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투포스) τύπος /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τύπος, ου, ὁ 스트롱번호 5179
1.

찍힌 자리

2.

모형

3.

형성된 것

발음 [ tüpŏs ]
어원
5180에서 유래
  • 1.
    찍힌 자리, 맞은 자리, 표, 흔적, 요20:25.
  • 2.
    모형, 형상.
  • 3.
    형성된 것, 빚어진 것, 초상, 행7:43.
  • 4.
    모양, 형성, 형식, 행23:25, 롬6:17.
  • 5.
    원형, 전형, 표본.
    • a.
      [기술적 의미에서] 모형, 원형, 행7:44, 히8:5.
    • b.
      [도덕적 의미에서] 모범, 귀감, 빌3:17, 딤전4:12.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자국(요20:25), 형상(행7:43), 양식(행7: 44), 모형(롬5:14), 본(롬6:17, 살후3:9, 벧전5:3), 본보기(고전10:6,11).



아담과 그리스도(로마서 5:12-14)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해 새 시대(new aeon)가 시작됨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옛 창조의 시작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오염되었음을 가리킴과 동시에 '죄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던 명령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죄와 사망은 불가피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여기서 '사망'은

 

(1) 육체적인 죽음,

 

(2)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골 2: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딤전 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 지옥의 형벌로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본절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망의 개념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6:23은 마지막 영생과 사망이 대조되어 있으므로 세 번째 사망의 개념이 더욱 타당하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 바울은 한 사람에 의해 세상에 들어온 죄가 보편성을 지님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죄의 보편성에 대해 증명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이미 1:18-3:19에서 이미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 이르렀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엘덴'은 일반적으로 '통과하다', '퍼져가다'를 의미한다.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 본절은 삽입구로서 반론(反論)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 반론이란 '모세 율법이 있기 전까지 과연 죄가 존재했던가'라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답변하기를 하나님께서 비록 기록된 율법으로 죄를 심판하지 않으셨으나 인류는 모태에 있을 때부터 저주 아래 있었다고 한다.

즉 율법이 공포되지 않았을 때의 범죄자들 또한 결코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죄의 결과로 생기는 사망이 인류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또한 이 같은 사실은 모세 율법이 적용되기 이전의 시대에 아우를 죽인 가인이 하나님께 형벌을 받은 사실,

 

(창 4:9-15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죄악이 관영했던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홍수로 심판을 받은 사실,

 

(창 6:1-7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바벨탑 사건,

 

(창 11: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등,

구약성경에 기록된 구체적인 여러 실례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창 19:23-29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결론적으로 죄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14절)의 기간에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구절에는 죄의 역사성(歷史性)과 보편성(普遍性)이 시사되어 있다.

 

 

▶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모세 율법 전에도 각 나라마다 비록 원시적이긴 하지만, 사회를 통치해 나가는 불문률(不文律)과 법률 및 도덕적 관습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것들의 지배를 받아왔었다(Ur-Nammu Code, Eshnunna Code, Lipit-Ishta Code, Hammurabi Code, Hittite Code).

 

그러므로 율법 이전에도 '죄에 대한 정죄'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왜 본절과 같은 진술을 하였는가?

 

바울은 단순히 법에 저촉되는 '죄'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죄, 곧 하나님과 분리되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삶 그 자체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사람들은 죄를 윤리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분리되고 하나님을 반역하던 삶이 죄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그러한 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식이 결여 되었다는 것이다.

역으로 모세 율법이 공포되었을 때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죄를 죄로 인식하게 되었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 아담과 범죄는,

 

(1)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며,

(2)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고 하는 교만이었다.

 

그리고 모세 이전 사람들이 이와 동일한 범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거역하는 본성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호세아 선지자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호 6:7)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인간의 범죄가 단순히 자범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근본적인 죄임을 선포하고 있다.

 

▶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실류센호 다나토스' 는 '사망이 왕권을 잡았다'로 번역된다.

이 말은 세상이 죄악으로 충만했다는 의미이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죄악의 세력이 꺾을 수 없을 만큼 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말에 대조되는 것으로 바울은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21절)라고 표현했다.

 

▶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이렇게 아담을 그리스도의 표상(表象)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다.

 

두 사람은 신분이나 인류에게 미친 영향면에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1) 아담이 옛 시대의 시조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새 시대의 시조이다.

(2)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義)도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즉 아담이 범죄의 시조라면, 그리스도는 의의 시조이시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튀포스)이 될 수 있다(type)

 




요한복음 3장 16절 / 독생자(모노게네스. μονογενής) 외아들, 성품 속성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 - 오직 하나


유일무이(唯一無二)

'유일무이(唯一無二)'란 성어는 오직 하나 뿐, 
그리하여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독특함을 나타냅니다. 
이 성어는 다양한 상황에 사용될 수 있으며, 이 명제와 관련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 문헌에서 발견되는 이 성어는 철학적 관점에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것을 이야기하는 데 사용되였고, 
이를 통해 그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설명하였습니다. 

유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역사적 배경은 찾을 수 없지만, 중국 철학과 역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통해 이 성어가 오랜 시간 동안 전통적인 문화에서 독특하고 지존하는 것을 상징하는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역사적 배경과 연관된 이야기를 살펴보고 독자들이 이 성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자풀이

이제 '유일무이(唯一無二)' 성어의 각 한자가 가진 의미를 살펴봅시다. 
이를 통해 성어의 전체적인 뜻과 그 속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唯 : 오직 유 
    이 한자는 오직, 단 하나라는 의미를 가지며, 다른 것과 견주어 볼 때 그 순수하고 독특한 가치를 나타냅니다.
     
  • 一 : 한 일 
    이 한자는 숫자 '하나'를 나타내며,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됩니다. 

  • 無 : 없을 무 
    이 한자는 없음, 부재를 의미하며, 다른 것과 차이를 두기 위해 쓰이는 부정적 표현입니다.
     
  • 二 : 두 이 
    이 한자는 숫자 '두'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이 한자가 부정적 표현으로 사용되어, 두 번째도 아닌 오직 하나뿐임을 강조하는데 사용됩니다.


후토스 가르 에가페센 호 데오스 톤 코스몬 호스테 톤 휘온 톤 모노게네 에도켄 히나 파스 호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 메 아폴레타이 알 에케 조엔 아이오니온

개역개정,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새번역,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영어NIV,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영어NASB,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영어MSG,16  "This is how much God loved the world: He gave his Son, his one and only Son. And this is why: so that no one need be destroyed; by believing in him, anyone can have a whole and lasting life.
영어NRSV,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not perish but may have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υτως γαρ ηγαπησεν ο θεος τον κοσμον ωστε τον υιον αυτου τον μονογενη εδωκεν ινα πας ο πιστευων εις αυτον μη αποληται αλλ εχη ζωην αιωνιον
라틴어Vulgate,16 sic enim dilexit Deus mundum ut Filium suum unigenitum daret ut omnis qui credit in eum non pereat sed habeat vitam aeternam
히브리어Modern,16 כי ככה אהב האלהים את העולם עד אשר נתן את בנו את יחידו למען לא יאבד כל המאמין בו כי אם יחיה חיי עולמים׃


이 구절은 복음에 관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the Gospel within the Gospels) 혹은 `작은 복음서'(Little Gospel)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 대표할 수 있는 요절인 본절은 복음의 진수(眞髓)로서, 복음이 담고 있는 모든 계시의 말씀을 사랑의 개념에서 천명(天命)한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세상'을 뜻하는 헬라어 `코스모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가리킨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은 선민 이스라옐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민족이나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이는 곧 복음의 보편성과 그 맥을 같이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개방되어 있지만 그 은혜틀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본절에는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동기가된 것임이 밝혀져있다. 
특별히 `사랑'의 헬라어 `아가페'는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 편에서 선수권(先手權)과 주도권(主導權)을 가지고 인생의 연약함과 죄성을 끝없이 감싸 안으신다고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이라 하겠으며(요일 4:8)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의 생애를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랑은 결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성격의 것이며 막연한 이론이나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응분(應分)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생자'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의 특수함을 강조하는 말이며, 루터의 말을 빌리면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결국 예수의 탄생은 영원 전부터 독생자로 존재하셨던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이었다는 점에서 유일 무이한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생자'
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노게네스'`외아들'이란 뜻 외에 `그 속성과 성품에 있어서 유일 무이하신 분'이란 의미도 내포한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아들'의 뜻인 `휘오스'를 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3:16, 36;5:20, 23;8:36 등). 
한편 `주셨으니'의 헬라어 `디도미'는 `보내다'(send)와 `넘겨주다'(hand over), `값을 지불하다'(pay) 등의 뜻이 있는데 본절에서도 이 말은 성육신(Incarnation)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심(crucifixion)까지도 의미하고 있다. 
웨스트콧(Westcott)은 이 낱말이 제을 바치는 일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창 22:2 주석 참조).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믿는 자의 구원에 있음을 15절에 이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멸망'과 `영생' 사이에 어떠한 중립적인 선택은 없으며 그것은 절대적인 양자 택일의 문제이다. `멸망하다'의 뜻인 `아폴뤼미'(*) 또한 요한이 자주 사용한(10번 정도) 단어로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첫째, 이 말은 `잃다', `상실하다'(to be lost)의 뜻과 둘째, `없어지다', `파괴되다'(to perish, be destroyed)의 뜻이 그것이다. 또한 이 동사는 구원과 반대되는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며,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을 나타낼 때(막 3:6), 존속되는 것과 반대되는 `멸망'을 나타낼 때 (고전 1:19), 그리고 무엇을 얻거나 받는 것과는 반대되는 `상실'을 나타낼 때 등의 경우 에도(요이 8절) 사용되었다.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아가는 자들은 필경 절망과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됨을 암시한다. 그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허망하며 하나님과의 친교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멸망을 뜻한다.


μονογενής, ές 스트롱번호 3439

1. 오직.  2. 독생하신
발음 [ mŏnŏgĕnēs ]
어원  /  3441과 1096에서 유래
  • 1.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눅7:12, 9:38, 8:42, 히11:17.
  • 2.  독생하신, 요 1:14, 18, 3:16, 요일 4:9.
  • 관련 성경  /  독생한(요 1:18). 
    [명] 외아들(눅 9:38, 히 11:17), 독생자(요 1:14, 요일 4:9).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독생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요한복음 3:16에 나오는 말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헬라어 모노게네스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영어로 “only 오직”, “one and only 오직 하나뿐인”, 
그리고 “only begotten 독생하신”으로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문제는 마지막 단어(KJV, NASB, NKJV에서 사용된 “only begotten 독생하신”)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짓 가르침을 증명하기 위해 이 말을 고수해왔습니다. 
즉 예수님은 삼위일체 중 두 번째 인격으로서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어 “begotten 생긴”을 보고 시간상 시작이 있는 존재만이 오직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창조된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begotten 생긴”이 헬라어를 번역한 영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어의 의미를 본문에 전가할 게 아니라 헬라어의 본래 의미를 살펴 봐야 합니다.

모노게네스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헬라어-영어 신약성경 사전과 다른 초기 크리스천 문학 (BAGD, 제 3판)에 의하면 모노게네스는 두 가지의 중요한 정의를 가집니다. 

첫째, 특별한 관계 안에서 오직 하나뿐인 종류로 존재하는 것

히브리서 11:17에서 저자가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생자”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사용된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한 명 이상의 아들이 있었으나, 이삭은 사라에게서 난 유일한 언약의 아들이었습니다.

둘째, 종류 또는 계급에 있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종류로서 존재하는 것
 
요한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언급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저자입니다(요한복음 1:14, 18; 3:16, 18; 요한1일 4:9). 
요한은 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관심이 있었기에(요한복음 20:31), 
예수님을 하나님과 같은 신성한 본성을 가지신 독특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각시키는 데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믿는 자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과 예수님을 묘사하는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말은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의 각각 다른 인격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인간적인 용어라는 것입니다. 
사람 아버지와 사람 아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으면 삼위일체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인격 사이의 관계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 이단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처럼, “begotten 생긴”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태어”나거나 “창조”되었다고 곡해하고 그렇게 가르치려 하는 것은 잘못된 유추입니다.


'독생자'란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까?

신약성서에서   9번 사용된 단어로, 독특한 또는 독특한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는 외아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를 세 번 사용합니다(눅 7:12 , 8:42 , 9:38 ).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과 약속의 아들인 사라의 외아들인 이삭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서 11:17 ). 
현대 번역판은 일반적으로 이 정의를 반영하기 위해 요한복음 3:16을 "유일한 아들" 또는 "독생자"로 번역 합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들은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1-3“독생자”로 번역된 헬라어 용어는 모노게 네스( monogenes) 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거나 창조되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아버지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계신 예수님이 강조됩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사용하여 우리가 인간으로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그들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골로새서 1장 15-17 절도 예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3:16절의 이 구절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예수님을 유일하신 분으로 언급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14 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8 절에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18덧붙여 “그를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독특하시지만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는 이해는 초기 교회에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초기 신조 중 하나인 니케아 신조에서 강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니, 하나님의 하나님이시요, 빛 중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시라, 나셨으나 만들어지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느니라." 

이 진술은 예수가 영원하며 세상에 구원을 제공하기 위해 보내진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이유


신학적 의의

삼위일체 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동일한 한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즉 주시오,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에서 출발한다. 구원을 약속하시고 이를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은 당신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해 주신다. 삼위일체론은 성서 안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신앙 고백을 다루는 신학적인 해석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고 이루어진 궁극적인 진리와 실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37)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 본질, 한 실체임을 강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계시의 현실이 곧 신적인 본질과 동일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38) 삼위일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사건 가운데 밝혀지는 신앙의 새로운 현실을 알려 주는 언어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예수라는 인간의 구체적인 실재 가운데 인간과 스스로 연관적이게 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의 언어임을 의미한다.39)

인간의 인간성은 결코 그 자체로 그 존재의 근거와 목적을 갖지 못하며 철저히 하나님의 신성을 통해서 새롭게 근거와 참된 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인간성은 비록 창조의 사건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관 속에서 이미 긍정되고 우리에게 수여되었다고 할지라도 또 한 번 육신이 된 똑같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본래적인 의미와 완성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죄로 어두워지고 파괴된 상태에 있는 인간의 인간성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자유로운 사랑과 은총 가운데 그분의 신성에 용납되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으로서 결정적으로 그분이 계시하고 정한 바 새로운 실재 가운데 알려지고 개방된다.40)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이름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자기전달이다.41) 삼위일체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가운데 드러낸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알려진 하나님 자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유의 완전성과 전체성(totus Dei 가 아닌 totum Dei)을 증거하는 신앙의 언어이다.42) 하나님 자신의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삼위일체는 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궁극적인 자기전달이다.43)

하나님의 육성으로서의 4복음서4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간이시다. 하나님 자신의 궁극적인 자기전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말씀을 기록한 것이 4복음서이다. 따라서 4복음서는 신의 말씀, 곧 하나님의 육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성육신이시다. 비록 부족한 제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육성과 그 흔적은 4복음서에만 있다. 따라서 4복음서는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유일하신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 4복음서를 구약이나 신약중의 하나의 성경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바꾸어, 모든 말씀의 최종, 최고 권위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에 한정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한다. 바울은 십자가 대속으로 오는 은혜를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을 복음이라 하였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만을 복음이라 하였다.

바울을 중심한 초기교회에서는 주후 33년 이후부터 70년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말씀된 복음이 교인들에게는 전혀 들려지지 않다시피 하였다. 신약성서 가운데 복음서가 맨 앞에 등장하지만 가장 먼저 저작되고 교회에 유포·회람된 책은 바울 서신이다. 신약성서 27권 중 바울 서신이 기록된 시기는 48년부터 58년 사이로 성서비평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마가복음이 60∼70년경, 마태복음70∼80년경, 누가복음 과 사도행전 80∼90년경, 그리고 요한복음이 90∼100년경에 쓰였다. 따라서 바울 서신은 복음서보다 앞선 교회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주로 이방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들 사이에 회람된 바울서신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강조하는 선교 신학이다. 이는 믿지 않는 자들을 교회에 입문시키는 기초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바울이 정립한 바울의 복음이나 바울의 사상이나 신학이나 바울의 신앙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처럼 동일시되었다.

이런 구약적 회귀와 바울적 복고와 영지적 역행의 혼란 속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대단한 용기와 각오와 수고로 바울이 말하는 복음과는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한 복음서를 내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별되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바울처럼 유추하거나 스스로 정리한 것이 거의 없이 사실적이며 역사적인 복음을 중시하였다.45)

하나님이 바로 성육신 하시어 친히 말씀하시며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와 생명의 복음이 온 인류와 모든 만물을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유일한 구원의 원리와 법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없이도 되는 기독교와 교회는 어불성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영원무궁하시고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인류의 마지막 구원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46)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일시하면서, 교리와 신조와 신경으로 애를 썼으나 무리와 억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역사성과 사실성에 대한 책임이 없다. 말하는 자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이런 것을 복음 과 구분치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달리 추가를 하거나 수정을 하거나 보완을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말씀, 곧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구약과 바울의 가르침과 혼합될 수 없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복음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다. 때문에 구약과 바울의 기초하에서 2천 년간 지탱되어 온 기독교를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새 기초를 놓아 새집을 지어야 한다.47)

신앙을 위한 예수에 대한 복음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적으로 말씀되어진 대로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이나 공상이나 유령이나 영상으로 말하여도 무방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복음서가 나온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 망각되고 제외되고 실종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되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 역사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48)

예수가 구약의 왜곡을 걷어내기 위해서 오셨듯 이제는 복음서가 바울을 걷어내야 한다. 바울은 복음서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교회와 서신서 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만들고 형성하였다. 그래서 복음이 높이 올려진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기독교 종교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구약과 바울로 가려지고 덮혀지고 묻혀져서 보이지도 않게 되고 들리지도 않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의 복음이 이제는 기력을 완전히 잃었다. 가감할 수 없는 복음만이 교회와 기독교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주신 인류 구원의 참 길과 진리와 생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나머지는 예비요, 준비며 서론일 뿐이며 부수적일 뿐이다. 그러니까 “오직 성서” 안에 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근원의 복음이다.49)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길이라는 말은 곧 도를 말한다. 도는 진리와 생명의 도를 말한다. 도는 이치(理致)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는 어떤 제한적인 전제가 전혀 없는 우주 만물의 객관성을 말씀하신 것이고, 인류가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도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객관적인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지 주관적인 교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도에는 자기 욕심이나 사심이나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나, 지위고하, 성공실패, 전쟁, 대적, 승리 같은 것이 없다.50)

유대교나 로마교나 기독교는 그런 도에 이르지 못하였다. 진리를 알기 원하기보다 자기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다해서 빌고 바라고 바치며 안간힘을 쓰며 혈기를 부리며 집단적인 행패를 부리고 폭력을 불사한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죽거나 없어지거나 줄어들거나 실패하거나 죄를 지으면 안 되는 것과 상관없이 더 강하여야 하고 언제나 이겨야 하며 전능하신 신과 함께 사는 신앙인들을 말한다. 아플 때는 낫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다가 죽음이 오면 죽지 않기를 바라서 기도하고 애쓰며 정한 이치로 돌아가는 순리와 정도를 역행한다.51)

구속신학은 인간들의 최대 염치없는 사리사욕이며 이기심이다. 자기가 자기의 죄 값을 떳떳이 치루지 못하는 비열한 인간들이며, 죄 없는 짐승을 잡아서 신에게 바치는 것은 짐승의 원한을 살 일이며 하나님을 물질로 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음으로 주홍같이 붉은 죄일지라도 사하심을 받아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자기가 이제는 의인이 되었다는 대속론은 참으로 뻔뻔한 인간들의 망연자실이다. 도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도에 이르고 도에 거하기를 바라시는 그 이상이 없는 것을 모른다.52)

“독생자”라 믿는 믿음이 중요한 이유

복음은 하나님의 최후 계시이며 말씀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브리서1:1-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그의 다른 아들을 결코 주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일을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끝내셨다(요한복음19:30).

복음은 “아들에 관한 말들(words about the Son)”이 아니라, 
“그 아들의 말씀(Word of the Son)”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모세와 토라는 유대교를 위한 기초이다. 
교황과 법규집은 로마 카톨릭의 기초이다. 
바울의 신학은 개신교의 기초이다. 
코란과 모하메드는 이슬람의 기초이다. 
더하여, 포스트모던 신학의 기초는 좋게 들리는 모든 것을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뿐이다.

복음은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신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신학, 교회신학, 성서신학들은 너무나 많은 이론들과 교리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고 꾸미고 수정하였다.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율법과 교리와 신조와 신학들로 교회 밖에서보다 교회 안에서 가려졌고 매장되었고 무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고 이서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길과 생명과 진리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사도들과 사도 적 교부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수립하고 체계화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을 만한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그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복음은 다른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교부들이나 목사들이나 종교개혁자의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다. 바울의 서신도, 사도 신조도, 초기교회의 교리도, 로마 캐톨릭의 규범집도, 어떠한 개신교 신학들의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들과 덕인들 간에, 원수와 친구들 간에, 신자와 비신자간에, 세리와 매춘부들, 살인자와 강간범들 간에, 가난한 자와 부자들 간에 어떠한 구별도 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복음을 듣고 깨닫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예수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믿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그렇게 믿지 않은 기독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육성이다. 이 육성의 복음은 바울 이전에 이미 가르쳐진 복음이다. 바울과 상관없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다. 대속과 상관없는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복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육성인 4복음서가 바울 복음 앞에 숨을 쉬지 못했다. 대속론을 대표로 하는 바울신학이 구약과 4복음서 해석의 중심 원리가 되어 버렸다. 모든 성경이 바울의 대속론을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4복음서가 하나님의 본질 메시지인데도 바울신학을 위한 부교재(副敎材)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상관없는 바울의 가르침이 기독교를 점령해 버렸고 정통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이 바울 기독교가 바로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방해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건설적인 모든 가치를 왜곡시켰다.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원리를 왜곡시켰다. 억지 종교 교리만 남아 있는 기독교를 만들고, 해독을 뿜어내는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때문에 시대를 위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하나님의 친 육성을 바울 신학과 분리하여야 하며, 더 나아가 4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바울의 신학과 상관없이 오직 4복음서의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래 복음을 발견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그냥 신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친부인 것을, 모든 인간들은 신의 피조물로서 신의 도구가 아니라, 친부 창조주의 친 자녀들이며, 형상이며 생명의 존재들이어서 창조주의 가능성을 그 영에 가지고 있는 존재들인 것을, 그래서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임을, 용서는 대속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결국 죄사함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 되는 것을, 그리고 내세 천국 구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창조 목적을 위하여 인간들 간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여 원수까지 한 형제와 가족으로 사랑하여 아버지의 가정을 이룩하는 사랑의 나라인 것을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였다.

바울이 말한 대속 구원은 전혀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이 아니다. 내세 천국 구원의 유일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유일하다고 믿고 가르치기 때문에 모든 오해들이 발생하였다. 종교적이며 신학적인 문제가 발생하였고,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 공생에 문제를 발생시켰다. 내세 천국은 현재 인간들이 사는 삶에서 단지 육체만을 벗는 의미의 삶이다. 육체 없는 삶이 죽은 후의 삶이고 내세의 삶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천국을 살 수 없는 실력이면 내세 천국에서도 천국다운 천국을 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천국 가는 오직 유일한 대속의 제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친히 말씀하신 신의 육성으로서의 유일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신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는 절대 권위의 말씀으로서의 유일성이다. 누구도 절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개, 변조 시킬 수 없다. 친부, 친자, 인간의 본 생명, 인간에 대한 아버지의 희망, 아버지의 방식대로 원수까지 서로 사랑하며, 결국 아버지와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절대로 인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창조주 신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다.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어야 하며, 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지 않으면,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을 수 없으며, 그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는 것은 진실로 믿음이 필요하다. 다른 모든 가르침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문제이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으며,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말씀하신다는 자기 증거를 살펴보자.

우선 그는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한다. 그는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으며54) 그는 오셔서 진리를 말씀하셨다.55) 그래서 요한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한다.56)

진리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는데, 그것은 아버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57) 그는 아버지를 아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 때 우리는 우리가 영생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때문에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이 100%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신다.58)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영생을 가지는 방법이라고 하신다.59)

이 진리는 처음부터 아버지 그 자신의 말씀이셨다. 그 말씀은 100% 그분 자신이셨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60) 말씀이 인간의 육체로 변형되셨다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위하여 한 육체를 준비하시고 그 육체 안에 직접 오심으로 그 육체를 말씀의 완전한 표현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 말씀 안에는 완전한 아버지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있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경륜과 지식이 완전하게 들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개역한글, 요한복음1:14)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하신 바로 그 말씀이셨고, 그 말씀을 알면 영생을 가지게 되는 말씀이셨다.61) 그 말씀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자체이다. 그는 그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전혀 없으시다.62) 그는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것만을 말씀하신다.63)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이르신 것만을 말씀하신다.64)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이 인치신 말씀이다.65) 그분의 말씀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66)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이 그의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분의 것이라고 하신다.67)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어 하시는 말씀 그 자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은 육체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하나님의 친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이다. 모든 성경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최고 최종 권위를 가진다.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여야 한다.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분이 “아버지”를 말씀하신다. 왜 그분이 “아버지”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생, 그리고 신의 삶을 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지 않는 증거

어떤 책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가? 로마서인가? 아니면 레위기인가? 만약에 이같이 4복음서, 특별히 요한복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의 친(親) 말씀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성경이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히 하신 말씀이 첫 번째로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아가도스 & 칼로스



아가도스 & 칼로스


ἀγαθός, ἡ, όν 스트롱번호18
1.

선한

2.

적합한

3.

완전한

발음 [ agathŏs ]
  • 1.
    [기본형] 선한, 착한, 좋은.
    • a.
      [외적인 의미에서] 적합한, 유능한, 유용한, 마25:21, 23, 눅19:17, 23:50, 행11:24, 엡4:29, 딛2:5, 벧전3:10.
    • b.
      [내적 가치, 특히 도덕적 가치로서] 완전한, 마19:17, 막10:18. 선한, 친절한, 마20:15, 벧전2:18.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 선(마 5:45, 롬 2:7), 물건(눅 12:18,19), 선행(행 9:36), 양심(행 23:1). 
    [형] 선한(마 12:34, 19:16, 눅 6:45, 골 1:10), 좋은(마 7:11, 눅 1:53, 요 7:12), 착한(마 25:21, 고후 9:8).

καλός, ἡ, όν 스트롱번호2570
1.

아름다운

2.

좋은 유용한.

3.

흠이 없는

발음 [ kalŏs ]
어원
불확실한 유사어에서 유래
  • 1.
    아름다운, 눅21:5.
  • 2.
    좋은 유용한.
    • a.
      흠이 없는, 좋은, 귀한, 마13:48, 12:33, 눅6:43.
    • b.
      도덕적으로 선한, 고상한, 칭찬할 만한, 마5:16, 막14:6, 요10:32, 딤전5:10, 히10:24.
    • c.
      흠잡을 것 없는, 훌륭한, 눅6:38, 요10:11,14, 딤전6:19, 딤후1:14, 2:3, 히6:5, 약2:7, 벧전4:10.
  • 3.
    [ἐστιν과 결합될 경우] ~은 좋은.
    • a.
      기분 좋다, 바람직하다, 유익하다, 마17:4, 18:8,9, 막9:5, 눅9:33, 고전7:26.
    • b.
      [도덕적으로] 선하다, 고후8:21, 히13:9.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 좋은(마 3:10, 막 4:8, 요 2:10), 아름다운(마 7:19), 착한(마 5:16), 마땅한(마 15:26), 나은 (마 18:8,9, 막 9:45), 
    선한(요 10:11, 고후 8:21, 딤전 1:8), 옳은(고전 5:6), 잘하는(딤전 3:13), 유익을 얻는(히 13:9).



 '착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헬라어로 '아가도스'와 '칼로스'이다.
이들은 혼용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칼로스'라는 단어가 훨씬 폭 넓고 깊은 '선'을 가리킬때 자주 사용 된다.

 칼로스는 선과 악에서의 '선"이다.
나는 선한(칼로스: 가치있는)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빌 1:6) 너희 속에 착한(아가또스)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니

성도의 착한 일, 성도의 착한 행실은 세상의 선악기준에 의한 착한 일이라기보다 예수님의 착한 행실,혹은 예수님의 착한 행실을 바탕으로 하는 성도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착한 행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빛과 소금의 삶이다. 

 예수님의 착한 행실은 이 세상속에서 순종으로 비움으로  자기부인으로 십자가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 의해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성도의 삶 속에서 자기 부인과 순종으로 지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과정 그것이 하늘나라 백성들의 세상 속 착한 행실이다. 
(행 10: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바로 이러한 예수의 착한 일이 성도에게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빛과소금의 삶, 착한 행실은 자기를 부인하고,수난의 삶을 통과하며,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착한 행실, 순종의 착한 행실,십자가의 착한 행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말이다. 

즉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태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의 삶 속에서 가입을 하여 세상은 도처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인내와 수고와 섬김과 순종의 삶이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게 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세상에 증거 된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는 삶,그 삶이 바로 착한 행실이고 빛과소금의 삶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든 피조물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그보다 더 특별한 목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선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로 "선하다" 단어는 "칼로스(καλός)"와 아가도스(άγαθός)"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칼로스"는 일반적으로 착하고 가치 있는 일을 말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가도스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표현하는 단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때 비로소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창조주가 계시고 그 창조주의 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완벽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주목받고 인정받고 축복받고 천국에서 면류관을 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묵상하며 아가도스의 선을 실천하여 주님께서 주목하시고 축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감동


07-13-2025(주일)
암송성구 #. 59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역대상 12:18
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찌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 장관을 삼았더라.

- 하나님이 도우신다.

역대하 18:31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 적군을 떠나가게 하신다.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하나님께 말을 받아 말을 한다.

사무엘상 10:26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 유력한 사람들이 협력한다.

역대하 30:12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게 한다.

* 역대하 24:20 /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창세기 41: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 충성된 일군이 된다.

사무엘상 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 거룩한 분노를 일으킨다
 


πνευματικῶς 스트롱번호 4153

1. 영적으로.   2. 성령의 감동으로.  3. 고전 2:14
발음 [ pnĕumatikōs ]
어원  /  4152에서 유래
  • 1.  영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고전2:14, 계11:8.
  • 관련 성경  /  영적으로(고전 2:14, 계 11:8).

πνευματικός, ἡ, όν 스트롱번호4152
1.

영에 관한

2.

영으로 말미암은

3.

㉠ 고전15:46

발음 [ pnĕumati-kŏs ]
어원
4151에서 유래
  • I.
    영에 관한, 영적.
    • 1.
      영으로 말미암은, 성령이 가득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령에 관한, 성령에 부합한.
      • a.
        [형용사] ㉠ [예수에 대하여] 고전15:46. ㉡ [비인격적 존재에 대해서] 롬7:14, 엡1:3, 골3:16.
      • b.
        [명사적으로] 롬15:27, 고전9:11. ㉠ 영적 선물, 은사, 고전12:1, 14:1, 고전15:46. ㉡ 성령을 가진 사람, 고전14:37. ㉢ 성령 충만한 사람, 고전3:1, 갈6:1.
    • 2.
      영에 속한, 악의 영적 세력, 엡6:12.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신령한(롬1:11, 벧전2:5), 영적인(고전2:13, 엡6:12).

ἀνασείω 383 [anasĕiō]
  • 뒤흔들다, 감동 시키다, 선동하다, 막15:11, 눅23:5. [주] 4대격과 함께 쓰임.


πνευματικῶς 4153 [pnĕumatikōs]
  • 영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고전2:14, 계11:8.


θεόπνευστος, ον 2315 [thĕŏpnĕus- tŏs]
  •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딤후3:16.


  • 1.

    영으로 말미암은, 성령이 가득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령에 관한, 성령에 부합한.

  • 2.

    영에 관한, 영적.

  • 3.

    [형용사] ㉠ [예수에 대하여] 고전15:46. ㉡ [비인격적 존재에 대해서] 롬7:14, 엡1:3, 골3:16.


φέρω 5342 [phĕrō]
  • 1.

    [비유적] 이끌리다, 감동을 받다, 벧후1:21.

  • 2.

    지다, 운반하다.

  • 3.

    [문자적으로] 눅23:26.















생명(ζωή, ψυχή, βίος)(루아흐, 하이, 네페쉬)



● ‘루아흐’<רוח> : 문자적 의미 - 바람, 숨, 입김 등

관념적 의미 – 생명, 영, 영혼, 혼, 마음, 정신 등

‘루아흐 하이임’<רוח חיים> : 살아 있는 숨, 살아 있는 영(생령) 등

참고: ‘프뉴마 조에스’<πνεῦμα ζωῆς> : 생명의 영. 히브리 성서 창세기 6: 17에 대한 고대 헬라어 성서(70인역) 번역

‘루하흐 페’<רוח פה> : 입김

‘루아흐 엘로힘’<רוח אלהים> : 하나님의 영

‘루아흐 예흐바’<רוח יהוה>: 야훼의 영

‘루아흐 하코데쉬’<רוח הקדש> : 거룩한 영(성령)

‘루아흐 얌’<רוח ים> : 바닷바람 또는 서풍

‘루아흐 미드바르’<רוח מדבר> : 사막 바람

● ‘하이’<חי> : 산, 생명, 삶, 살아있는, 생명 있는 등

‘하이임’<חיים 복수> : 살아있 는, 생명 있는 등

“하야”<חיה 동사>: 살아 있다

‘엘로임 하이’<אלהימ חי> : 살아계신 하나님

‘하이 예흐바’<חי־יהוה> : 야훼께서 살아 계신다.

‘하이 아니’<חי־אני> : 나의 삶 또는 나의 생명

‘오르 하이임’<אור חיים> : 생명의 빛 또는 삶의 빛

‘하예 올람’<חיי עולם> : 영원한 생명(다니엘서 12:2)

참고: 유대인 전통에서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개념이 없다. 다니엘서의 ‘영원한 생명’은 바벨론 포로 후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네페쉬’<נפש> : 목구멍, 목숨, 사람, 생명, 생명체, 호흡, 입김, 혼 등등 동사로는 ‘숨을 쉬다’

‘네페쉬 하야’<נפש חיה> : 산 생명, 생명체

‘마레 네페쉬’<מרי נפש> : 분노한 사람들

‘나솨마’<נשמה> : 숨, 생명, 사람, 정신, 혼, 영혼 등

‘네체흐’<נצח> : 광채, 영광, 영예, 항상, 존속, 지속, 영원, 무궁 등

‘올람’<עולם> : 옛날, 영원 등

‘예메 올람’<ימי עולם> : 옛날 옛적

‘암 올람’<עמ עולם> : 고대 민족

‘셈 올람’<שם עולם> : 영원한 이름

‘아하바트 올람’<אהבת עול> : 영원한 사랑

‘아드 하올람’<עד־העולם> : 영원토록

‘도르’<דור> : 세대, 일생

‘도르 바도르’<דר ודר> : 대대로, 세세토록, 영원히

신약성서의 생명, 영, 영혼, 영원한 생명에 관련한 용어들

‘프뉴마’<πνεῦμα>: 문자적 의미 - 바람, 숨, 입김 등

관념적 의미 – 생명, 영, 영혼, 혼, 마음, 정신 등

‘프뉴마 조에스’<πνεῦμα ζωῆς> : 생명의 영

‘퓨뉴마토스 하기우’<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 거룩한 영, 성령

‘조에’<ζωή> : 생명, 살아 있는

‘프쉬케 조에’<ψυχὴ ζωής>: 살아있는 것들, 생명체, 생물

‘조엔 아이오니온’<ζωὴν αἰώνιον> : 영원한 생명

‘프쉬케’<ψυχή> : 숨, 목구멍(목숨), 생명, 사람, 마음, 영혼, 혼

‘사륵크스<σάρξ> : 살, 육체, 몸, 인간

‘파라크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 중보자(仲保者) - 하나님과 사람사이에서 화해를

시키는 이(예수그리도), 대언자 또는 위로자. 이 용어는 요한복음에만 나타나 있음 – 그래서 일부 신흥종교집단이 교주 신격화에 이 용어를 이용하고 있음.

* 보혜사(保惠師) - 공동번역성서는 ‘협조자’, 가톨릭성서는 ‘보호자’, 외국성서들에서는 ‘위로자’, ‘상담자’, ‘돕는 자’ 등 여러 가지로 번역하고 있음.

* 요한복음은 ‘파라크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에 대하여 ‘토 프뉴마 테스 알레테이아스’<τὸ πνεῦμα τῆς ἀληθείας - 진리의 영>이라고 설명한다. 이로써 ‘파라크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는 어떤 특정하고 특별한 영이 아니라, 성령의 여러 가지 역할 중 하나를 드러내는 용어이다.

* 이와 관련하여 ‘파라크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는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 = παρά전치사-곁으로 + καλέω부르다>라는 동사에서 유래한다. 진리의 영이 사람을 불러서 곁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설득하고 권고한다는 뜻이다. 또한 진리의 영이 사람을 곁으로 불러서 함께 하나님께 간청하고 탄원하고 요청한다는 뜻이다.

참고: 일부 신흥종교집단이 이단 이든 삼단이든 관계없이 성서를 왜곡하고 그를 통하여 교주를 신격화하는 무지와 맹신을 염려한다. 혹시라도 주변에 그런 사람들을 이해시키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명(ζωή, ψυχή, βίος)

신약성서에는 "생명"으로 번역할 수 있는 헬라어가 셋 나온다.
프쉬케(ψυχή), 비오스(βίος), 조에(ζωή)가 그 셋이다. 
이 셋은 넓게 말해서 "생명"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하나하나는 각각의 독특한 뜻을 지니고 있다. 프쉬케는 생물학적 목숨이다.
의학적으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육체적 목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고, 몸을 감싸려고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마6:25)라고 말씀하시거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10:11),
"나는 양들을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린다"(요10:15)라고 말씀하셨을 때,
"목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프쉬케이다. 비오스는 영어 바이오(bio)의 기원이 된 헬라어이다.
그러나 영어에서 바이오가 "생물" "생명" "생리"라는 뜻으로 사용되는 것과는 달리
헬라어 비오스는 생명이라기보다는 "생활"이나 "살림"에 가깝다.
요한1서는 우리가 조심해야 할 유혹으로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꼽는다.
여기서 "이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새번역은 "세상 살림"으로 번역하여 이해를 돕는다.
헬라어로는 비오스이다.
살림살이 혹은 생활 수준으로 번역할 수 있다.
탕자의 요청으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나누어 준 것도 비오스다(눅15:12).
"살림"을 미리 나누어 준 것이다. 조에는 프쉬케나 비오스와는 다른 생명이다.
프쉬케와 비오스는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물학적 목숨이나 생활의 수준과 방식은 상당 부분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것이다.
그러나 조에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숨겨두신 생명이다.
씨앗과 같다.
예수께서는 이 씨앗을 피우고 열매 맺어 풍성하게 사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더 넘치게 얻게 하려고 왔다.(요10:10) 예수께서는 생명의 빵으로 우리에게 오셨다(요6:35).
ὁ ἄρτος τῆς ζωῆς!(호 아르토스 테스 조에스).
생명을 살리는 빵, 생명을 풍성하게 하는 빵으로 오셨다는 말씀이다.
조에 생명은 예수를 만날 때 살아나 역동 친다.
이 생명이 있으면 비오스가 어려운 형편이라 할지라도 능히 이겨낼 수 있다.
그것이 조에의 힘이다.
이것이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전하는 바이다.
아래 성경말씀 7절의 "보물"을 "생명"(조에)로 바꾸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4:7-10
우리는 이 보물을(생명. 조에)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우리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도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비오스 수준의 신앙생활이 있다.
기복신앙을 제외하고라도, 삶의 질을 높여주려는 일체의 계몽적 신앙 프로그램이 비오스를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 교실, 부부학교, 자녀교육교실 등등 말이다.
그러나, 요한복음이 전하는 신앙의 본질은 비오스에 있지 않고 조에에 있다.
조에를 살리고 풍성케 하는 신앙생활 어떤 모습일까 묵상해 봅시다.








ζωή, ῆς, ἡ  스트롱번호 2222

1. 생명.  2. θάνατος.  3. ἐν τῇ ζωῇ σου : 네가 살아있는 동안
발음 [ zōē ]
어원  / 2198에서 유래
  • I.  생명.
  • II.  [육체적 생명에 대하여]
    • 1. [반] θάνατος, 롬8:38, 고전3:22, 빌1:20, [때]
      • a. ἐν τῇ ζωῇ σου: 네가 살아있는 동안, 눅16:25, 행8:33, 약4:14.
      • b. ἐν τῇ ζ. ταύτῃ: 이생에, 고전15:19.
      • c. τέλος ζωῆς: 생의 마지막, 히7:3.
      • d. ζωὴ κ. πνοή: 생명과 숨, 행17:25.
      • e. πνεῦμα ζωῆς: 생기, 계11:11.
      • f. ψυχὴ ζωῆς; 살아있는 것, 계16:3. ㉠ [하늘의 몸으로 옷 입은 사람에 대하여] 고후5:4.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관하여] 롬5:10, 고후4:10.
    • 2. 생의 도구, 생계.
  • III.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한 초자연적인 생명에 대하여]
    • 1. 하나님과 그리스도.
      • a.  하나님에 대하여] 요5:26, 12:50, 요일5:20.
      • b. [그리스도에 대하여] 요1:4, 5:26, 행3:15등, 요일5:11.
    • 2.
      • a.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서 얻은㉠ ἐν καινότητι ζωῆς περιπατεῖν: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한다, 롬6:4. ㉡ ἀπηλλοτριωμένοι τ. ζωῆς τ. θεοῦ: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있다, 엡4:18. ㉢ ἡ ζωὴ τ. ἀνθρώπων [사랑의 생명, 구원과 영광의 생명에 대하여] 요6:68, 행5:20, 고후4:12, 빌2:16, 딤후1:1,10등.
      • b. [종말의 축복된 시기에 있을 생명에 대하여] ㉠ ἐν τῷ αἰῶνι τῷ ἐρχομένῳ ζ. αἰ: 내세에서의 영생, 마19:29등, 막10:30, 눅18:30. ㉡ ζ. ἐκ νεκρῶν: 죽은 상태로부터 벗 어난 사람의 생명, 롬11:15, 갈6:8, 딤전1:16등.
  • 관련 성경
    생명(마7:14), 이 세상의 삶(고전15:19), 생 기(계11:11).


ψυχή, ῆς, ἡ 스트롱번호 5590

1. 영혼.  2. 생명력.  3. 혼
발음 [ psüchē ]
어원 / 5594에서 유래
  • I.  영혼, 목숨, 생명:
    • 1.  [문자적으로]
      • a. [땅에서의 외면적이거나 육체적인 생에 대해서] 목숨, 생명력, 흙, 눅 12:20, 행2:27, 20:10, 계6:9, 20:4. [주] 세상의 목숨, 지상의 목숨, 마2:20, 막10:45, 빌2:30, 계12:11.
      • b. [사람의 내적 생활의 중심으로서의] 영혼, 혼, 마26:38, 막14:34, 눅12:19, 요12:27, 계18:14.
      • c. [지상의 생을 초월한 생의 중심이 되는] 영, 영혼, 마16:26, 막8:37, 고후1:23, 12:15, 약1:21, 벧전1:9.
    • 2. [환유적으로] 목숨을 가진 것, 생물, 생명체, 고전15:45, 계16:3.
  • 관련 성경
    목숨(마2:20, 막8:35, 롬11:3), 영혼(마10: 28, 눅12:20, 고후12:15), 마음(마11:29, 막14: 34, 행14:22), 생명(막3:4, 요12:25, 행20:10), 힘(막12:33), 뜻(행4:32), 인(행27:37), 영(고전15:45), 혼(살전5:23, 히4:12), 명(벧전3:20), 심령(벧후2:8), 사람(행7:14, 롬

βίος, ου, ὁ   

1. 생명.   2. 지상의 생활. 3. 삶의 유지 수단
발음 [ biŏs ]
  • 1. [기본형]: 생명, 삶.
    • a. [기능과 기간에 있어서] 지상의 생활, 눅8:14, 딤전2:2, 벧전4:3.
    • b. 삶의 유지 수단, 생활방편, 재산, 막12:44, 눅8:43, 15:12,30, 21:4, 요일2:16, 3:17.
  • 관련 성경
    생활비(막12:44, 눅21:4), 이생(눅8:14, 요일2:16), 생활(눅8:43, 딤전2:2, 벧전4:3), 살림(눅15:12,30), 재물(요일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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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life, 生命)이란 단어가 한국어, 영어, 일어로는 모두 하나의 글자로 쓰지만

헬라어로는 그 대상에 따라

*조에 ZOE : 하나님의 생명

*푸쉬케 PSYCHE : 혼의 생명, 사람이나 동물이 가진 생명

*비오스 BIOS : 육의 생명, 식물의 생명

조에 ZOE(ζωή) - 하나님의 생명

푸쉬케 PSYCHE (ψυχή) - 혼의 생명, 사람이나 동물이 가진 생명

비오스 BIOS (βίος) - 육의 생명, 식물의 생명



생명(조에)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명사 조에(Homer 이래)는 '생명(life)'을 의미한다.

(a) 조에는 헬라에서 유기적 존재들, 동물, 사람, 식물의 물리적 생명력을 의미한다. 생명은 물건이 아니라 모든 살아있는 피조물을 특징 지우는 생명성(vitality)이다.
그러므로 헬라인들에 있어서 생명은 자연과학의 범주에 속하며 기계적인 활동과 구별되는 자아 활동의 힘으로 특징 지워진다(플라톤, Leg. 10, 895c ff; phaedr. 245c ff; 아리스토텔레스 An. 2, 2p 422b, 16f.; p413a, 22ff.). 생명의 원인(the cause of life)은 프쉬케(yuchv, 5590: 영혼 Soul)에 있다고 간주한다.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Diogenes of Apollonia)는 프쉬케를 하나의 대기 같은 실체(an ethereal substance:아에르, ajhvr, 109)로 생각한 반면에 크세노파네스(Xenophanes)는 프쉬케를 약동하는 호흡(a fluttering breath: 프뉴마, pneu'ma, 4151)으로 생각하였다(H. Diels, Die Fragmente der Vorsokratiker, Ⅰ, 425, 42). 헬라어 사고에서 프쉬케(yuchv, 5590)와 조에(zwhv, 2222)가 매우 밀접하게 함께 속한 것과 똑같이 프쉬케(yuchv, 5590)와 소마(sw'ma, 4983: 몸, Body)도 그러하다(Plato, phaerd. 105c ff; Aristotle, An. 2, Ⅰ p412b, 7 ff.). 자연적 생명은 영혼과 육체라는 성분들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각 개개인뿐만 아니라 전 우주까지도 살아있는 유기체(조온 엠프쉬콘, 플라톤, Tim. 30b) 또는 영혼을 갖고 있는 세계(코스모스 엠프쉬코스)로 생각되었다. 신들까지도 인간의 육체와 영혼에 유사한 두 부분으로 된 본성을 갖고 있는 생물(조아)로 상상되었다(아리스토텔레스, Metaph. 11, 7p 1072b, 28ff.). 따라서 플라톤은 드네타(thn?ta, 죽을 운명의 mortal 곧, 인간)인 생물과 아다나타(athanata: 불멸의 immortal 즉 신들 gods)사이를 구별한다(Tim. 38c ff.).

헬라인들은 세 번째의 성분, 곧 이성 Reason, 정신 mind, 이해력 understanding(nou'", 3563)이 인간의 생명을 특징 지우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소마(sw'ma, 4983)와 또한 다소간 프쉬케(yuchv, 5590)가 자연적 생명을 구성하는 반면 누스(nou'", 3563)는 외부로부터 인간 생명으로 들어가 이 생명을 자연적 생명, 즉 동물의 생명 이상으로 향상시키고 여러 가지 양자택일을 할 수 있는 하나의 존재의 유형을 생산해내는 신적 요소인 것이다.

(b) 만약 신의 조에가 누스와 관련되어 있다면, 이것은 조에가 자연의 생명력을 포함하면서동시에 초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최고 가능성은 또한 누스이며, 누스는 육체와 분리될 수는 없지만, 육체와 구별함으로써만이 그 목적을 성취할수 있다. 따라서, 참된 인간의 조에는 사람이 그것을 통해 몸과 혼을 결합함으로 조온이 되는 조에가 아니다. 프쉬케는 물질에 있어서 생명력의 원리이지만, 이것은 또한 물질과 대조되는 것인 인간의 자아(selfhood)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와마찬가지로 조에는 자연의 현상으로서의 생명이지만 또한 특별히 인간의 생명이기도 하다. 이 인간의 생명의 가능성은 유기적인 본질에서 성취되지 않으며 이것은 종(species)의 영속화를 넘어선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생명은 그 자체의 운명을 가지며, 행복과 불행을 알고, 그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은 그것에 고유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c) 스토아학파에 있어서 카타 휘신 젠(자연에 따라 살다)이라는 표어는 큰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 구절은 본능적인 삶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결한(카타아레텐) 생활, 또는 이성에 따라(카타 로곤) 사는 생활,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죽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실존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게 하는 생활을 암시하는 것이다(유 젠: 잘 살다 to live well; 참조: Epictetus, Dissertationes, 1, 9, 19:2, 9, 7 f.; 3, 1, 25f.; 4, 11, 3). 비오스 카타 퓌신(자연을 따르는 생활)이라는 구절도 이와 같은 의미로 발견된다. 고대의 헬라인들이 자신들의 이상을 폴리스의 공적 업무에의 능동적인 참여로 보았던 반면에 헬레니즘 시대에 있어서 스토아학파는 세상의 외적인 소란으로부터의 완전한 도피와 자신의 내적 생활의 수양을 이상으로 삼았다.

(d) 스토아학파가 외적 생명과 내적 생명 사이를 구별함에 반하여 신플라톤주의는 이 세상의 생명과 내세의 생명 사이를 구별 지었다. 플로티누스(Plotinus)에 따르면 사람이 참으로 자연적인 생명을 소유하기는 했으나 완전하고(텔레이아), 참된(알레디네) 생명은 오직 유일자(the One; 헨[hen])의 유일한 신적 영역에서만 발견되어지는 것이다. 이 참된 생명으로 가는 길은 육체의 극기와 모든 세상적인 것들로부터 깨끗게 되는 정화(카다르시스[katharsis])를 거쳐 통찰 또는 직관(데아[thea])의 순간에 도달하며, 이는 곧 인간이 참 생명을 얻고 그것과 일체가 될 때인 것이다(참조: Plotinus, Enneads 1, 4, 3; 6, 7, 31 등). 다른 말로 이야기해서 생명은 위로 올라가는 상승(上昇)으로 간주되었다..

(e) 대조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은 생명을 하강으로 보았다. 종종 포스(fw'", 5457: 빛 light)와 연관되는 조에(예를 들어 Corp. Herm. 1, 12)는 본질적으로 신적인 것이며 신적 세계의 유형(有形)의 유동체이며 분명히 물질적 완전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파괴할 수 없는 것이며 생명을 주는 능력을 소유한 것, 곧 한마디로 말해서 불멸체(아다나시아: ajqanasiva, 110; Corp. Herm. 1, 28)인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이러한 순수 신적 생명은 물질과 혼합되어 육체 안에 갇혀 있다. 이 생명은 그 완전함으로 나타나지 않고 단지 생명의 작고 흩어지는 불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사람은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무아경의 환상(그노시스; →gnw'si", 1108, 지식 Knowledge)을 향유하기 위하여, 즉 생명의 내적 불꽃과 신적 세계의 초자연적 생명 사이에 존재하는 조화에 도달하기 위하여 육체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Corp. Herm. 1, 6). 이 참 생명은 이 땅에서는 무아경 ecstasy의 순간에서만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참 생명의 완전한 향유는 미래를 위하여예비되어야 하는 것이니 곧 현재 물질 속에 흩어져 있는 생명과 빛의 모든 입자들이 신적 세계에서 재결합하는 때이다(Corp. Herm. 12, 15:14, 10 등등).
그리하여 헬라 철학사에서 이 사상의 영역 내에는 두 가지 경향이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첫째는 참 생명이 점진적으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건들과 분리되어 초자연적인 신적 세계로 옮겨간다는 것이며 둘째로 생명은 점점 실체적인, 즉 "과학적인" scientific 어떤 것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인간의 참 생명은 역사적 사건들의 연속에서보다는 오히려 역사 history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무아경의 환상의 순간들에 그 자체를 나타낸다.

2. 70인역본의 용법

조에는 70인역본에서 약 260회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하이('살아있는' 것)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조에는 무엇보다도 생명의 길이나 질병, 죽음과 구별되는 생명력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때리시고 치료하시는 생명과 역사의 주인이시다. 후에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다(참조: 마카베오사서 18:18). 고대의 비문들은 지상의 생명에 대해언급을 한다.

(a)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인들은 생명을 자연적이고 생생한 것이며, 이 세상에 속한 어떤 것으로 간주하였다. 생명을 육체와, 영혼과 이성으로 나누는 헬라 사고는 그들에게는 완전히 이질적인 것이었다. 히브리어에서 네페쉬(혼, 예를 들어 수 10:28, 한글개역에는 "사람"으로 번역됨), 또는 바사르(육, 예를 들어 창 6:13)가 '하임'에 대신하여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단어가 나올 때에는 분석적인 헬라 사고의예로서가 아니라 통합적인 동양적 접근의 예로서이다. 동양적 접근에서 부분은 전체를 대표하며 여기에서 인간 생명 전체가 포함되나 주어진 관점에서 관찰되는 것이다. 생명이 → 피 Blood라고 말하는 구절들에서(레 1:14, 70인 역본, 헤...프쉬케 파세스 사르코 하이마 아우투 에스틴; 참조: 레 17:11; 창 9:4; 신 12:23), 이것은 과학적인 말로보다는 고대 동양적 의식의 배경에서 이루어진 가정(assumption)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출 12장에 나오는 유월절 의식을 참조하라). 그 목적은, 인간이 좌우할 수 있는 생명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생명이란 인간이 처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은 생명을 자연적, 또는 과학적 현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주로 존속 기간, 즉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에 의해 사람에게 부여된 살아있는 날들로 생각하였다(창 25:7; 창 47:28; 신 32:39; → bios 구약성경). 장수는 순종에 대하여 약속된 신적 →(축)복 Blessing의 특별한 증거로 간주되었다(창 15:15; 창 25:8; 신 5:16; 신 30:19; 잠 3:1이하; 참조: 왕하 20:1이하.). 반면에 죽음의 권세는 질병, 증오, 또는 고독이라는 형태로 인간 생명을 침해한다(시 18:5이하; 시 33:19; 시 56:13; 시 116:8; → 죽음 Death 구약성경). 일반적으로 동양인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이스라엘인들은 초연(무관심)하고 관조적인(데오레티코스; 참조: 비오스, 고전 헬라어 문헌) 생명에 대한 헬라적 이상에 대해 생소하였다. 오히려 이스라엘인들의 이상은 능동적인 참여의 생활이었고 → 굶주림 Hunger, 목마름(예를 들어 삿 15:18이하), → 증오 Hatred와 → 사랑 Love(예를 들어 창 24:27), → 욕망 Desires과 육욕(예를 들어 삼상 1장; 삼하 13장)에 의해 표현되는 생명이었다. 일반적인 동양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도 생명의 순수한 활력과 구체성과 다양성을 가장 큰 기쁨의 원천이었다(왕상 3:11이하; 잠 3:16; 욥 2:4). 곧 생명은 건강, 복지, 성공의 동의어였다(말 2:5; 잠 2:19; 시 56:13; 전 9:9). 그러나 생명의 본질적인 특색은 성전에 출석이었다. 이곳에서 예배자들은 생명의 창조자이신 살아계신 여호와와 찬송가운데 교제 관계에 들어갔으며 또한 비록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여호와를 바라보는 특권을 때때로 받기까지 하였던 것이다(출 33:18이하; 시 27:4; 시 65:5; 시 84:5; 시 142:7; 아래의 구약성경 5를 참조). 오직 극도의 절망 중에 있을 때 견딜 수 없게 된 생명에 종말을 내려줄 죽음에 대한 생각이 있었다(욥 20:14이하; 욥 3:11이하; 토빗 3:10).

(b) 이스라엘인들이면 누구나 다 여호와께서생명의 창시자로서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렘 17:13; 시 36:9; 시 139:13이하). 야훼문서기자(Yahwist)의, 생명의 기원에 관한 고찰은, 이 문제에 대한 저자특유의 몇 가지 진술을 담고 있는데, 여기를 제외하면 구약 중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곳은 없다. 창 2:7에 의하면 여호와께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형성하시고 생명 없는 그 육체에 하나님의 숨결을 불어 넣으시자 그는 살아있는 존재(네페쉬 하이야)가 되었다. 이곳의 차이점은 70인역본의 프쉬케 조사(살아있는 혼, 한글개역 "성령")가 암시하는 바와 같은 육체와 영혼 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육체(→ 몸 Body)와 생명 사이에 있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적, 감정적, 지적 생명 전체는 하나님께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의 숨결을 회수하신다면 인간은 힘없는 흙이 되어버리는 것이다(시 104:29이하; 욥 34:14이하; 참조: G. von Rad, Old Testament Theology, Ⅰ, 1962, 149; Genesis, 19632, 71-83).
인간에게 있어서 공통적인 시련과 환난들, 곧 수고와 실패, 수치와 두려움, 해산의 고통들은 인간의 태고에 있었던 죄에 빠진 타락에 의해 기인된 것이라고 야훼문서기자는 말하고 있다(창 3장). 야훼문서기자가 신적 형벌로 생각한 바는 죽음이라기 보다는(바벨론 포로 이전에 죽음은 인간적 상황의 주어진 요소들 중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참조: 창 2:17; 창 3:19) 오히려 수명의 단축(창 6:3)이며 또한 특별하게는 생활의 여러 가지 시련인 것이다. 이것들은 모든 인간적 실존을 망쳐놓은 불화로서 생명의 최초의 조화는 깨어져 버렸던 것이다(참조: von Rad, Genesis, 83-99).

(c) 특별히 생명에 대한 이스라엘의 견해는 신명기에서 가정 명확하게 표현된다. → 언약 Covenant의 갱신을 기념하는 → 절기 Feast에서 예배의 공동체는 생사 간의 선택을 수반한 하나님의 말씀과 직면하는 것이다(신 30:1-20). 순종하는 자들은 축복과 번영과 생명을 약속 받는 반면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저주와 재난과 죽음 외에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었다(신 30:15; 신 30:19). 하나님의 말씀의 살아있는 능력은 인간의 육체적 존재에까지 이르른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신명기는 참 생명은 마술적 의식과 형식들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을 지킴으로 말미암는 것임을 가장 많이 주장하는 책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허사가 아니라 너희의 생명"(신 32:47; 참조: 레 18:5)이기 때문이다.

(d) 동일한 식으로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로 돌이킬 것을 요구한다. 곧 이것이 절박한재난으로 위협받는 이스라엘의 유일한 생존 기회임을 역설하는 것이다(암 5:4; 암 5:14). 이사야는 백성들 중에 사망과의 언약 관계에 들어간 조롱자들이 있음에 대해 애통한다(사 28:15). 예레미야는 생명의 원천을 버린 믿음 없는 이스라엘 앞에 다시 한번 생사의 길을 제시한다(렘 21:8; 렘 2:13; 렘 17:13). 에스겔은 의인은 살 것이며 불경건한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것을 계속하여 강조한다(겔 3:18이하; 겔 14:20; 겔 18:4; 겔 18:9; 겔 18:13; 겔 18:17; 겔 18:20이하; 겔 33:11; 겔 37:5). 이곳에서 자연적 생명의 은사는 → 언약 Covenant의 필수불가결의 일부분이 되며, 이 언약에 대한 순종은 번영과 축복을 뜻하는 반면 위반자는 자신의 생존권을 박탈당한다. 에스겔의 환상 기사들은 종종 '루아흐 하하이야'(70인역본, 프뉴마 조에스)라는 구절을 담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적이며 생명을 주시는 권능을 뜻하는 의역적 표현(Paraphrase)이다(겔 1:20이하; 겔 10:17; 겔 37:5; 겔 37:10).
예레미야의 두 길의 구별은 지혜문학에서 사용된다. 지혜문학에서 → 지혜(Wisdom)는 사람들을 생명의 좁은 길을따라 인도하겠다고 제의한다. 반면에 → 어리석은 Folly 자의 길은 사망에 이른다(잠 2:18이하; 잠 3:2; 잠 3:18; 잠 4:4; 잠 4:10; 잠 4:22; 잠 5:6; 잠 6:23; 잠 8:35; 잠 9:11; 잠 9:18 등).

(e) 시편에서 여호와께서는 생명을 주시고 → 죽음 Death으로부터 건지시는 분으로 묘사된다(시 16:11; 시 27:1; 시 31:4이하 등). 그러나 시간의 경과에 따라 경건한 사람들은 장수와 번영에 대한 자신들의 기대가 매일 매일의 경험에 의해 완전히 모순된다는 것을 더욱더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후기 시편들에서 생명에 대한 이 전통적 견해는 상대적인 것이 되며 참 생명은 여호와의 교제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으므로"(시 63:3). 생명은 이제 영성(spirituality)과 생명 신비주의(life-mysticism)의 관점에서 은유적으로 간주된다(G. von Rad, TheProblem of the Hexateuch and Other Essays, 1966, 258f.). 생명-신비주의는 여호와와 살아있는 교제 속에서 피난처를 구하고 만족을 찾는다(시 16:5; 시 16:9이하; 시 16:23; 시 36:8이하). 시 73편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여호와께서 가까이 계시다는 확신, 그리고 이로 말미암는 안도감은 예배자에게 죽음 저편에 대한 소망을 준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 영원한 분깃이시라"(시 73:26).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길들을 정당화할 필요성에 직면하여, 또한 여호와의 언약적 약속들에 대한 신실함을 확신할 때, 구약의 신자는 무덤 저편의 더 나은 것들에 대한 소망으로 인도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즉 생명에 대한 그의 견해는 종말론적이 되는 것이다. "마술이나 신화와는 완전히 다르게, 단지 하나님과의, 부인할 수 없는 교제에 대한 확실성에근거한 확신이 성장했다"(G. von Rad, op. cit. 264; 참조. 시 49:16; 욥 19:25이하; → 죽음 Death, art. thanatos, 구약성경 2(e)).
지금까지는 개개인의 시편 기자들에 의해 점유되었던 내생에 대한 소망이 이제 묵시 가운데는 온 민족에 의해 소유되는 미래의 부활에 대한 기대가 되었다(사 29:19; 단 12:2; 참조: SB Ⅰ, 885f.; D. S. Russell, The Method and Massage of Jewish Apocaliptic 200 B.C.-A.D. -100, 1964, 353-90).

70인역본은 종종 헬라어'조에'의 관점에서 생명에 대한 구약적 견해를 재해석한다(참조: 70인역본 신 32:39; 시 55:14[시 56:13]; 시 118[119]; 삼 16:15; 욥 19:25; 욥 33:30).
후기 유대주의는 대부분 생명에 대한 구약적 견해를 받아들였다(Meg. 27b; Tann. 20b; Ber. 55a; 참조. SB Ⅳ 267, 275, 629). 그러나 헬레니즘의 영향하에서 참 생명은 점점 영생(조에 아이오니오스), 곧 끝 없는 생명이라는 은사로 나타났다(마카베오 사서 7:19; 15:3; 16:25; 17:12; 18:19 등) 따라서 신약성경에 나오는 바와 같이 영생은 조에(유다의 유훈 25:1), 또는 '젠'(솔로몬의 시편 15:15)으로 단순하게 언급될 수 있었다. 마카베오시대 이후부터 내세에 대한 신앙 곧 → 부활 Resurrection과 영생은 유대 신학자들 중에 널리 퍼졌다(참조, SB Ⅲ 481 f.). 영지주의에 나오는 바와 같이 후기 유대주의에서도 조에는 종종 포스(빛) 및 그노시스(지식)와 관련하여 나온다(참조, 호 10:12, 70인역본).
헬레니즘 유대교에서 죽은 자의 → 부활 Resurrection에 대한 신앙은 → 영혼 Soul의 불멸성에 대한 교리로 주로 대체되었다(Wis. 8:19f.; Jose Phus, War 7, 8, 7). 세속적 생명은 중요성(Significance)를 상실하거나(Wis. 4:8f.), 또는 영혼의 감옥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Philo, Leg. All. 2, 57; 3, 21, 151). 죽는 행위는 점점 더 중요성을 획득하였고(마카베오 사서 15:12; 마카베오 이서 8:21; Josephus, War 7, 8, 7), 참 생명, 즉 아다나토스(불멸의) 생명은 내세로 옮겨지게 되었다(마카베오 사서 15:3; Pss. Sol. 3:16; Philo, Op. Mund 155f.).
반면에 쿰란 사본들에서 발견되는 용법은 구약의 용법과 현저하게 유사하다. 오직 새로운 특징은 생명과 구원의 축복들과의 약간 공식적인 관련인 것이다(1QS 3:7; 4:7; 1QH 2:20, 31; 9:66; 1QM 1:9; 12:3; CD 3:20).

3. 신약성경의 용법

명사 조에는 신약성경에서 13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
(a) 조에는 자연적 생명을 나타낸다.
① 조에는 자연적 죽음과 구별되는 자연적 생명을 가리킨다.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② 눅 16:25에서 '살아있는 동안'을 묘사한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눅 12:15; 행 8:33에서도 마찬가지이다.
③ 고전 15:19에서 이 세상에서 '삶을' 표현한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딤전 4:8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지며, "내 생"과 대조되어 있다: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④ 약 4:14에서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생명을 묘사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⑤ 히 7:3에서 '생'의 끝을 묘사한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⑥ 계 11:11에서 '생'기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참조: 창 6:17; 창7:15).

(b)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초자연적 생명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 생명은 신자들이 미래에 받을 것이지만, 이 땅에서 지금 향유하는 것이다.
① 요일 5:20에서 하나님은 참 생명, 곧 영생이시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요 5:26a에서 하나님 안에 생명이 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12:50에 의하면 하나님의 명령은 영생이다: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② 요 5:26b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받으셨다.
요 1:14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다". 요일 5:11에서도 이를 증거한다. 그는 "생명의 주"이시며(행 3:15), "생명의 말씀"이시다(요 1:1). "이 생명이 인간에게 나타내시게 된 것이다"(요일 1:2).그는 "생명의 떡"이다(요 6:35; 요 6:48; 요 6:33). 그는 단순히 "생명"이란 말로 표현되었다(요 11:25; 요 14:16). 그는 "우리의 생명"이시다(골 3:4). 그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며(요 1:4b) 따라서 사람들은 그를 따름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빛을 얻는다(요 8:12).

(c) 조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 얻는 신자들의 생명을 나타낸다.
① 이 생명은 은혜와 거룩의 생명이다.
롬 6:4에서 우리는 "세례(침례)를 받음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된다.
엡 4:18에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들을 묘사한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② 이 생명은 구원과 영광의 생명이다. 이 생명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며(딤후 1:1), 그의 말씀과 복음의 전도로 말미암아 효력을 발한다, 요 6:68; 요 6:63; 행 5:20; 빌 2:16; 딤후 1:10; 고후 4:12. 사도들은 복음의 전도로, 사람들을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한다(고후 2:16).
③ 성령은 생명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 롬 8:2; 롬 8:6; 롬 8:10; 요 6:63.
④ 그리스도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계명(엔톨레)도 생명에 이르게 한다, 롬 7:10.
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되었다, 딤후 1:1에서 "썩지 아니할 것"과 함께, 벧후 1:3에서 "경건"과 함께, 롬 8:6에서 "평안"과 함께 나타난다.
⑥진실로 생명의 에클레시아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생명, 곧 은혜의 선물의 상속자들이다, 벧전 3:7.
⑦ 이 생명은 그들이 육체로 거하는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 있다, 골 3:3.
⑧ 그의 생명을 상실 당한 자는 누구든지 영광의 생명에서 제외된다. 행 11:18; 행 13:46; 행 13:48.
⑨ 특별히 요한복음에 따르면, 하나님의 생명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요일 5:12), 곧 영생을(요 6:40; 요 6:47) 소유하였고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 5:24; 요일 3:14).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은 사랑과(참조: 요 15:17), 기쁨(참조: 요 16:20-요 16:24) 안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요일 3:14에 따르면 형제간의 사랑은 참 생명의 척도가 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간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비록 요한의 생명에 대한 견해에 많은 점들이 영지주의자들의 관점과 일치한다고 할지라도 요한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영생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거의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로 옮겨 버린 반면에 요한은 영생을 바로 현재로 가져오며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계명과 인격에 굳게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요 17:3). 이 영생을 지금 이곳에서 소유하는 신자들은, 사망과 심판이 더 이상 생각할 요소들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요 5:24; 요 11:25). 왜냐하면 영생은 그 안에 영원의 씨앗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요 4:14; 요 6:27; 요 12:25).

(d) 조에는 종말의 복된 시대에서 누릴 생명에 대해 사용되었다: 요 3:15.
① 내세의 영생, 마 10:30; 눅 18:30; 막 19:29.
② 영생에 대한 질문, 막 10:17; 눅 18:18; 눅 10:25; 마 19:16이하.
③ 마지막 심판의 결과, 마 25:46; 롬 2:7; 마 7:14; 마 18:8이하; 막9:43, 막 9:45; 롬 5:17이하, 롬 5:21; 롬 6:22이하.
④ 죽은 상태에서 나온 자들의 생명, 롬 11:15; 갈 6:8; 딤전 1:16; 딤전 6:12, 딤전 6:19; 벧전 3:10.
⑤ 이 생명은 참 생명으로 불리워진다, 딤전 6:19; 딛 1:2; 딛 3:7.
⑥ 생명 책, 빌 4:3; 계 3:5; 계 13:8; 계 17:8; 계 20:12, 계 20:15; 계 21:27.
⑦ 생명의 나무, 계 2:7; 계 22:2; 계 22:14; 계 22:19.
⑧ 생명의 면류관, 계 2:10.
⑨ 생명수, 계 21:6; 계 22:1; 계 22:17; 계 7:17.
(참조: Walter Bauer; H.G.Link; R.Bultmann).

[참고 -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대로 신약성경의 모든 책들에 생명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언급들이 나온다. 생명의 교리가 가장 명백하게 표현된 곳은 바울과 요한의 신학이다. 그리고 신약성경의 가르침이 구약성경과 후기 유대와 헬라에서 유래한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a) ① 생명에 대한 구약성경의 견해는 공관복음서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자연적 생명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재산으로 간주된다(막 8:37). 예수님께서는 종종 병든 자들이나 죽어가는 자들을 소생시키기 위하여(막 5:23,부정과거 '제세', 그녀가 살도록 that she may live; 참조: 요 4:47이하), 또는 이미 죽은 자에게 이 세상의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능력을 행사하시라는 청을 받으셨다(막 5:35이하; 눅 7:11이하; 요 11:1이하).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와 같이 시간적 범주들이 생명과 관련하여 사용된다(눅 1:75; 참조: 히 7:3; 롬 7:1이하). 그리고 이 생명은 동적(動的)인 어떤 것으로 간주되나 동시에 제한되고 일시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창 17:28; 약 4:14). 이것은 단순한 자연적 현상이 아니라 성공하거나 또는 실패할 수 있는 하나의 사건이다(눅 15:13, '아소토스 젠': 방탕하게 살다; 딤후 3:12, '유세보스젠': 하나님을 경외하는 생을 살다). 참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한다(마 4:4; 신 8:3의인용). 반면에 하나님과 떠나 사는 것은 죽은 것으로 묘사된다(눅 15:24; 눅 15:32). 음식과 의복 같은 생명의 기본적 필수품들은 절대로 멸시되지 않고 오히려 창조주의 은사로도 고맙게 받아들여진다(마 6:25이하; 눅 12:15). 죽이고 살릴 수 있으신 하나님(마 10:28; 롬 4:17)께서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창조주이시며(행 17:25), 주님이시며(눅 12:20; 행 10:42; 약 4:15), 생명의 구현이시니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마 16:16; 막 26:63),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마 22:32; 막 12:27; 눅 20:38).

② 현재의 생명 너머에 장차의 생명이 위치한다(막 10:30; 딤전 4:8,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조에스 테스 쉰 카이테스 멜루세스] 약속이 있느니라"). 이것을 "영생"이라고 표현하고 있다(조에 아이오니오스; 마 19:16 병행구 막 10:17; 눅 18:18; 마 25:46; 참조: 딤후 1:10, 조에 카이 압흐다르시아: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 사람은 이 생명을 영혼의 불멸의 이성에 의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이 헬라 사상은 신약에서 완전히 이질적이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사이다(마 22:31이하; 병행구 막 12:26이하; 눅 20:36이하). 미래의 생명이 종종 '조에'의 단독적 사용으로 즉 어떤 수식어구 없이 언급된다는 사실은(위의 구약성경 6을 보라). 이러한 생명이 실제적이고 참된 하나님 자신의 생명으로 간주되는 것을 지적한다(마 18:18; 막 9:43; 막 9:45). 한편, 여기에서 후기 헬레니즘에서 발견되는 이 세상의 생명의 평가 절하에 대한 암시는 없다. 반대로 현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내생에 있어서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마 19:16 병행구 막 10:17; 눅 18:18; 눅 10:25). 마 7:13이하(참조: 눅 13:23이하)는, 신 30:19; 렘 21:8, 지혜문학과 신구약 중간기의 문헌, 쿰란과 후기 기독교문헌들에서 발견되는 두 길에 대한 사상을 사용한다(참조: 잠 8:20; 잠 9:6; 잠 12:15; 잠 16:25; 2Esd. 7:7ff.; Test Ash. 1:3, 5; Pirke Aboth 2:12f. 1QS 3:20; Did. 1:1; Barn. 18:1; → 걷다 Walk, art. hodos; 위의 구약성경 4도 보라). 현재의 생명과 미래의 생명 간의 밀접한 관계는최후의 → 심판 Judgment에 대한 비유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나타난다. 곧 불순종하는 자는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며 의로운 자들은 영생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마 25:46).

(b) ① 생명에 대한 바울의 견해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부터 부활 → Resurrection에 의해 깊이 영향을 받았다(고전 15:4). 그리스도의 부활은 완성된 사실로서, 사망을 능가하는 신적 생명의 권능을 증명하였다(롬 14:9).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살리시는 권능, 곧 사망을 정복하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권능의 구현으로 본다(고후 13:4). 이 생명은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 죽음으로부터 벗어난 생명, 무덤을 초월한 생명을 의미한다.
마지막 → 아담 Adam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인류를 위한 새 생명의 창시자가 되셨다(롬 5:12이하; 고전 15:20이하). 기독교인들의 생명은 자기 자신의 생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안에 살고 계시며(갈 2:20; 빌 1:21), 그들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고후 4:10). 그들의 생명은 그리스도에 의해 칭의되었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구원을 받았다(롬 5:10). 그리스도의 생명이 기독교인들에게 전달된 것은, (영지주의자들처럼) 하나의 능력으로서도 아니고 신비적 결합을 통한 것도 아니며 생명의 말씀(→ 말 Word, 빌 2:16; 참조: 딤후 1:10; 딛 1:2이하)과 살리시는 영의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롬 8:2; 롬 8:6; 롬 8:10이하; 고전 15:45).

② 성령을 통해 행하는 신자들의 이 새 생명은(롬 6:4) 매일의 생활에서 스토아파나 영지주의적인 무관심과 금욕주의로 회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바울이 이 생명을 보는 바처럼 기독교인은 자신의 이웃을 책임 있게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위한 생활을 더 이상 영위하지 않고(롬 14:7; 고후 5:15) 하나님과(롬 6:10이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고 있으므로(롬 14:8; 고후 5:15), 그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고 그리스도의 → 십자가 Cross를 취할 때(고후 4:9이하) 그의 삶은 긍정적이며 구체적 결과를 나타낸다(갈 5:25-26). 그러므로 바울은 역설적인 말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고후 6:8이하). 이는 생명이 죽음을 통하여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의미는 타인에 대한 사랑의 자세를 소유하고 있다는 뜻이다(롬 13:8-10; 롬 14:11이하). 바울이, "~를 위해 사는 것"(living for)과 ~와 함께 사는 것(living with)이 바로 생명의 구성요소에 속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자오(Zakcai'o", 2195)와 함께 사용하는 여격과 쉰(suvn, 4862-) 구문들을 주의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

③ 신자의 새 생명에는 현재와 미래, 직설법과 명령법 간에 하나의 긴장상태가 있다(갈 5:25). 신자의 새 생명은 이미 실존하는 것이지만 아직 완전히 명백하게 나타난 것은 아니다(골 3:3-4). 그리스도의 → 부활 Resurrection은 우리 자신의 미래에 있을 영생에 이르는 부활의 보증이다. 이 미래의 영생의 부활에서 사망과 또한 현 창조의 모든 불완전들은 과거의 일이 될 것이다(롬 8:18이하).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조오포이에데손타이, 고전 15:22; → 아담 Adam).
새 생명은 역사적인 시간에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원수인 사망이 정복되는 때의 영생을 지향하는 것이다(고전 15:26; 고전 15:28; 롬 6:22; 갈 6:8). 바울은 우주적인 드라마, 곧 기적적인 변형(trans formation)과 휴거(rapture)에 의한, 현세적인 생명으로부터 영생으로의 변화를 묘사한다(살전 4:13-17; 고전 15:20이하; 고전 15:35이하; 고전 15:51이하). 여기에서 바울은 묵시적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묵시적 표현과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후기 유대주의의 추상적 사변을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생명이 취할 형태에 대한 비유적 암시에 스스로를 제한한다. 그것은 육체가 있는 생명이 될 것이며(고전 15:35이하; 참조: 고후 5:7; 유대인들은 육체가 없는 생명을 상상할 수 없었음에 유의하라; 몸 Body), → 얼굴 Face과 얼굴을 대하여 보는 것과(고전 13:12; 참조, 고후 5:7)의 → 평화 Peace와 → 기쁨 Toy(롬 14:17)과 → 영광 Glory 독사(doxa, 고후 3:8이하), 또는 영화(榮化)(glorification 롬 8:17)의 충만에 들어가는 것을 수반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있게 될 것이다(살전 4:17; 고후 5:8; 빌 1:23).

(c) ① 요한은 말씀(the Word)이 성육신 전부터 영원한 생명이었다고 묘사한 이 말씀은 영원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사 인간들의 유익을 위해 역사하셨으니(요 1:4; 요일 1:1이하), 곧 그는 과거의 창조와 새로운 창조에 있어서 모두 신적 생명과 권능의 근원이시다. 그는 성육신을 통해 하나님의 계시가 되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말씀으로 영생을 전달하시는 것만이 아니라(요 6:68; 요 10:28; 요 12:50; 요 17:2), 그 자신이 참 생명이시니(요일 5:20), 곧 그의 여러 가지 "나는 이다"(I am)라는 말씀들은 이것을 지적하고 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 6:35; 요 6:48),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 영원하신 성부의 선재하시는 아들은 자신의 말씀에 의해서, 또한 자신의 인격 안에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셨다(요 6:33; 요 10:10; 요일 4:9).

② 하나님의 생명은 → 믿음 Faith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는 생명(요일 5:12), 곧 영생을(요 6:40; 요 6:47) 소유하였고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요 5:24; 요일 3:14). 신자들에게 주어지는 영생은 사랑과(요 15:9-17) 기쁨(요 16:20-24) 안에서 그 모습을 나타낸다. 요일 3:14에 따르면 형제 간의 사랑은 참 생명의 척도가 된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③ 비록 요한의 생명에 대한 견해에 많은 점들이 영지주의자들의 관점과 일치한다고 할지라도 요한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지주의자들은 영생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거의 도달하기 어려운 세계로 옮겨버린 반면에 요한은 영생을 바로 현재로 가져오며 또한 그리스도의 말씀과 계명과 인격에 굳게 닻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요 17:3). 이 영생을 지금 이곳에서 소유하는 신자들은, 사망과 심판이 더 이상 생각할 요소들이 아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요 5:24; 요 11:25). 왜냐하면 영생은 그 안에 영원의 씨앗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요 4:14; 요 6:27; 요 12:25).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남아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과(데오로신 텐 독산, 요 17:24) 자신들의 구원의 완성을 보는 것이다(참조: R. Bultmann, TDNT Ⅱ 870f.).

(d) 요한계시록은 → 인자(Son of man)의 전승을 죽임을 당한 → 어린 양 Lamb의 비유에 결합시킨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 1:17이하; 참조: 계 1:13이하; 계 4:9이하). 요한복음이 헬라주의의 배경을 갖고 완전히 현재적 생명에 전념하는 반면에 계시록은 유대 전통들로 되돌아가 오직 내생에만 관계한다. 새 → 예루살렘 Jerusalem의 환상 가운데에서, 에덴 동산의 이야기(창 2:9-17)를 통해 낯익은 생명나무와 생명수에 대한 신화적이며 고대 동양적 묘사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도성에서의 충만한 생명의 상징들로 다시 나타난다(계 22:2-14; 계 22:19; 계 21:6; 계 22:1; 계 22:17). 새 → 하늘 Heaven과 새 땅에 대한 환상은, 마지막 원수인 사망이 멸망 받고(참조: 바울, 고전 15:26) 하나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영생이 온전한 완성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약속에 있어서 가장 넓은 범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이하). - H. G. Link.]

성구사전

마 7: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 18: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8: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마 19: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 19: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마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 25: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9: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막 10:17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 10: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눅 10: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2:15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눅 16:25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눅 18: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 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5: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요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40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요 6: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요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10: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 11: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 12:25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요 12: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7: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행 2:28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행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행 5:20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행 8:33 그가 굴욕을 당했을 때 공정한 재판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말하리요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
행 11:18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행 13:46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그것을 버리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행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행 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롬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롬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롬 5: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롬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롬 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롬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롬 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 11:15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고전 3:22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고전 15: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고후 2: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후 4:12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고후 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갈 6: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엡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빌 2:16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골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 3:4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딤전 1: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4: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딤전 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
딤전 6: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딛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히 7:3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느니라
히 7:16 그는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 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벧전 3:7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벧후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요일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일 1: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요일 2: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일 3: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일 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일 5:16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요일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유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주어 먹게 하리라
계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 7:17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계 11:11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계 16:3 둘째 천사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계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계 22: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계 22: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계 22:14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22: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