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수 개념



유대 신비주의에서

유대인의 신비주의 연구에서, 숫자는 신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겨졌습니다.
상징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의 이 결혼은 성막의 창조에서 그 정점을 찾았습니다.
신전의 수치적인 크기는 "신이 올라모트 우주를 창조하기 위해 사용했던 창조의 축소판"입니다.

마하랄의 사고체계에서 각 숫자는 일관된 철학적 의미를 갖습니다.
 
1 - 통일성. 
2 - 이원성과 다중성.
3 - 양 극단의 일치.
4 - 기본 방향과 같이 두 방향의 다중성. 
5 - 네 극단을 하나로 묶는 중심점.
6 - 3차원의 다중성. 
7 - 모든 자연을 하나로 묶는 중심점, 샤바트처럼.
8 - 자연을 먹여 살리는 초자연적 영역, 초자연과의 연결을 위한 인간의 노력. 
9 - 자연과 초자연의 구분을 포함한 가장 완전한 다중성. 
10 - 자연과 초자연의 최종 통합.


1

  • 하늘과 땅에서 하나는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 אחד אלוהינו שבשמיים ובארץ ובארץ שבשמיים אלוהינו one אחד our god is and , - heaven in

2

3

  • 셋은 아버지 (총대주교) - שלושה אבות ( ab (아브라함, 이삭, 야곱)
  • 노아의 세 아들은 함과 야벳입니다.
  • 욤토브가 아닌 월,목요일 토라 읽기의 알리요트 수와 샤바트 민차의 알리요트 수
  • 성전(이전에는 성막) 면적의 3분의 1을 성막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 천사들은 하나님이[3]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거룩하신
  • 사제의 축복은 3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셋째날에 유대인들은 토라를 받았습니다.

4

  • 네 명은 어머니들입니다 (Matharchs) - ארבע אימהות ( (Sarah, Rebecca, Rachel, Leah)
  • Rosh Chodesh의 알리요트 수
  • 유월절에는 포도주 네 잔을 마시고, 구원의 네 가지 표현을 암송합니다.
  • 하늘과[4] 땅은[5] 모두 네 개의 면과 모서리를 가지고 있으며, 기본 방향과 유사합니다.

5

  • Five are the books of the Torah - חמישה חומשי תורה
  • 십계명 가운데 다섯 개는 두 [6]판에 각각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 시편집의 절들
  • Tzitzit의 매듭 수
  • Shabbat과 일치하지 않는 Yom Tov의 알리요트
  • 곡물 5종

6

  • 여섯 권은 미슈나의 책입니다.
  • 일주일 중 6일 근무일.
  • 창조의 6일

7

  • 미드라쉬에 따르면 "모든 일곱은 사랑을 받습니다."하늘을 가리키는 말은 일곱 개이고 땅을 가리키는 말은 일곱 개입니다. 에녹은 아담에게서 일곱 번째 세대이고, 모세는 아브라함에게서 일곱 번째 세대입니다. 다윗은 그의 집안에서 일곱 번째 아들입니다. 아사는 하나님을 부르짖는 이스라엘 왕들의 일곱 번째 세대입니다. 일곱 번째 날(삿밧)과 일곱 번째 달(디스레이)과연도(shmita)와 슈미타(shmita)는 모두 특별한 종교적 [7]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 노아의 일곱 가지 법칙
  • 오메르의 계수는 7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7일입니다.
  • 쉐바 브라코트[8] 축복 횟수
  • 월경니다에서 여자는 미카에 몰입하기 전에 "깨끗한 날"을 7번 세야 합니다.
  • 속죄와 정화의 행위에는 일곱 번의 살수가 수반되었습니다.
  • 성전 안의 메노라는 일곱개의 램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시바를 애도하는 기간은 7일입니다.
  • Sukkot[8] and Pesach [8](이스라엘)
  • 안식일 아미다, 욤토브, 모든 무사프 기도에서의 축복 횟수(로쉬하샤나 제외)
  • 샤브바트의[8] 알리요트
  • 노아의 방주에는 일곱 마리의 순수한 동물이 있었습니다.
  • 숫자 7은 완성, 하나님과의 연합 또는 거룩함과 거룩함의 언약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 모세는 아달 일곱째 날에 죽었습니다.
  • 안식일 카운트를 포함한 주 주기의 일 수

8

  • Eight are the days of the circumcision - שמונה ימי מילה
  • 이스라엘에서 1년에 욤 토브의 총 일수
  • 차누카 일수
  • 수코 8일
  • 페사흐 일수(디아스포라)
  • 조하르에 따르면 여덟째 날은 하나님이 다시 일을 시작한 창조 후 첫 날이기 때문에 숫자 여덟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한 주가 [citation needed]다시 시작되었습니다.

9

  • 아브의 히브리어 의 첫 9일은 "The Nine Days" (티샤 하야밈)으로 통칭되며, 예루살렘에 있는 두 사원이 파괴된 아브의 아홉 번째 날인 티샤 바브까지 이어지는 반 애도의 기간입니다.

10

  • 십계명
  • 이집트의 열 가지 역병
  • 10명의 유대인들이 민얀을 형성합니다.
  • 카발라에는 열 가지의 세피로트(인간과 신의 특성)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 미슈나에 의하면,세상은 열 가지 신성한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아담과 노아 사이와 노아와 아브라함 사이에 열 세대가 지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열 번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서 열 번의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집트에서 열 번의 재앙이 있었습니다. 성전에서 열 번의 기적이 일어났고, 황혼 기간에 열 번의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창제 [9]6일째 되는 날에이 미슈나에서 숫자 10은 많은 수를 나타냅니다(예: 미슈나는 아브라함이 열 번의 시련을 기꺼이 겪으려는 의지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낸다"고 선언합니다).

      * 「Minyan」(명료화)를 참조해 주세요.
         In Judaism, a minyan (Hebrew: מניין \ מִנְיָןmīnyān[minˈjan], lit. (noun) count, number; pl. 민자님(Minjanimnam)특정 종교적 
         의무에 필요한 유대인 성인 10명의 정족수이다.
         유대교의 전통적인 흐름에서는 13세 이상의 남성만이 미니안을 구성할 수 있으며, 보다 자유주의적인 흐름에서는 여성도
         집계된다.  

11


  • Eleven are the stars of the Joseph's dream - אחד עשר כוכביא
  • 향제물에는 열한가지 향신료가 있습니다.

12

  • 열두 개는 이스라엘의 지파입니다 - שנים עשר שיבטיא שיבטיא עשר שנים twelve the of tribes - israel
  • 각 부족의 역할을 나타내기 위해 제사용품은 종종 열두 가지로 나누어졌습니다.대제사장의 가슴판(호센)에는 12개의 지파를 상징하는 12개의 귀중한 돌이 박혀 있었습니다.엘리야는 [10]지파를 대표하는 12개의 돌로 제단을 쌓았고, 모세는 [11]지파를 대표하는 시나이에 12개의 기둥을 세웠고, 여호수아는 [12]지파를 대표하는 요르단강에 12개의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열두 지파와 같은 수이다: 12개의 점성술 별자리, 12개월, 하루의 12시간, 밤의 12시간, 대제사장 아론이 입을 12개의 돌."[13]
  • 템플마운트12개의 문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 유대인 여성이 유대인의 법을 따라야 할 의무가 생기는 박쥐 미츠바의 시대
  • 베이트 하믹다쉬슐찬(테이블) 위에 쇼브레드 열두 덩어리가 있었습니다.
  • 야곱의 아들들
  • 용수철 제거 개수

13

14

  • 유월절 시저의 스텝 수
  • 미쉬나 토라에 나오는 책의 수, Yad Hahazaka라는 제목으로도 Yad가 gematria를 가지고 있는 Yad Hahazaka 14

15

  • 하나님의 [14]이름을 쓰지 않기 위해 히브리어로 숫자를 쓰는 관례와 다르게 쓰는 두 숫자 중 하나.나머지 하나는 16살입니다.
  • 사제 축복의 말씀 수

16

  • 하나님의 이름을 쓰지 않기 위해 히브리어로 숫자를 쓰는 관례와 다르게 쓰는 두 숫자 중 하나.나머지 하나는 15살입니다.

18

  • 히브리어로 생명을 뜻하는 '차이'의 게마트리아.이 숫자의 배수는 행운으로 여겨지며 선물을 주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 아미다는 원래 18개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Shemoneh Esreh" ("Eighteen")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19번째 축복이 나중에 추가되었습니다.

19

20

  • 이스라엘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최소 나이
  • 할라카에서는 범인이 최소 20세 이상일 경우에만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22

24

26

28

30

33

36

  • 세상은 36명의 숨은 의인의 공덕으로 지탱된다고 합니다. 18명의 두배입니다 - 위 참조

40

  • 모세는 토라를 바친 뒤에 시내 산에서 사십 일 동안 머물렀습니다.황금송아지가 끝난 후, 그는 40일을 더 그곳에서 보냅니다. (그리고 밤)
  • 스파이들이 가나안 에 있었던 일수는
  • 사막에서의 세월—한 세대[17]
  • 노아의 시간에 발생한 홍수 동안 밤낮으로 비가 내렸습니다.
  • 레베카결혼할 당시 이삭의 나이
  • 처음 두 부인과 결혼한 에소의 나이
  • 니네베가 멸망하기 전 요나가 예언한 이 지나갑니다.(그들은 회개합니다)
  • 미케브에는 최소 40 세아(부피 측정) 이상의 물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 다윗과 솔로몬, 그리고 심판서에서 가장 의로운 심판들이 다스린 해의 수
  • 명령을 위반한 사용자의 래치 수
  • 토라가 주어진 일수
  • 한 사람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형성되는 주수
  • 아담의 저주 횟수
  • 남자가 산헤드린에 가입할 수 있는 최소 나이

42

  • 신의 이름하나로 쓰인 편지들
  • 난민들이 우발적으로 목숨을 잃었을 때 갈 수 있는 42개 도시(피난도시 참고)
  •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를 지나는 42개의 여행이 있었습니다.
  • 42 예언자 엘리사를 '대머리'로 지목한 후 베델에서 2명에게 참살당한 청소년 (머리가 가려지지 않음)

50

54

60

70

86

130

  • 그녀가 [20]모세를 낳은 요체베드의 나이.
  • 130 세겔 은화는 제단을 봉헌하는 동안 바쳐졌습니다.

248

  • 양의 계명 수
  • 사람의 신체에서 팔다리의 수

314

318

  • 아브라함이 4명의 왕들과 싸우기 위해 가져간 사람들의 수(창 14:14); 또한 엘리에셀의 게마트리아(아브라함의 종)

365

  • 양력의 길이 (유대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 금지계명수
  • 체내 동맥 수

374

  • 첫번째 성전이 세워진 해의 총 숫자

400

세갈림 아브라함이 에브론에게 지급한 금액(베레싯 23:15)

에사브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수는

이집트에서의 세월

613

620

  • 토라와 랍비 기원의 미츠봇을 포함한 총 미츠봇 수.






전형(투포스) τύπος /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τύπος, ου, ὁ 스트롱번호 5179
1.

찍힌 자리

2.

모형

3.

형성된 것

발음 [ tüpŏs ]
어원
5180에서 유래
  • 1.
    찍힌 자리, 맞은 자리, 표, 흔적, 요20:25.
  • 2.
    모형, 형상.
  • 3.
    형성된 것, 빚어진 것, 초상, 행7:43.
  • 4.
    모양, 형성, 형식, 행23:25, 롬6:17.
  • 5.
    원형, 전형, 표본.
    • a.
      [기술적 의미에서] 모형, 원형, 행7:44, 히8:5.
    • b.
      [도덕적 의미에서] 모범, 귀감, 빌3:17, 딤전4:12.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자국(요20:25), 형상(행7:43), 양식(행7: 44), 모형(롬5:14), 본(롬6:17, 살후3:9, 벧전5:3), 본보기(고전10:6,11).



아담과 그리스도(로마서 5:12-14)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해 새 시대(new aeon)가 시작됨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옛 창조의 시작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가 오염되었음을 가리킴과 동시에 '죄의 세력'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던 명령을 염두에 두었음이 분명하다.

 

죄와 사망은 불가피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여기서 '사망'은

 

(1) 육체적인 죽음,

 

(2)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골 2: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딤전 5: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

 

계 3: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3) 지옥의 형벌로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본절에서는 두 번째와 세 번째 사망의 개념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6:23은 마지막 영생과 사망이 대조되어 있으므로 세 번째 사망의 개념이 더욱 타당하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 바울은 한 사람에 의해 세상에 들어온 죄가 보편성을 지님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그 죄의 보편성에 대해 증명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이미 1:18-3:19에서 이미 설명을 했기 때문이다.

 

 

▶ 이르렀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엘덴'은 일반적으로 '통과하다', '퍼져가다'를 의미한다.

 

 

 

[롬 5: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 본절은 삽입구로서 반론(反論)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 반론이란 '모세 율법이 있기 전까지 과연 죄가 존재했던가'라는 물음이다.

이에 대해 바울은 답변하기를 하나님께서 비록 기록된 율법으로 죄를 심판하지 않으셨으나 인류는 모태에 있을 때부터 저주 아래 있었다고 한다.

즉 율법이 공포되지 않았을 때의 범죄자들 또한 결코 죄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모세 율법이 주어지기 전까지의 기간 동안 죄의 결과로 생기는 사망이 인류를 지배했다는 점에서 증명된다.

 

(14절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또한 이 같은 사실은 모세 율법이 적용되기 이전의 시대에 아우를 죽인 가인이 하나님께 형벌을 받은 사실,

 

(창 4:9-15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죄악이 관영했던 노아 당시의 사람들이 홍수로 심판을 받은 사실,

 

(창 6:1-7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바벨탑 사건,

 

(창 11:1-9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음란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등,

구약성경에 기록된 구체적인 여러 실례들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창 19:23-29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결론적으로 죄는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14절)의 기간에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구절에는 죄의 역사성(歷史性)과 보편성(普遍性)이 시사되어 있다.

 

 

▶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모세 율법 전에도 각 나라마다 비록 원시적이긴 하지만, 사회를 통치해 나가는 불문률(不文律)과 법률 및 도덕적 관습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그것들의 지배를 받아왔었다(Ur-Nammu Code, Eshnunna Code, Lipit-Ishta Code, Hammurabi Code, Hittite Code).

 

그러므로 율법 이전에도 '죄에 대한 정죄'가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왜 본절과 같은 진술을 하였는가?

 

바울은 단순히 법에 저촉되는 '죄'에 대하여 진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보편적인 의미에서의 죄, 곧 하나님과 분리되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삶 그 자체를 죄로 규정하고 있다.

 

율법이 있기 전에 사람들은 죄를 윤리적인 것으로만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었으며,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과 분리되고 하나님을 반역하던 삶이 죄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그러한 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는 하나님 앞에서의 죄의식이 결여 되었다는 것이다.

역으로 모세 율법이 공포되었을 때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죄를 죄로 인식하게 되었다.

 

 

 

[롬 5: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 아담과 범죄는,

 

(1)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며,

(2) 하나님과 같이 되어 보려고 하는 교만이었다.

 

그리고 모세 이전 사람들이 이와 동일한 범죄를 짓지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거역하는 본성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 호세아 선지자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호 6:7)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인간의 범죄가 단순히 자범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파생된 근본적인 죄임을 선포하고 있다.

 

▶ 사망이 왕노릇 하였나니 - 본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바실류센호 다나토스' 는 '사망이 왕권을 잡았다'로 번역된다.

이 말은 세상이 죄악으로 충만했다는 의미이며, 보다 적극적으로는 죄악의 세력이 꺾을 수 없을 만큼 강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말에 대조되는 것으로 바울은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여'(21절)라고 표현했다.

 

▶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 이렇게 아담을 그리스도의 표상(表象)이라고 일컫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될 수 있다.

 

두 사람은 신분이나 인류에게 미친 영향면에서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담이 그리스도의 표상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1) 아담이 옛 시대의 시조인 것처럼 그리스도는 새 시대의 시조이다.

(2) 아담의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미치듯이 그리스도의 부활의 의(義)도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고전 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후 5:14-15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즉 아담이 범죄의 시조라면, 그리스도는 의의 시조이시다.

 

이 두 가지 의미에서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형'(튀포스)이 될 수 있다(type)

 




요한복음 3장 16절 / 독생자(모노게네스. μονογενής) 외아들, 성품 속성에서 유일무이(唯一無二) - 오직 하나


유일무이(唯一無二)

'유일무이(唯一無二)'란 성어는 오직 하나 뿐, 
그리하여 다른 것과는 차원이 다른 독특함을 나타냅니다. 
이 성어는 다양한 상황에 사용될 수 있으며, 이 명제와 관련된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중국 문헌에서 발견되는 이 성어는 철학적 관점에서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것을 이야기하는 데 사용되였고, 
이를 통해 그 아름다움과 순수함을 설명하였습니다. 

유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나 역사적 배경은 찾을 수 없지만, 중국 철학과 역사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를 통해 이 성어가 오랜 시간 동안 전통적인 문화에서 독특하고 지존하는 것을 상징하는 역할을 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이 역사적 배경과 연관된 이야기를 살펴보고 독자들이 이 성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자풀이

이제 '유일무이(唯一無二)' 성어의 각 한자가 가진 의미를 살펴봅시다. 
이를 통해 성어의 전체적인 뜻과 그 속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고 이를 다양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 唯 : 오직 유 
    이 한자는 오직, 단 하나라는 의미를 가지며, 다른 것과 견주어 볼 때 그 순수하고 독특한 가치를 나타냅니다.
     
  • 一 : 한 일 
    이 한자는 숫자 '하나'를 나타내며,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다른 것과 구별되는 독특함을 표현하는데 사용됩니다. 

  • 無 : 없을 무 
    이 한자는 없음, 부재를 의미하며, 다른 것과 차이를 두기 위해 쓰이는 부정적 표현입니다.
     
  • 二 : 두 이 
    이 한자는 숫자 '두'를 나타냅니다. 
    여기서 이 한자가 부정적 표현으로 사용되어, 두 번째도 아닌 오직 하나뿐임을 강조하는데 사용됩니다.


후토스 가르 에가페센 호 데오스 톤 코스몬 호스테 톤 휘온 톤 모노게네 에도켄 히나 파스 호 피스튜온 에이스 아우톤 메 아폴레타이 알 에케 조엔 아이오니온

개역개정,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새번역,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영어NIV,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영어NASB,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영어MSG,16  "This is how much God loved the world: He gave his Son, his one and only Son. And this is why: so that no one need be destroyed; by believing in him, anyone can have a whole and lasting life.
영어NRSV,16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Son, so that everyone who believes in him may not perish but may have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6 ουτως γαρ ηγαπησεν ο θεος τον κοσμον ωστε τον υιον αυτου τον μονογενη εδωκεν ινα πας ο πιστευων εις αυτον μη αποληται αλλ εχη ζωην αιωνιον
라틴어Vulgate,16 sic enim dilexit Deus mundum ut Filium suum unigenitum daret ut omnis qui credit in eum non pereat sed habeat vitam aeternam
히브리어Modern,16 כי ככה אהב האלהים את העולם עד אשר נתן את בנו את יחידו למען לא יאבד כל המאמין בו כי אם יחיה חיי עולמים׃


이 구절은 복음에 관한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들 속에 있는 복음'(the Gospel within the Gospels) 혹은 `작은 복음서'(Little Gospel)라고 불리기도 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 전체 대표할 수 있는 요절인 본절은 복음의 진수(眞髓)로서, 복음이 담고 있는 모든 계시의 말씀을 사랑의 개념에서 천명(天命)한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세상'을 뜻하는 헬라어 `코스모스'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가리킨다. 
유대인의 전통적인 사고 방식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은 선민 이스라옐에게만 국한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민족이나 계급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에게 미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이는 곧 복음의 보편성과 그 맥을 같이한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개방되어 있지만 그 은혜틀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믿음임은 물론이다. 
그리고 본절에는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동기가된 것임이 밝혀져있다. 
특별히 `사랑'의 헬라어 `아가페'는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들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 편에서 선수권(先手權)과 주도권(主導權)을 가지고 인생의 연약함과 죄성을 끝없이 감싸 안으신다고 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본성이라 하겠으며(요일 4:8)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그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본질상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의 생애를 보면 우리는 그 사람을 보다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랑은 결코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성격의 것이며 막연한 이론이나 말로써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응분(應分)의 대가를 아낌없이 지불하는 것이다. 
그리고 `독생자'라는 표현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의 특수함을 강조하는 말이며, 루터의 말을 빌리면 예수는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계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다. 
결국 예수의 탄생은 영원 전부터 독생자로 존재하셨던 성자 하나님의 성육신(成肉身)이었다는 점에서 유일 무이한 사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독생자'
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노게네스'`외아들'이란 뜻 외에 `그 속성과 성품에 있어서 유일 무이하신 분'이란 의미도 내포한다. 

그리고 본서에서는 `아들'의 뜻인 `휘오스'를 주로 그리스도에 대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3:16, 36;5:20, 23;8:36 등). 
한편 `주셨으니'의 헬라어 `디도미'는 `보내다'(send)와 `넘겨주다'(hand over), `값을 지불하다'(pay) 등의 뜻이 있는데 본절에서도 이 말은 성육신(Incarnation)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심(crucifixion)까지도 의미하고 있다. 
웨스트콧(Westcott)은 이 낱말이 제을 바치는 일을 암시하고 있다고 본다(창 22:2 주석 참조).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믿는 자의 구원에 있음을 15절에 이어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멸망'과 `영생' 사이에 어떠한 중립적인 선택은 없으며 그것은 절대적인 양자 택일의 문제이다. `멸망하다'의 뜻인 `아폴뤼미'(*) 또한 요한이 자주 사용한(10번 정도) 단어로서,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첫째, 이 말은 `잃다', `상실하다'(to be lost)의 뜻과 둘째, `없어지다', `파괴되다'(to perish, be destroyed)의 뜻이 그것이다. 또한 이 동사는 구원과 반대되는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며,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을 나타낼 때(막 3:6), 존속되는 것과 반대되는 `멸망'을 나타낼 때 (고전 1:19), 그리고 무엇을 얻거나 받는 것과는 반대되는 `상실'을 나타낼 때 등의 경우 에도(요이 8절) 사용되었다. 특히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을 떠나 살아가는 자들은 필경 절망과 파멸로 치달을 수밖에 없게 됨을 암시한다. 그들의 모든 수고와 노력은 허망하며 하나님과의 친교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곧 죽음과 멸망을 뜻한다.


μονογενής, ές 스트롱번호 3439

1. 오직.  2. 독생하신
발음 [ mŏnŏgĕnēs ]
어원  /  3441과 1096에서 유래
  • 1.  오직,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눅7:12, 9:38, 8:42, 히11:17.
  • 2.  독생하신, 요 1:14, 18, 3:16, 요일 4:9.
  • 관련 성경  /  독생한(요 1:18). 
    [명] 외아들(눅 9:38, 히 11:17), 독생자(요 1:14, 요일 4:9).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독생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한 요한복음 3:16에 나오는 말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헬라어 모노게네스를 번역한 것인데, 
이 말은 영어로 “only 오직”, “one and only 오직 하나뿐인”, 
그리고 “only begotten 독생하신”으로 다양하게 번역됩니다.

문제는 마지막 단어(KJV, NASB, NKJV에서 사용된 “only begotten 독생하신”)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거짓 가르침을 증명하기 위해 이 말을 고수해왔습니다. 
즉 예수님은 삼위일체 중 두 번째 인격으로서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단어 “begotten 생긴”을 보고 시간상 시작이 있는 존재만이 오직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이 창조된 존재라고 말합니다. 
이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begotten 생긴”이 헬라어를 번역한 영어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어의 의미를 본문에 전가할 게 아니라 헬라어의 본래 의미를 살펴 봐야 합니다.

모노게네스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헬라어-영어 신약성경 사전과 다른 초기 크리스천 문학 (BAGD, 제 3판)에 의하면 모노게네스는 두 가지의 중요한 정의를 가집니다. 

첫째, 특별한 관계 안에서 오직 하나뿐인 종류로 존재하는 것

히브리서 11:17에서 저자가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생자”라고 언급한 부분에서 사용된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한 명 이상의 아들이 있었으나, 이삭은 사라에게서 난 유일한 언약의 아들이었습니다.

둘째, 종류 또는 계급에 있어서 오직 하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종류로서 존재하는 것
 
요한은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을 언급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한 유일한 저자입니다(요한복음 1:14, 18; 3:16, 18; 요한1일 4:9). 
요한은 주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관심이 있었기에(요한복음 20:31), 
예수님을 하나님과 같은 신성한 본성을 가지신 독특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부각시키는 데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믿는 자들에게는 사용하지 않는 표현입니다.

요컨대 하나님과 예수님을 묘사하는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말은 우리로 하여금 삼위일체의 각각 다른 인격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인간적인 용어라는 것입니다. 
사람 아버지와 사람 아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으면 삼위일체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인격 사이의 관계도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 이단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처럼, “begotten 생긴”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태어”나거나 “창조”되었다고 곡해하고 그렇게 가르치려 하는 것은 잘못된 유추입니다.


'독생자'란 무슨 뜻인가요? 예수님은 어떻게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까?

신약성서에서   9번 사용된 단어로, 독특한 또는 독특한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는 외아들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를 세 번 사용합니다(눅 7:12 , 8:42 , 9:38 ). 
히브리서 기자는 아브라함과 약속의 아들인 사라의 외아들인 이삭을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합니다( 히브리서 11:17 ). 
현대 번역판은 일반적으로 이 정의를 반영하기 위해 요한복음 3:16을 "유일한 아들" 또는 "독생자"로 번역 합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들은 이 점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1-3“독생자”로 번역된 헬라어 용어는 모노게 네스( monogenes) 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어떤 식으로든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태어나거나 창조되었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대신, 아버지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계신 예수님이 강조됩니다.

​성경에서는 종종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사용하여 우리가 인간으로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그들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예수님이 아버지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느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 골로새서 1장 15-17 절도 예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3:16절의 이 구절은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예수님을 유일하신 분으로 언급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장 14 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18 절에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18덧붙여 “그를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지만, 믿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완전히 독특하시지만 창조된 존재가 아니라는 이해는 초기 교회에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초기 신조 중 하나인 니케아 신조에서 강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시요, 만세 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니, 하나님의 하나님이시요, 빛 중의 빛이시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이시라, 나셨으나 만들어지지 아니하시고,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요, 아버지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느니라." 

이 진술은 예수가 영원하며 세상에 구원을 제공하기 위해 보내진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임을 분명히 하고자 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이유


신학적 의의

삼위일체 신론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임을 증거하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 곧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동일한 한 하나님이시다. 삼위일체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를 임마누엘 하나님으로, 즉 주시오,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에서 출발한다. 구원을 약속하시고 이를 성취시키시는 하나님은 당신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알게 해 주신다. 삼위일체론은 성서 안에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에 대한 신앙 고백을 다루는 신학적인 해석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되고 이루어진 궁극적인 진리와 실재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37)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 본질, 한 실체임을 강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 안에 이루어진 계시의 현실이 곧 신적인 본질과 동일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38) 삼위일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인 사건 가운데 밝혀지는 신앙의 새로운 현실을 알려 주는 언어로서 하나님이 자신을 예수라는 인간의 구체적인 실재 가운데 인간과 스스로 연관적이게 함으로써 자신을 드러내는 계시의 언어임을 의미한다.39)

인간의 인간성은 결코 그 자체로 그 존재의 근거와 목적을 갖지 못하며 철저히 하나님의 신성을 통해서 새롭게 근거와 참된 완성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의 인간성은 비록 창조의 사건을 통한 하나님과의 연관 속에서 이미 긍정되고 우리에게 수여되었다고 할지라도 또 한 번 육신이 된 똑같은 바로 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본래적인 의미와 완성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죄로 어두워지고 파괴된 상태에 있는 인간의 인간성은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자유로운 사랑과 은총 가운데 그분의 신성에 용납되며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성으로서 결정적으로 그분이 계시하고 정한 바 새로운 실재 가운데 알려지고 개방된다.40)

성육신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이름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인 자기전달이다.41) 삼위일체란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가운데 드러낸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알려진 하나님 자신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자유의 완전성과 전체성(totus Dei 가 아닌 totum Dei)을 증거하는 신앙의 언어이다.42) 하나님 자신의 사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삼위일체는 역사 안에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궁극적인 자기전달이다.43)

하나님의 육성으로서의 4복음서44)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며 또한 인간이시다. 하나님 자신의 궁극적인 자기전달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말씀을 기록한 것이 4복음서이다. 따라서 4복음서는 신의 말씀, 곧 하나님의 육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유일하신 성육신이시다. 비록 부족한 제자들을 통하여 기록된 것이지만, 하나님의 육성과 그 흔적은 4복음서에만 있다. 따라서 4복음서는 하나님의 최종적이며 유일하신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 4복음서를 구약이나 신약중의 하나의 성경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바꾸어, 모든 말씀의 최종, 최고 권위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에 한정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한다. 바울은 십자가 대속으로 오는 은혜를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구원을 복음이라 하였으나,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것만을 복음이라 하였다.

바울을 중심한 초기교회에서는 주후 33년 이후부터 70년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말씀된 복음이 교인들에게는 전혀 들려지지 않다시피 하였다. 신약성서 가운데 복음서가 맨 앞에 등장하지만 가장 먼저 저작되고 교회에 유포·회람된 책은 바울 서신이다. 신약성서 27권 중 바울 서신이 기록된 시기는 48년부터 58년 사이로 성서비평학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그 뒤를 이어 마가복음이 60∼70년경, 마태복음70∼80년경, 누가복음 과 사도행전 80∼90년경, 그리고 요한복음이 90∼100년경에 쓰였다. 따라서 바울 서신은 복음서보다 앞선 교회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주로 이방인들이 주축이 된 교회들 사이에 회람된 바울서신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以信稱義)’를 강조하는 선교 신학이다. 이는 믿지 않는 자들을 교회에 입문시키는 기초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이 바울이 정립한 바울의 복음이나 바울의 사상이나 신학이나 바울의 신앙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처럼 동일시되었다.

이런 구약적 회귀와 바울적 복고와 영지적 역행의 혼란 속에서 복음서 기자들은 대단한 용기와 각오와 수고로 바울이 말하는 복음과는 전혀 다른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중심한 복음서를 내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이때부터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구별되었다. 복음서 기자들은 바울처럼 유추하거나 스스로 정리한 것이 거의 없이 사실적이며 역사적인 복음을 중시하였다.45)

하나님이 바로 성육신 하시어 친히 말씀하시며 새로운 구원 역사를 시작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와 생명의 복음이 온 인류와 모든 만물을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유일한 구원의 원리와 법칙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없이도 되는 기독교와 교회는 어불성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영원무궁하시고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의 인류의 마지막 구원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다.46)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동일시하면서, 교리와 신조와 신경으로 애를 썼으나 무리와 억지였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은 역사성과 사실성에 대한 책임이 없다. 말하는 자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이런 것을 복음 과 구분치 못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달리 추가를 하거나 수정을 하거나 보완을 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하신 말씀, 곧 하나님의 유일하신 말씀이다. 이것은 구약과 바울의 가르침과 혼합될 수 없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의 복음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다. 때문에 구약과 바울의 기초하에서 2천 년간 지탱되어 온 기독교를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새 기초를 놓아 새집을 지어야 한다.47)

신앙을 위한 예수에 대한 복음은 얼마든지 말할 수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역사적으로 말씀되어진 대로 사실대로 기록되어 있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소설이나 공상이나 유령이나 영상으로 말하여도 무방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복음서가 나온 이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으로 망각되고 제외되고 실종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되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구원 역사를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였다.48)

예수가 구약의 왜곡을 걷어내기 위해서 오셨듯 이제는 복음서가 바울을 걷어내야 한다. 바울은 복음서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교회와 서신서 들을 통하여 기독교를 만들고 형성하였다. 그래서 복음이 높이 올려진 것이 아니라 유대교적 기독교 종교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구약과 바울로 가려지고 덮혀지고 묻혀져서 보이지도 않게 되고 들리지도 않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되찾지 않으면 안 된다. 바울의 복음이 이제는 기력을 완전히 잃었다. 가감할 수 없는 복음만이 교회와 기독교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하나님이 직접 오셔서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친히 주신 인류 구원의 참 길과 진리와 생명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나머지는 예비요, 준비며 서론일 뿐이며 부수적일 뿐이다. 그러니까 “오직 성서” 안에 들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근원의 복음이다.49)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길이라는 말은 곧 도를 말한다. 도는 진리와 생명의 도를 말한다. 도는 이치(理致)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는 어떤 제한적인 전제가 전혀 없는 우주 만물의 객관성을 말씀하신 것이고, 인류가 멸망치 않고 영생하는 도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객관적인 원리를 말씀하신 것이지 주관적인 교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도에는 자기 욕심이나 사심이나 이기심을 버리는 것이나, 지위고하, 성공실패, 전쟁, 대적, 승리 같은 것이 없다.50)

유대교나 로마교나 기독교는 그런 도에 이르지 못하였다. 진리를 알기 원하기보다 자기 구원을 위하여 열심을 다해서 빌고 바라고 바치며 안간힘을 쓰며 혈기를 부리며 집단적인 행패를 부리고 폭력을 불사한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죽거나 없어지거나 줄어들거나 실패하거나 죄를 지으면 안 되는 것과 상관없이 더 강하여야 하고 언제나 이겨야 하며 전능하신 신과 함께 사는 신앙인들을 말한다. 아플 때는 낫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것은 안중에도 없다. 그러다가 죽음이 오면 죽지 않기를 바라서 기도하고 애쓰며 정한 이치로 돌아가는 순리와 정도를 역행한다.51)

구속신학은 인간들의 최대 염치없는 사리사욕이며 이기심이다. 자기가 자기의 죄 값을 떳떳이 치루지 못하는 비열한 인간들이며, 죄 없는 짐승을 잡아서 신에게 바치는 것은 짐승의 원한을 살 일이며 하나님을 물질로 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가 대신 죽음으로 주홍같이 붉은 죄일지라도 사하심을 받아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자기가 이제는 의인이 되었다는 대속론은 참으로 뻔뻔한 인간들의 망연자실이다. 도를 말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도에 이르고 도에 거하기를 바라시는 그 이상이 없는 것을 모른다.52)

“독생자”라 믿는 믿음이 중요한 이유

복음은 하나님의 최후 계시이며 말씀이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히브리서1:1-2)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다시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하여 그의 다른 아들을 결코 주시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을 위한 구원의 일을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끝내셨다(요한복음19:30).

복음은 “아들에 관한 말들(words about the Son)”이 아니라, 
“그 아들의 말씀(Word of the Son)”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원리이다. 모세와 토라는 유대교를 위한 기초이다. 
교황과 법규집은 로마 카톨릭의 기초이다. 
바울의 신학은 개신교의 기초이다. 
코란과 모하메드는 이슬람의 기초이다. 
더하여, 포스트모던 신학의 기초는 좋게 들리는 모든 것을 결합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뿐이다.

복음은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신학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신학, 교회신학, 성서신학들은 너무나 많은 이론들과 교리들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고 꾸미고 수정하였다. 다른 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율법과 교리와 신조와 신학들로 교회 밖에서보다 교회 안에서 가려졌고 매장되었고 무시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사람들에 의해 편집되고 이서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 길과 생명과 진리일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은 사도들과 사도 적 교부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수립하고 체계화한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을 만한 복음이 아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 그 자신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복음은 다른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이나 교부들이나 목사들이나 종교개혁자의 것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세의 율법이 아니다. 바울의 서신도, 사도 신조도, 초기교회의 교리도, 로마 캐톨릭의 규범집도, 어떠한 개신교 신학들의 것도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죄인들과 덕인들 간에, 원수와 친구들 간에, 신자와 비신자간에, 세리와 매춘부들, 살인자와 강간범들 간에, 가난한 자와 부자들 간에 어떠한 구별도 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모든 것은 복음을 듣고 깨닫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는 것이다.

예수를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믿으면서도 사실은 전혀 그렇게 믿지 않은 기독교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육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육성이다. 이 육성의 복음은 바울 이전에 이미 가르쳐진 복음이다. 바울과 상관없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이다. 대속과 상관없는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복음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육성인 4복음서가 바울 복음 앞에 숨을 쉬지 못했다. 대속론을 대표로 하는 바울신학이 구약과 4복음서 해석의 중심 원리가 되어 버렸다. 모든 성경이 바울의 대속론을 위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4복음서가 하나님의 본질 메시지인데도 바울신학을 위한 부교재(副敎材)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가르침과 상관없는 바울의 가르침이 기독교를 점령해 버렸고 정통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이 바울 기독교가 바로 오늘날 인류의 생존을 방해하는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건설적인 모든 가치를 왜곡시켰다.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원리를 왜곡시켰다. 억지 종교 교리만 남아 있는 기독교를 만들고, 해독을 뿜어내는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때문에 시대를 위한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곧 하나님의 친 육성을 바울 신학과 분리하여야 하며, 더 나아가 4복음서의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바울의 신학과 상관없이 오직 4복음서의 가르침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원래 복음을 발견하는 길이다. 하나님은 그냥 신이 아니라 모든 인간들의 친부인 것을, 모든 인간들은 신의 피조물로서 신의 도구가 아니라, 친부 창조주의 친 자녀들이며, 형상이며 생명의 존재들이어서 창조주의 가능성을 그 영에 가지고 있는 존재들인 것을, 그래서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임을, 용서는 대속을 통한 것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용서하고 화해하고, 결국 죄사함 받을 필요가 없는 존재들이 되는 것을, 그리고 내세 천국 구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창조 목적을 위하여 인간들 간에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여 원수까지 한 형제와 가족으로 사랑하여 아버지의 가정을 이룩하는 사랑의 나라인 것을 예수 그리스도는 말하였다.

바울이 말한 대속 구원은 전혀 예수께서 말씀하신 구원이 아니다. 내세 천국 구원의 유일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유일하다고 믿고 가르치기 때문에 모든 오해들이 발생하였다. 종교적이며 신학적인 문제가 발생하였고,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 공생에 문제를 발생시켰다. 내세 천국은 현재 인간들이 사는 삶에서 단지 육체만을 벗는 의미의 삶이다. 육체 없는 삶이 죽은 후의 삶이고 내세의 삶이다. 따라서 이 땅에서 천국을 살 수 없는 실력이면 내세 천국에서도 천국다운 천국을 살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은 천국 가는 오직 유일한 대속의 제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친히 말씀하신 신의 육성으로서의 유일성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신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는 절대 권위의 말씀으로서의 유일성이다. 누구도 절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변개, 변조 시킬 수 없다. 친부, 친자, 인간의 본 생명, 인간에 대한 아버지의 희망, 아버지의 방식대로 원수까지 서로 사랑하며, 결국 아버지와 같은 형상으로 완성되는 구원에 대한 가르침은 절대로 인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단순한 교훈이 아니다. 단순한 교훈이 아니라 창조주 신의 말씀이다.

하나님 말씀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증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자체이다. 우리는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어야 하며, 그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한다. 예수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지 않으면, 그의 가르침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을 수 없으며, 그의 가르침을 믿지 않는 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독생자요, 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아는 것은 진실로 믿음이 필요하다. 다른 모든 가르침은 이해할 수 있지만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문제이다.

예수께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으며,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말씀하신다는 자기 증거를 살펴보자.

우선 그는 그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설명한다. 그는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기 위해서 오셨으며54) 그는 오셔서 진리를 말씀하셨다.55) 그래서 요한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다”고 한다.56)

진리는 무엇에 관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아버지”에 관한 것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왔는데, 그것은 아버지를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었다.57) 그는 아버지를 아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를 통하여 그 아버지를 알 때 우리는 우리가 영생을 이미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때문에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며 그분의 말씀이 100%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는 것이라고 하신다.58) 예수께서 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영생을 가지는 방법이라고 하신다.59)

이 진리는 처음부터 아버지 그 자신의 말씀이셨다. 그 말씀은 100% 그분 자신이셨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60) 말씀이 인간의 육체로 변형되셨다는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위하여 한 육체를 준비하시고 그 육체 안에 직접 오심으로 그 육체를 말씀의 완전한 표현을 위한 장치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그 말씀 안에는 완전한 아버지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있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이 있고, 우리에 대한 아버지의 한없는 경륜과 지식이 완전하게 들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개역한글, 요한복음1:14)

이 말씀은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하신 바로 그 말씀이셨고, 그 말씀을 알면 영생을 가지게 되는 말씀이셨다.61) 그 말씀은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 자체이다. 그는 그 자신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전혀 없으시다.62) 그는 아버지에게서 보고 배운 것만을 말씀하신다.63) 아버지께서 말하라고 이르신 것만을 말씀하신다.64)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이 인치신 말씀이다.65) 그분의 말씀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분을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66)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가르침이 그의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분의 것이라고 하신다.67)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 싶어 하시는 말씀 그 자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이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것을 믿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은 육체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하나님의 친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삼위일체 신앙의 핵심이다. 모든 성경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최고 최종 권위를 가진다.

때문에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여야 한다. 이해를 하지 못한다면 말씀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분이 “아버지”를 말씀하신다. 왜 그분이 “아버지”에 관한 말씀을 하시는가? 그것이 바로 우리의 영생, 그리고 신의 삶을 사는 것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로 믿지 않는 증거

어떤 책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가? 로마서인가? 아니면 레위기인가? 만약에 이같이 4복음서, 특별히 요한복음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믿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독생자의 친(親) 말씀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모든 성경이 감동으로 기록되었지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친히 하신 말씀이 첫 번째로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한다.















아가도스 & 칼로스



아가도스 & 칼로스


ἀγαθός, ἡ, όν 스트롱번호18
1.

선한

2.

적합한

3.

완전한

발음 [ agathŏs ]
  • 1.
    [기본형] 선한, 착한, 좋은.
    • a.
      [외적인 의미에서] 적합한, 유능한, 유용한, 마25:21, 23, 눅19:17, 23:50, 행11:24, 엡4:29, 딛2:5, 벧전3:10.
    • b.
      [내적 가치, 특히 도덕적 가치로서] 완전한, 마19:17, 막10:18. 선한, 친절한, 마20:15, 벧전2:18.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 선(마 5:45, 롬 2:7), 물건(눅 12:18,19), 선행(행 9:36), 양심(행 23:1). 
    [형] 선한(마 12:34, 19:16, 눅 6:45, 골 1:10), 좋은(마 7:11, 눅 1:53, 요 7:12), 착한(마 25:21, 고후 9:8).

καλός, ἡ, όν 스트롱번호2570
1.

아름다운

2.

좋은 유용한.

3.

흠이 없는

발음 [ kalŏs ]
어원
불확실한 유사어에서 유래
  • 1.
    아름다운, 눅21:5.
  • 2.
    좋은 유용한.
    • a.
      흠이 없는, 좋은, 귀한, 마13:48, 12:33, 눅6:43.
    • b.
      도덕적으로 선한, 고상한, 칭찬할 만한, 마5:16, 막14:6, 요10:32, 딤전5:10, 히10:24.
    • c.
      흠잡을 것 없는, 훌륭한, 눅6:38, 요10:11,14, 딤전6:19, 딤후1:14, 2:3, 히6:5, 약2:7, 벧전4:10.
  • 3.
    [ἐστιν과 결합될 경우] ~은 좋은.
    • a.
      기분 좋다, 바람직하다, 유익하다, 마17:4, 18:8,9, 막9:5, 눅9:33, 고전7:26.
    • b.
      [도덕적으로] 선하다, 고후8:21, 히13:9.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 좋은(마 3:10, 막 4:8, 요 2:10), 아름다운(마 7:19), 착한(마 5:16), 마땅한(마 15:26), 나은 (마 18:8,9, 막 9:45), 
    선한(요 10:11, 고후 8:21, 딤전 1:8), 옳은(고전 5:6), 잘하는(딤전 3:13), 유익을 얻는(히 13:9).



 '착한'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헬라어로 '아가도스'와 '칼로스'이다.
이들은 혼용해서 쓰이기도 하지만 '칼로스'라는 단어가 훨씬 폭 넓고 깊은 '선'을 가리킬때 자주 사용 된다.

 칼로스는 선과 악에서의 '선"이다.
나는 선한(칼로스: 가치있는)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빌 1:6) 너희 속에 착한(아가또스)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니

성도의 착한 일, 성도의 착한 행실은 세상의 선악기준에 의한 착한 일이라기보다 예수님의 착한 행실,혹은 예수님의 착한 행실을 바탕으로 하는 성도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착한 행실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빛과 소금의 삶이다. 

 예수님의 착한 행실은 이 세상속에서 순종으로 비움으로  자기부인으로 십자가로 나타나셨다.
그리고 그 예수님의 착한 행실에 의해 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성도의 삶 속에서 자기 부인과 순종으로 지어지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 과정 그것이 하늘나라 백성들의 세상 속 착한 행실이다. 
(행 10:38)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바로 이러한 예수의 착한 일이 성도에게서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빛과소금의 삶, 착한 행실은 자기를 부인하고,수난의 삶을 통과하며,하나님의 새 창조 역사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성도의 착한 행실, 순종의 착한 행실,십자가의 착한 행실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지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된다는 말이다. 

즉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모습이다.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상태를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의 능력이 성도의 삶 속에서 가입을 하여 세상은 도처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인내와 수고와 섬김과 순종의 삶이 성도의 삶에서 드러나게 될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영광,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세상에 증거 된다.
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이 드러나는 삶,그 삶이 바로 착한 행실이고 빛과소금의 삶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에베소서 2:10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든 피조물과 모든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그보다 더 특별한 목적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선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로 "선하다" 단어는 "칼로스(καλός)"와 아가도스(άγαθός)"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칼로스"는 일반적으로 착하고 가치 있는 일을 말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가도스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표현하는 단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님께서 맡기신 일을 할 때 비로소 창조의 목적에 맞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 혼자서 모든 일을 해결하고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창조주가 계시고 그 창조주의 목적에 맞게 사는 것이 가장 완벽하게 살아가는 것이며, 그렇게 살아갈 때 그 사람은 하나님께 주목받고 인정받고 축복받고 천국에서 면류관을 얻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묵상하며 아가도스의 선을 실천하여 주님께서 주목하시고 축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감동


07-13-2025(주일)
암송성구 #. 59 디모데후서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All Scripture is God-breathed and is useful for teaching, rebuking, correcting and training in righteousness,
so that the man of God may be thoroughly equipped for every good work.



역대상 12:18
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가로되 다윗이여 우리가 당신에게 속하겠고 이새의 아들이여 우리가 당신과 함께하리니 원컨대 평강하소서 당신도 평강하고 당신을 돕는 자에게도 평강이 있을찌니 이는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심이니이다 한지라 다윗이 드디어 접대하여 세워 군대 장관을 삼았더라.

- 하나님이 도우신다.

역대하 18:31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 적군을 떠나가게 하신다.

베드로후서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 하나님께 말을 받아 말을 한다.

사무엘상 10:26

사울도 기브아 자기 집으로 갈 때에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된 유력한 자들은 그와 함께 갔어도.

- 유력한 사람들이 협력한다.

역대하 30:12
하나님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저희로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일심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게 한다.

* 역대하 24:20 / 이에 하나님의 신이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감동시키시매 저가 백성 앞에 높이 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치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린고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창세기 41: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 충성된 일군이 된다.

사무엘상 11:6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매 그 노가 크게 일어나서.

- 거룩한 분노를 일으킨다
 


πνευματικῶς 스트롱번호 4153

1. 영적으로.   2. 성령의 감동으로.  3. 고전 2:14
발음 [ pnĕumatikōs ]
어원  /  4152에서 유래
  • 1.  영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고전2:14, 계11:8.
  • 관련 성경  /  영적으로(고전 2:14, 계 11:8).

πνευματικός, ἡ, όν 스트롱번호4152
1.

영에 관한

2.

영으로 말미암은

3.

㉠ 고전15:46

발음 [ pnĕumati-kŏs ]
어원
4151에서 유래
  • I.
    영에 관한, 영적.
    • 1.
      영으로 말미암은, 성령이 가득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령에 관한, 성령에 부합한.
      • a.
        [형용사] ㉠ [예수에 대하여] 고전15:46. ㉡ [비인격적 존재에 대해서] 롬7:14, 엡1:3, 골3:16.
      • b.
        [명사적으로] 롬15:27, 고전9:11. ㉠ 영적 선물, 은사, 고전12:1, 14:1, 고전15:46. ㉡ 성령을 가진 사람, 고전14:37. ㉢ 성령 충만한 사람, 고전3:1, 갈6:1.
    • 2.
      영에 속한, 악의 영적 세력, 엡6:12.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신령한(롬1:11, 벧전2:5), 영적인(고전2:13, 엡6:12).

ἀνασείω 383 [anasĕiō]
  • 뒤흔들다, 감동 시키다, 선동하다, 막15:11, 눅23:5. [주] 4대격과 함께 쓰임.


πνευματικῶς 4153 [pnĕumatikōs]
  • 영적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고전2:14, 계11:8.


θεόπνευστος, ον 2315 [thĕŏpnĕus- tŏs]
  •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딤후3:16.


  • 1.

    영으로 말미암은, 성령이 가득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성령에 관한, 성령에 부합한.

  • 2.

    영에 관한, 영적.

  • 3.

    [형용사] ㉠ [예수에 대하여] 고전15:46. ㉡ [비인격적 존재에 대해서] 롬7:14, 엡1:3, 골3:16.


φέρω 5342 [phĕrō]
  • 1.

    [비유적] 이끌리다, 감동을 받다, 벧후1:21.

  • 2.

    지다, 운반하다.

  • 3.

    [문자적으로] 눅23:26.