해내는 우리의 역량을 영적인 은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2. 은사의 목적

    성령의 은사를 주신 목적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다. 박형용,『교회와 성령』, 148쪽. 

    이는 성도 각자에게 한 가지 이상씩 은사를 주셨다는 사실이 이미 증거하고 있다. 성령의 은사들이 집중적으로 언급된 바울 서신들은 신약의 다른 어떤 책보다 교회를 위해서 기록된 서신들이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설명하는 서신으로 은사를 주신 목적은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고 말씀하신다. 이는 성령의 은사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연결시킨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엡 4:13)하게 될 때까지 세워져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성령의 은사들을 필요에 따라 주신 것이다. 

    로마서(12:4-8)에서 은사들이 집중적으로 언급된 구절들은 성도들의 활동과 삶을 설명하는 부분중 몸과 지체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지체가 되었느니라”(롬12:4-5). 성령께서 성도들에게 서로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은 다른 직분을 바로 실행함으로 하나의 몸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이다. 

    고린도 전서는 은사 및 다른 문제들로 혼란에 빠진 고린도 교회를 바로 지도하기 위해 쓴 서신으로 은사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풍성을 구하라”(고전 12:7, 14:12)고 하였다. 이 사실은 각 지체에게 주신 성령의 은사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어졌음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고전 12:12-26절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해서 각 지체들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을 설명하고 있다. 몸의 각 지체들은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몸의 활동을 원활하게 해야 한다. 각 지체들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지체를 위해 존재하며 다른 지체를 경쟁관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각 지체 간에 시기와 분쟁이 있을수 없고 서로 협력하여 몸의 활동을 도와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바울이 신자됨의 믿음을 먼저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영으로 말하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구원은 성도에게 있어서 누구에게나 필수적이요 종말론적이다. 또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한몸이 되었다는 것이다(고전12:13) 성령의 은사와 활용에 앞서 성령과의 인격적 관계를 먼저 언급함으로써 은사의 목적을 좀더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보편적이다. 

    3. 성경에 나타난 은사 

    a.신약성경에 나타난 은사 

    사도바울에 의하여 거의 전문적으로 사용되어 온 이 은사는 죄인을 용서하사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생을 지칭한 말이다. 롬 6:23 

    이 말은 은혜와는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고 이 은혜는 성령의 역사와 상관 관계를 가지고 있다. Gehard Kittel,(ed),trans,Geoffery W.Bromiley,『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Vol.Ⅸ(Grand Papids Eerdmans,1974), p. 403. 

    신약은 성령의 은사에 관한 포괄적인 목록을 구체적으로 나누고 있다. 성령의 은사라는 개념이 신약에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실현으로 나타나 있다. 사실 은사는 그 직무가 평범한 것이든 특별한 것이든 간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나타나는 직무의 일종이다. 바울이 은사를 하나님의 선물이란 의미로 사용할때는 이 의미는 하나님의 심판과 유죄 판결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사용했으며 이같은 주장이 로마서에 자주 나타난다. William Barklay,『New Testament Words』,(London : S.C.M, 1971),pp.62-63. 

    사람이 하나님에 의하여 본래적으로 타고난 재주를 은사라고 고린도전서 7:7을 들어 말한 윌리암 바클레이의 주장 William Barklay,『New Testament Words』, p 63. 

    에 대하여 윌리암 매크래는 재능 역시 하나님에 의해 주어졌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되어지는가의 여부에 있어서 재능은 하나님의 은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William. McRae, 『교회에서의 은사활용』, 19쪽. 

    즉 성령을 모르는 불신자들에게도 좋은 재주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봉사함에 있어서 직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에 중생한 자들에게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논술할 때에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선물로서 교회 봉사에 필수 불가결한 요인이며 이 은사는 사람에게 의해서는 결코 베풀어질수 없고, 예수의 신령한 몸인 교회를 위한 선물이므로 예수께로부터 받을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 교회의 구조적인 조직을 인체 조직에 비교하며 은사의 다양성과 그리고 사역의 다양성을 진술했다. 롬 12:4, 고전 12:12-27 

    은사가 각각 다른 것은 몸의 각 부분이 다른 것처럼 믿음의 공동체 전부를 유익하게 하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성도는 한 성령, 한 주님을 모시고 있으며 세례도 하나이기 때문이다.(고전12:4-13) Mack B. stockes,『성령과 크리스챤의 체험』,박선균옮김(서울:성광문화사,1984),58쪽. 

    신약에서 은사에 관하여는 로마서 12장, 고린도전서12장, 에베소서4장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이 은사들이 잘못 사용되게 되면 교회는 큰 혼란에 빠질 위험에 따르게 된다. 성령에 의해서 성도들에게 필요에 따라 주어지는 은사는 하나님의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다양하게 주어지지만 모든 은사는 교회에 덕을 세우는 일에 대하여 통일성을 지녀야 된다고 본다. 

    b. 구약성경에 나타난 은사 

    구약에서 은사라고 부를 수 있는 표현들은 “여호와의 영의 강림”이나 “현존”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성서대백과사전 제4권,(서울: 기독지혜사,1977), 98 쪽. 

    . 구약성경에서는 선지자들을 통하여 길게 혹은 짧게 예언의 은사, 기적의 은사, 재능의 은사, 지혜의 은사를 주어 일하게 하셨음을 알 수 있다. 

    4.은사와 재능 

    은사에 대한 정의와 그 구체적인 표현에 비추어 보면 영적 은사와 선천적 재능 사이에는 뚜렷한 구분이 지어진다. 재능을 “어떤 개인의 일정한 소질적, 정신적 능력, 또는 훈련에 의해서 얻는 정신 실현의 능력” 국어사전편찬위원회,『국어대사전』,(서울: 삼성문화사,1988),1397쪽. 

    이라고 볼 때 재능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고, 노력을 통하여 발전시킬수 있으며, 인생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성취하는데 큰 유익을 준다는 점에 있어서는 은사와 비슷하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재능이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 것임에 반하여, 은사는 성도들에게만 있고, 재능이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은사는 중생과 더불어서만 주어지는 것이며, 재능이 인간의 육체를 위하여 악의 도구로 사용될수 있는 반면에 은사는 반드시 하나님의 덕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 있어 재능과 다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무엇은 재능이며, 무엇은 은사에 속한 것인가를 구별하기란 매우 힘들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은사와 재능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퇴폐적인 대중가요 가수가 뛰어난 음악적 재능으로 명성을 얻었다가 그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회개하여 이번에는 훌륭한 복음성가 가수로 하나님을 찬양했다면 그의 음악적 재능은 어디까지이며, 어디까지가 은사에 속하는가? 이러한 경우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하나님께서 어떤 재능을 택하셔서 그것을 성령의 능력으로 바꾼후 영적인 은사로 사용한 것 같다”고 말한다. 물론 이는 의미 있는 판단이기는 하지만, 은사란 선천적 재능의 발전된 형태라고 볼수는 없다는 데에 문제가 된다. 박창환 교수는 “재능은 하나님의 제 일차 창조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위하여 주신 것들이고 은사는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새롭게 창조하시는 새 세계에서, 즉 그리스도가 주관하시는 사회에서 작용하게 하시려고 주시는 기능과 역량과 재능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박창환,『성령의 은사와 신앙생활』,(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출판국,1987),24쪽. 

    고 정의 한다. 

    윌리엄 매크래는 다음과 같이 재능과 은사의 차이점과 유사점을 분류하고 있다. William. McRae, 『교회에서의 은사활용』, 19쪽. 

    결과적으로 은사와 재능을 구별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내용적인 기준을 통한 원칙을 갖는데는 별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즉 어떤 이의 재능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성령의 능력과 관련될 것일 때 그것은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은사인 것이며, 아무리 탁월하고 커다란 유익을 주었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 밖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재능에 속한 것이다. 즉 관찰할 때 어떤 은사들은 초자연적인 측면이 표면에 나타나고 어떤 은사들은 자연적이요 일상적인 측면이 부각되어, 인간의 재능을 실천하는 것에 불과하게 보일지라도, 그 속에서 성령의 임재를 느끼며,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리며,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이라면 성령의 은사라고 부를수 있다. 오성춘,『영성과 목회』(서울: 장신대 출판부,1989),160쪽. 

    5.은사의 종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3-8, 고린도전서 12:8,10, 28-30, 에베소서 4:11에서 그리고 베드로 사도는 베드로전서 4:11에서 은사의 다양한 종류들을 언급하고 있다. William. McRae, 『교회에서의 은사활용』, 44쪽. 

    이중에서 은사주의자들의 주장과 개혁주의 주장과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은사 몇가지에 대해서만 구체적으로 다루기로 한다. 

    a.예언의 은사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계시의 진리를 받아서 말하는 역량이다. William. McRae, 『교회에서의 은사활용』, 46쪽.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만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하나님의 뜻을 공포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고영민,『성서원어대사전』,제9권(서울: 기독교문화사,1973),440쪽. 
    “예언”이라는 말의 의미는 “말을 토해 낸다” 혹은 “미리 예고하고 경고하다” 또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한다” 고영민,『성서원어대사전』,252쪽. 
    는 것으로, 미래의 사건과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아 전달한다는 뜻이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304쪽. 
    즉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이며,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인간이나 그가 속한 사회의 문제를 드러내어 폭로하며 현재의 각성을 호소하고 미래의 새 일을 선포하며 그 사회속의 실망자에는 위로와 소망을 주고, 무지하고 힘이 없는 자에게는 교육을 담당하며, 우매하고 흔들리는 자에게는 권면과 권고를 주는 사람이다.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예언의 특징들은 첫째. 하나님이 우리의 머릿속에 직접 계시해 주시는 생각이며 다른 방법으로는 그 생각을 알수 없으며 둘째. 예언은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관련해서 구체적인 지시를 포함할때도 많으며 셋째. 예언을 할때는 구약성경에서 계시를 받을때처럼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인칭 ‘나’를 사용해야 적절하다. 넷째. 예언은 사도시대 교회의 표적 은사였지만 중세교부시대로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치유 등 다른 표적 은사들과 함께 교회에서 정지되어 있었다고 주장한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305쪽. 
    이에 대하여 패커 교수는 예언하는 일은 보편적인 그리스도인의 활동이며, 사도시대에만 예언이 있었다든지 예언이 없었던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반박한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305쪽. 
    또한 그는 그리스도 이전과 이후에 선지자들이 때때로 감동을 받아 미래에 대해 말한적이 있지만 마24:15, 행11:28, 21:10, 벧전1:10-12, 계1:3, 22:18 
    예언사역의 본질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지금 하시는 말씀을 분명히 전하는 일이었다고 주장한다. 즉 예언은 성경시대에는 새로운 계시의 일부를 차지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새로운 계시가 아니다고 말한다. 단지 사람들에게 이미 계시된 진리를 적용하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323쪽. 

    b.방언의 은사 
    성령강림의 결과로 방언을 말한 것은 신약성경의 네곳에서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 이는 오순절에 행2:4,11 
    고넬료의 집에서 행19:6 
    요한의 세례만을 받았던 에베소에 사는 제자들에게 행19:6 
    그리고 고린도에 있는 교회 고전12, 14장 
    에서 일어난 일이다. 
    고넬료의 집과 에베소에서 제자들이 한 방언들은 오순절에 있었던 방언들과 성격상 일치한다. 싱클레어퍼거슨,『성령』김재성 옮김(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1), 243쪽. 
    그러나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에 관해서는 많은 의견들이 있다. 싱클레어 퍼거슨은 오순절날의 방언과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은 모두다 통역과 해석이 요구되어지는 외국어로 보고 있으며 싱클레어퍼거슨,『성령』, 245쪽. 
    찰스 하지 역시 같은 입장에 서 있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295쪽. 
    반면 아브라함 카이퍼는 두 방언 모두를 이해할수 없는 소리로 보았다. 그러나 한가지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방언의 경우 바울은 방언의 사용을 공적인 용도로 말하고 있으며,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용도로서의 방언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298쪽. 
    또한 패커 교수는 방언에 대한 관련 구절을 다룰 때 최악의 실수는 자기 자신의 견해가 완벽하게 명료하거나 확실하다고 직간접적으로 주장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295쪽. 
    여하튼 방언이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의 임재를 훈련하며 우리 자신을 그분의 영향력 앞에 열어 드리는데 도움을 준다는 면에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유익한 하나님의 선물일수 있다고 패커 교수는 지적한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318쪽. 
    또한 그는 설령 오늘날의 방언사용자들이 사용하는 방언이 고린도교회에서 쓰던 방언과 다르다 해도 아무도 그들의 방언을 금해서는 안될 것 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325쪽. 

    c.방언통역의 은사 
    방언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말할때에 그것은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사람을 위해 통역함이 필요했고, 이것도 은사에 속한 것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다.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에게 주신 특수한 능력으로서 방언을 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일방적인 말로 알려주는 역량이다. 
    즉 이 은사는 결코 배우지 않은 외국의 언어를 자기 나라의 말로 통역하거나 해석할수 있는 능력의 은사이다. William. McRae, 『교회에서의 은사활용』, 91쪽. 
    고린도전서 14:13에서 바울은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권면했다. 어째든 바울은 분명히 고린도 교인들의 방언이 번역이 가능한 의미를 전달하는 듯이 말한다. 고전14:9-13 
    패커 교수는 바울이 기록한 통역의 은사가 회복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은사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위험하기 그지없다라고 평한다. J.I.Packer,『성령을 아는지식』,302쪽. 
    증거가 너무나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은사의 여러 가지 종류와 정의.


    A. 은사들의 종류


    <고전 12:8-10>에 기록되어 있는 '영적인 은사'들은 일차적으로 교회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표현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행해지는 사역에 필요한 그분의 능력이 초이성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신약에 나타나 있는 '은사들'은 크게 4가지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성경적 맥락에서 헬라어의 용어에 따라 분류해 본다.


    1. "파네로시스" (Phanerosis)/ '성령의 나타남'(고전 12:8-10)

      :지식의 말씀, 지혜의 말씀, 믿음 치유, 기적, 예언, 영분별, 방언, 방언통역 등.


    2. "디아코니아" (Diakonia)/ '성령의 사역' (고전 12:28)

      :사도, 선지자, 교사, 기적, 치유, 서로 돕는 일, 행정, 방언.


    3. "카리스마타" (Charismata)/ '은혜대로 받은 은사' (롬 12:3-8)

      :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위하는 일, 구제하는 일, 다스리는 일, 긍휼을 베푸는 일.


    4 ."도마타" (Domata) '성도들을 준비시키는 자들' (엡 4:8-14)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5. 기타: 독신 (고전 7:7,8), 자선 (고전 3:3), 손님을 대접하는 일 (벧전 4:9) 등


    B. 각 은사에 대한 정의


    아래에 열거된 27가지 은사는(피터 와그너 박사) 성령의 은사에 대한 정의이다.


    1. 예언 /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성별된 말로 전달하는 역량이다.


    2. 섬기는 일 / 섬기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의 일과 연관된 과업 가운데 충족되지 못한 요청 사항을 확인하고, 그 요청 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자원을 사용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돕는 역량이다.


    3. 가르치는 일 / 가르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배울 수 있도록, 몸과 그 지체들의 건강 및 직임에 관계되는 지식을 전달하는 역량이다.


    4. 권면 / 권면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다른 지체들에게 위로의 말과 조언의 말을 해주어 그들이 실제로 도움이나 치유를 받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역량이다.


    5. 헌금 / 헌금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물질적인 자원을 관대함과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위해 바치는 것이다.


    6.지도력 / 지도력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미래를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 하는 목표들을 설정하고, 이 목표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되 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동하여 이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역량이다.


    7. 긍휼 / 긍휼을 베푸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리스도인이든 비 그리스도인이든 육체적 정신적 문제를 가지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순수한 자비를 느끼고, 그 순수한 자비를 행동으로 옮겨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반영하는 역량이다.


    8. 지혜 / 지혜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성령님의 마음을 알아서, 주어진 지식을 어떻게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발생하는 요구 사항에 가장 잘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아는 역량이다.


    9. 지식 / 지식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몸의 성장과 번영에 관한 정보와 사상을 발견하고 쌓고 분석하고 명료하게 하는 역량이다.


    10. 믿음 / 믿음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놀라운 확신을 가지고 미래의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분간하는 역량이다.


    11. 신유 / 신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연적인 방법이 아닌,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건강을 회복케 하시는 일의 중개자로서 봉사하는 역량이다.


    12. 기적 / 기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관측자들에게는 자연의 방향을 변화시키는 일로, 지각되는 하나님의 능력 있는 행동의 중개자로 봉사는 역량이다.


    13. 영 분별 / 영 분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 지체들로 하여금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인지 혹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인지 혹은 사단에게서 나온 것인지를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14.방언 / 방언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배우지 않은 언어로 하나님께 말하는 역량이고,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세지를 받아서 배우지 않은 언어인데도 하나님의 성별된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역량이다.


    15. 방언 통역 / 방언 통역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방언을 말하는 사람의 메세지를 일상어로 알려 주는 것이다.


    16. 사도 / 사도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특히 영적인 일애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여러 교회들을 다스리는 지도자를 맡아 실행할 수 있는 역량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일의 놀라운 권위란 그 여러 교회들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인정되고 평가되는 영적 권위를 말한다.


    17. 서로 돕는 일 / 서로 돕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몸의 다른 지체들의 활동에 주어, 그 다른 지체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의 효율을 증대시키도록 돕는 것이다.


    18. 행정 / 행정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역량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한 구성 단위의 장기적, 단기적 목표를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으며.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효과적인 계획을 기안하여 실행할 줄 안다.


    19. 복음 전하는 일 / 복음을 전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여량으로서,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또 그리스도의 몸의 책임 있는 지체가 되도록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역량이다.


    20. 목사 / 목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신자들의 영적 번영에 대한 책임을 장기간에 걸쳐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이다.


    21. 독신 / 독신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독신 생활을 아무런 지장 없이 할 수 있고, 성적 유혹도 받지 않는 것이다.


    22.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 / 자원하여 궁핍하게 되는 일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하나님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섬기기 위하여 물질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그 특정 사회에서 궁핍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동등한 생활 양식을 택하여 사는 것이다.


    23. 순교 / 순교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믿음을 위해서는 죽기까지 고난을 당하면서 기쁨과 승리의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24. 대접하는 일 / 대접하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숙식의 요구되는 사람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환대하는 것이다.


    25. 선교사 / 선교사직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 밖의 다른 은사들이 어떠한 것이든, 제2의 문화권에서 전도 활동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역량이다.


    26. 남을 위한 기도 / 남을 위한 기도의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이 은사를 받은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오랜 기간동안 기도하고, 보통 그리스도인에게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특별한 응답을 많이 받는다.


    27. 귀신을 쫓아내는 일 / 귀신을 쫓아내는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의 어떤 지체들에게 주신 특별한 역량으로서, 마귀와 악령을 쫓아내는 역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